인문학 공부의 정점에 오르는
< 인문적 글쓰기ㆍ1 >
― 분석적, 비판적, 대안 제시적 글쓰기 방법론 강의 ―
흔히 인문학 공부라고 하면, 인문학 전공자의 해설 강의를 수동적으로 청강하는 것만을 떠올리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런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자세만을 취해서는 사실 인문학의 핵심에 이르지 못하고, 늘 겉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인문학, 즉 Humanity Science란 모름지기 삶의 방법론을 공부하는 것인데, 어째서 ‘나’에게 명쾌하고도 분명한 방법론을 일러 주지 않는 것일까요? 혹시 수동적 청강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요?
수동적 청강은 인문학을 단지 지식 습득 차원에서만 이해하는 일입니다. 영어에서 단계를 나누듯 ‘data → information → knowledge → wisdom’ 중에서 knowledge, 즉 지식의 단계에 머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게 되면 니체가 신랄하게 비판한 ‘지적 속물’에서 좀처럼 벗어날 수 없습니다. wisdom, 즉 지혜를 얻지 못한다면 인문학 공부는 헛공부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왜 지식 습득 수준에 머물고 지혜를 터득하는 경지에까지 이르지는 못하는 것일까요?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내가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생각했는지, 하지 않았는지 어떻게 아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에 대한 답변은 이렇게 할 수 있습니다.
“정말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생각했다면, 그 생각한 바가 반드시 자기만의 말과 글로 표현되기 마련입니다.”
그렇다면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일까요? 논리적이고 논증적이며, 분석적이고 비판적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인문학적 사유 능력을 갖추는 것입니다.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이것과 저것을 비교해서 공통점과 차이점은 무엇인지, 이 문제가 발생한 원인은 무엇이고 그에 따른 부작용은 무엇인지, 이 견해가 지닌 문제점을 어떻게 비판할 수 있는지, 비판했으니 그 대안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등을 생각할 줄 아는 능력입니다.
인문학적 사유 능력을 갖춘 채 이 세계와 ‘나’의 삶을 돌아본다면 어떨까요? 아마 보이지 않던 많은 것이 보이지 않을까요? 느끼지 못한 많은 것을 느끼지 않을까요? 그때가 되면 니체가 《즐거운 학문》에서 한 말이 떠오를 겁니다. 그는 ‘도대체 왜 쓰는가?’라는 질문을 받자 이렇게 대답합니다. “친애하는 이여, 그대를 믿고 말하건대 지금까지 내 생각을 털어버릴 다른 방법을 아직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억지로 쓰는 것이 아니라 머리와 가슴속에 차오른 생각들을 털어버리지 않고선 단 일초도 견딜 수 없을 듯한 때가 올 것입니다.
■ 모임 효과
- 교재 <인문적 글쓰기·1>을 통해 인문적 글쓰기의 기초 배우기
- 분석적, 비판적, 대안 제시적 사고 능력 키우기
- 분석적, 비판적, 대안 제시적 글쓰기 방법론 배우기
- 분석적, 비판적, 대안 제시적 글을 쓰고 첨삭 받기
■ 진행 방식
- 8주간 매주 화요일 저녁 7시-9시 온라인 강의
- 분석적, 비판적, 대안 제시적 글쓰기 방법론 강의
- 각각의 글쓰기 방법론 연습하기
- 단톡방을 개설해 글쓰기 첨삭 받기
- 진행자(리 강)의 저서 <인문적 글쓰기·1> 교재를 PDF 파일로 배부할 예정
■ 모임 안내
- 기간 : 위 일정 참조
- 장소 : 온라인(ZOOM)
- 인원 : 20명 내외
- 문의 : 이메일(master@rws.kr), 채널톡(하단 우측 아이콘)
■ 운영자 – 리 강
30년 넘게 문학, 철학 관련 일을 했다. 2018년에 <악법도 법이다, 소크라테스는 말하지 않았다>(행복한 미래)를 출간한다. 2022년에 <아렌트와 논술하기>(한티재)를 출간한다. 2023년에 <힘내라 논술 2024>(한티재)를 출간한다. 인문학서원 <에피쿠로스>에서 강의했다. 한겨레 문화센터, 금천구청 도서관, 구로 도서관 등에서 인문학 강의를 했다. 서울시 도서관 사서 교육을 했다. 가끔 시도 쓰고 철학적 사색을 즐긴다. 들뢰즈에 빠져서 허우적대다 니체, 스피노자, 베르그송에도 매료된다. 지금은 벤야민, 아렌트, 레비나스에 관심을 쏟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