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일 매일 글쓰기 2기 소감
박**
365일 +
작년 가을에 100일 쓰기를 해보려고 했는데, 이리 재고 저리 재고 하다가 결심을 하고 보니 이미 마감이더군요. 아쉬움과 함께 핑계를 찾았다는 안도감도 들었어요. 그러고 나서 또 계절이 바뀌자 365일을 해볼까 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100일 쓰기는 15만원인데, 그보다 세 배가 넘는 시간에 신청비가 365000원이니 훨씬 싸잖아요. 이런 일에도 비용을 생각하는 내 모습이 꼭 좋게 보이지만은 않았으나, 그래도 100일 세 번 하는 비용보다도 더 싸니까 확실히 가성비가 뛰어난 강좌라 볼 수 있죠. 다 못 쓴다고 해서 벌금을 내는 것도 아니고, 쓰다가 지치면 쉬었다가 다시 시작해도 된다는 마음으로 신청했죠.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보다는 비용대비 효율이 조금은 더 크지 않았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글쓰기를 계속 하려는데, 이왕이면 좀 더 나은 가격으로 오래 할 수 있는 강좌가 바로 365일 글쓰기였습니다.
처음에는 쉽게 생각했어요. 그냥 쓰면 되겠거니 하는 마음이죠. 이전에 다른 강좌에서 썼던 글도 몇 편 있으니 다시 재활용해도 되겠다고 여겼죠. 또 올 1월에는 아시안컵 축구 대회가 열려서 축구 이야기만 해도 30~40편은 채울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여기에 제가 좋아하는 야구에 대해서도 그만큼을 쓰고, 여행, 읽은 책, 영화와 드라마 등을 더해보니 얼추 150편은 되더군요. 더군다나 발췌를 올려도 되니 실제로 고민하며 쓸 글은 100편 남짓이 되겠거니 생각했습니다. 막상 시작하고 나니 세상 모든 일처럼 생각대로 되지는 않았어요. 매일 생각하는 내용이 다르고, 쓰고 싶은 글도 달라졌어요. 아침에 생각한 주제가 있었는데 막상 모니터 앞에서는 제목 외에는 아무것도 쓰지 못했고, 전혀 생각지도 못한 내용이 갑자기 떠오르기도 하니까요. 그래도 처음에는 하루하루 열심히 했습니다. 연초에는 비교적 시간이 많은 편이라 잘 실천해 왔습니다. 최대한 발췌보다는 직접 쓴 글을 올리자고 다짐했는데, 가을까지는 잘 지켰다고 생각합니다.
업무가 조금 바빠지고 몇몇 약속이 생기면서 점점 글쓰기가 만만치 않아졌어요. 초반에는 썼던 글을 다시 읽고 자주 고쳤는데, 후반으로 갈수록 생각나는 대로 쓰고 바로 올리고는 다시는 열어보지 않았어요. 급하게 쓴 글, 그냥 채워야 한다는 마음으로 쓴 글은 확실히 표가 나요. 다시 보면 오타는 물론이고 주어와 술어의 불일치 등 고칠 부분이 많았는데, 손이 잘 안가요. 이런 글을 몇 번 쓰다보면 차라리 훌륭한 작가의 좋은 문장을 다시 쓰는 게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전에 읽은 책의 구절을 발췌하기도 했습니다. 발췌도 정성을 들여야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생각 없이 마구 써내려간 발췌는 금방 잊어버리더라고요. 글을 쓸 마음이 없는데 억지로 쓰는 것도 나쁘지는 않았습니다. 어쨌든 뭘 했다는 뿌듯한 마음을 남겨주니까요. 길든 짧든 글을 쓰는 순간에는 글에 집중해야 그나마 덜 아쉽더군요.
글이 조금 길어지니까 슬슬 중언부언하네요. 아무튼 이번 과정에서 느낀 점은 꾸준함의 어려움이었습니다. 운동이든 독서든, 글쓰기든 또는 다른 공부든 뭐든지 하루에 한 시간 정도 하는 건 쉽습니다. 일주일도 어렵지는 않겠죠. 마음먹으면 한 달도 가능하다고 봅니다. 그런데 1년 또는 그 이상의 시간을 매일 하는 건 다른 일이죠. 하지만 그 효과는 천양지차입니다. 하루에 8시간씩 한 달을 한다면 대략 240시간인데 이보다는 하루 한 시간씩 240일을 하는 편이 더 큰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흔히 말하는 습관의 힘이죠. 난이도는 당연히 하루 한 시간 240일 지속하는 게 훨씬 높죠. 지난 일 년 동안 하루 한 시간정도 글을 썼습니다. 물론 20분 만에 끝낸 적도 적지 않지만요. 아무튼 일 년을 그렇게 실천해 봤으니 2년도 가능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내년에도 혼자서 하겠다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글을 쓰는 동력을 조금이나마 발견한 기분이 듭니다. 내년에는 지난 일 년과는 다른 방법으로 뭔가를 써 나가려 합니다. 매일 쓰는 건 장담을 못하겠지만요.
같이 참여하고 이끌어주신 분들 덕분에 365편의 글을 썼습니다. 내가 쓴 글이 어떤 반응을 일으키는 모습과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이 쓴 글에 반응하는 내 모습을 보는 것 또한 재미있고 신기한 경험이었습니다. 아마도 글의 힘이라 생각됩니다. 하얀 바탕에 쓰인 활자에 불과하지만 거기에 글쓴이의 마음이 담기고 읽는이의 마음과 어떤 화학작용이 생기면서 쓰기 전에는 있을 수 없는 반응을 만들어 내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이미 누군가가 했던 말 같아요. 여기까지 쓰고 나니 마무리를 해야 하는데 역시 맺음말은 체조의 착지만큼이나 어렵습니다. 올해 365일 글쓰기에 참여한 모든 분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더욱 건강해지는 2020년을 기대합니다. 뭐든 써 나가는 한 해 이루시기를 바랍니다. 화이팅!
윤**
미리 초저녁 잠을 점 자서 그런 것 같다.두 시가 가까운데 잠이 오질 않는다. 허기가 져서 라면에 김치를 한움큼 넣고 끓여 먹었다. 라면의 힘인지 뭔가 끄적거리고 싶다. 한 해의 마지막 날 새벽을 눈 뜬 채로 맞이 하고 싶은 의욕이 일어난다.
이 시간에 이렇게 살아 있는게 신기할 정도다. 엉덩이와 등과 목이 아프질 않으니 의자에 오래 앉아 있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올라온다. 앉아 있어도 몸이 견뎌주니 글 쓸 마음이 뒤따르는 것 같다. 일년 전 더 멀리 10년 전과 비교해 보면 변화가 몸에서 일어난 것 같다.
날마다 글써보자는 새 해 약속은 반쯤 지켰다. 여러 번 우울한 일상이 반복된 일이 있었고, 그럴 때마다 글을 써서 뭘 하나, 하는 회의감에 사로잡혔다. 그래도 다시 마음 먹고 써보길 몇 번 반복했다. 그런 과정을 거쳐 이렇게 글쓰기의 마지막날을 맞이 했다.
10여년 전부터 글을 써보겠다는 마음을 갖고 여러 번 도전해 왔다. 그러나 마음먹은대로 밀고 나가 어떤 결과를 얻은 적은 없었다. 하다 말고 하다 말고. 올 해도 그 습관에서 크게 달라지진 않았다. 하지만 딱 한가지 마지막 날 이렇게 생생하게 살아서 마무리 글을 쓰는 일은 처음이다. 글쓰기에 대한 공포는 그런대로 멀리 가버린 느낌이 든다.
내년에 뭘 할 수 있을까. 20대 시절부터 뒤죽박죽 써 본 글들을 다시 읽어보자. 그들을 한 데 모아 연결지어 보는 일도 의미 있을 것 같다. 새 해에 그런 글쓰기를 해보려고 한다. 오래 의자에 버티고 앉아 한 가지 주제를 가지고 제 법 긴 글을 쓸 수 있는 연습이 될 수 있겠다.
365일 글쓰기에서 힘을 얻었다. 하루도 빼놓지 않고 글을 써가는 동료들의 모습은 큰 자극이 되었다. 참 성실하게 사시는 분들이다. 댓글로 관심과 격려를 주신 분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해야겠다. 심신이 혼란스럽고 힘들 때 김제희 선생님의 격려가 없었다면 이렇게 마무리 할 수 없었을 것이다. 200개 글도 쓰지 못했지만 몇 번을 마음 다시 먹고 여기까지 오게 해주셨다. 정말 감사하단 말씀을 드린다.
이**
워밍업 글부터 시작하면서 벌써 1년 365일 시간이 흘렀다. 오늘은 경건한(?)마음으로 오전부터 글쓰기에 몰입해야지 결심했었다. 카페에 몇 번 들어왔다가 나갔다만 반복했다. 눈물이 핑 돌았다. 매일 글쓰기를 하면서 무언의 공감대가 형성되었던 이곳의 마지막 글이라니 만감이 교차한다.
처음 결심과는 달리 발췌며 점찍기로 글쓰기를 이어나갔다. 하루 일과를 작성하기 보다 글쓰기에 도움이 되는 필사와 멋진 글을 쓰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결심이 오래가진 못했다. 중요한 것은 편안하게 나의 이야기를 쓴다는 행위 자체가 아니었을까. 나는 그렇게 나와 마주했고, 아픈 마음의 상처를 다독였다. 8할은 가족 이야기였는데 남편과의 갈등이 대부분이었다. 다행인 것은 글을 쓰면서 상황을 다시 보게 됐다. '그렇게 화낼 상황이 아니었는데...... ' 자기반성도 하게 됐다.
글을 쓰면서 1년 전의 나를 떠올렸다. 독서가 마냥 좋고 100일 글쓰기에 성취감이 컸다. 홀로 글쓰기를 이어나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쉽지 않았다. 2019년에 제일 잘 한 일을 꼽자면 365일 매일 글쓰기를 했다는 사실이다.
이제 정든 이곳의 마지막 글이라니. 함께 글쓰기라는 마라톤을 함께 달려온 선생님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다. 자기 검열이 심했던 터라, 글을 누군가가 본다는 사실이 부끄러웠다. 시답잖은 이야기였는데도 용기 주시며 댓글 달아주신 마음이 더욱 감사하다.
제희 선생님의 알람 덕분에 힘을 내고 끝까지 쓸 수 있었다. 더위에 지쳐있던 날도, 미세먼지 때문에 힘겨웠던 날에도, 추위 때문에 움츠렸던 날에도, 늘 한결같이 좋은 글과 위로로 함께 해주셨다. '누구든지 내면의 불이 꺼진듯한 순간이 옵니다. 하지만 그 불은 특별한 사람과의 만남을 통해 다시 지펴집니다. 우리 내면의 불을 지펴주는 사람들에게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알버트 슈바이처)'
제희 선생님! 내면의 불이 꺼진듯한 순간이 많았는데, 선생님 덕분에 힘 얻어서 글쓰기 마무리할 수 있었어요~! 감사합니다 ^^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백**
365 글쓰기와 함께 한 2019년
글을 잘 쓰고 싶었다. 하지만 연습은 하지 못했었다. 해봤자 작심삼일에 불과한 글쓰기였다. 매일 써야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고심 끝에 100일 쓰기에 도전하고 달성했다. 그 이후 혼자서 스스로 매일 쓰겠다고 다짐했으나 실천하지 못했다. 나는 나약한 존재임을 깨달았다. 혼자서는 어렵다고 판단하고 다함께 하는 365글쓰기에 도전했다.
1년이 되는 이 시점에서 되돌아보면 매일 조금씩 빼먹지 않고 쓴다는 것에 집중했다. 출장 가기 전에는 며칠 분을 한꺼번에 써가지고 가서 시간에 늦지 않게 올리는 일도 쉽지 않았지만 해냈다. 나중에는 요령이 생겨서 글을 미리 나의 카톡으로 보내놓고 해당 일에 인터넷이 되는 곳에서 올리기도 했다. 외부에 나갔다 12시를 넘길 것 같아 전철에 앉아서 핸드폰으로 글을 써서 올리기도 했다. 다음 날 보면 오타가 너무 많아서 부끄러웠다. 잘 썼든 못썼든 매일 나와의 약속을 지켰다는 것에 의미가 있다.
오늘도 마지막 글을 잘 쓰고 싶은데 체력이 바닥이 났다. 한의원에 갔더니 왜 이리 몸이 안 좋냐고 걱정을 한다. 일단 자고 내일 다시 들여다봐야겠다.
고**
작년 오늘이 엊그제 일처럼 설레게 닥아 온다. 100일 글쓰기를 신청했다가 제대로 하지 못 하고 끝내는 아쉬움에 365일 글쓰기를 신청해 놓고 걱정을 많이 했었다. 과연 일 년이란 긴 시간을 버티어 낼 수 있을까하는 두려움이 앞섰다. 그러나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절박한 마음이었다. 계속 무엇이든 써야 한다는 의무감 같은 거였다.
처음은 장대한 각오로 다짐했다. 무엇을 쓸지는 미지의 세계였고, 흰 백지 상태였기에 더 설레었는지 모른다. 잘 나가는 듯 했다. 그러다 집 안 일들이 터지기 시작했다. 잘 메꾸어 가는 듯 했는데 일원동 삼성병원으로 결국에 제주도까지 다녀와야 했다.
글쓰는 일이 힘들어도 쓰지 않으면 안 되는 마음이었다. 간절한 마음으로 계속 써나가기 시작했다. 읽기와 함께 짧은 글이고, 일기 같은 하소연 글이었지만 나는 계속 써야만 했고,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곶감 빼 먹듯 쓰는 날짜가 띄엄띄엄 한 적도 있다.
언니와 시누의 죽음 앞에서는 어쩔 수는 상황이 일어나기도 했다.
글과 함께한 한 해라고 이야기 할 수 있다. 일어나는 일들과 함께 추구해야만 하는 일이라고 하는데 그렇게 죽어라 하고 있지는 않다. 시간이 지날수록 글도, 글쓰는 시간도 짧아지고 있는 것을 감지하고 있다. 또 무엇을 써야 할지 캄캄한 벽을 느낄 때도 있었다. 그렇게 하다 보니 한 해가 저물고 있다.
이 글을 쓰면서 생각해보니 365일 매일 해야 할 일이 있어 괴로웠지만 가슴에는 꿈 같은 풍선이 둥둥 뜨고 있었다. 어찌했든 매일 무언가 하는 생활이 무척 즐거웠다. 혼자만의 은밀한 시간이라고 하여도 너무 좋다.
이**
기어이 이 날이 오긴 오는 구나.
365일 글쓰기하는 날의 마지막 날인 365일째가 되었다.
처음 신청할 때 365일 매일 쓰는 것이 쉽지 않을 거 같아서 망설였었다. 용기내서 신청하고야 말았다. 우려대로 매일 쓴다는 것은 또 하나의 일을 만든 거 같아 후회했었다.
글쓰는 것이 좋다고들 하니 어디 한번 해보기를 마음 먹게 됐다.
매일 뭘 써야 할지, 일기도 아니니 어디까지 적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모니터 앞에서 움직이는 커서만 보기를 한시간 째 한 적이 많았다.
매일 못 쓴 이유는 피곤해서 또는 글감이 없어서 외면한 적도 있었다.
그래도 왠지 모를 찝찝함 때문에 몰아서 썼기 때문에 하루도 빼먹지 않았다. 글은 쓰면 는다고 하는데 개인적으로 봤을 때 그렇진 않은 거 같다.
그냥 365일 글쓰기에서 나의 목표는 365개의 글을 남기는 거가 되었다. 꾸준한 글쓰기를 하면 글쓰는 것이 두렵지 않겠지. 글 쓰는 것에 대한 부담을 덜어버리자.
일단 오늘은 365일동안 365개의 글을 남긴 나에게 아낌없는 칭찬을 하려 한다.
여전히 글쓰는 것이 두렵고 부담이 되지만 2020년에도 꾸준히 성실이 글을 쓰려고 한다.
고**
학기 초 처음 반에 배정이 되면, 낯가림이 심했던 나는 그 불편한 동거를 없애기 위해 출석부의 이름을 수첩에 옮겨 적었다. 무작위 확률상 작년에 같은 반이였던 동급생 중 약 6명에서 7명이 바뀐 학년에서 같은 반이 된다. 그 6명, 7명 중 나와 친한 애가 섞여 있을 가능성은 극히 낮았다. 중학교나 고등학교 모두 지역에서 섞여 들어왔기 때문에 초등학교 때 알고 지냈던 친구가 다른 반이였다가 학년이 바뀌면서 다시 만날 경우의 수도 기대하기 어려웠다. 중학교 때는 키 순서대로 자리가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서로 어색한 사이들끼리 앞뒤로 이야기를 나누고 밥을 같이 먹으며 친해질 수 있었지만 고등학생이 되면서는 순서대로 앉게 되는 터라 늘 처음이 힘들었다. 뻘쭘한 그 시간을 견뎌내기 위해 아이들의 이름을 빨리 외웠다. 쉬는 시간에 앉은 순서대로 아이들의 이름을 써보고, 집에 가서 다시 우리 반 아이들의 얼굴을 생각해보며 오십 여명 이름을 적어보았다. 출석부에 적어온 이름과 대조하며 기억나지 않았던 이름을 떠올리며, 외모의 특징과 말투를 이름 옆에 적곤 했었다.
1월 1일이 되기 전에 카페 초대장이 카톡으로 전달되었다. 누구인지 정체를 알 수 없는 상태에서 1년을 함께 할 구성원들의 인사가 카톡에서 시작되었다. 몇 년 전 100일 글쓰기 할 때 함께했던 사람들은 사소한 글에도 반응하며, 서로 응원하는 분위기였다. 댓글을 나누다 보면 상대가 누군지 괜히 알 것 같은 그런 마음도 들었다. 이번 365 글쓰기 분위기는 어떨지 100일 글쓰기 분위기와 비슷할지 다를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학교 다닐 때와 같이 궁금증을 감추고 한발 물러나 그들의 이름을 확인했다. 글이 올라올 때마다 알지 못하는 온라인 너머의 사람을 떠올려 보곤 했다. 자고로 활자 중독의 성향을 갖고 있는 나로선 시간 날 때마다 들여다 볼 수 있는 뭔가가 있다는 건 흥미로운 일이었다.
‘아, 그 때 글 쓰셨던 그 분이 이분이었나?’, ‘지난번 글에서는 결혼한 분 같았는데, 그 분이 이 분이 아니었나봐.’, ‘이 분은 직업이 뭐지?, 무척 궁금한데...’ 보름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나도록 글만 읽어서 누가 누군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학교 다닐 그 때처럼 이름을 적어보거나 혹은 이 분이 그분인가 확인해보기 위해 특정 이름을 한명씩 검색해보며 글을 읽었다. ‘아, 이 분은 이런 글을 쓰는구나’하고 끄덕거리는 일을 심심풀이 삼아보곤 했다. 그래도 남의 글이었다. 내 글도 다 읽어지지 않은 날이 있는 것처럼, 상대의 글도 대충 눈으로 훑어보고는 지나치는 날이 더 많았다. 한동안 보이지 않다가 글이 등장하면, ‘앗, 돌아오셨네.’하고 혼자 아는 척을 해보기도 하고, 또 보이질 않으면 ‘무슨 일이 있으신가? 영영 안 들어올 모양인가’하고 걱정해보기도 했다. 특히나 쌍둥이를 낳을 예정이었던 김지혜님, 암선고를 받고 치료를 시작한 정은하님은, 카페에 들고 남이 들 반가웠다. 직접 손을 흔들진 못했어도.
상대의 글에서 상대를 짐작해 보듯, 글을 길게 쓰면 쓸수록 사적인 정보는 많을 수밖에 없었고 상황과 사람이 구체적일수록 더 자신이 드러났다. 글이 길어질 때면 내 정보가 과하게 드러내는 것은 아닐가 싶으면서, 글은 막연하면 형태를 구별하기 힘든 덩어리 같은 기분이었다. “(소설이란...) 다른 말로 하면, 사회화된 인간 속에 숨어있는, 사회화되어 있지 않은 부분을 어떻게 언어로 나타낼까 하는 문제이다. 사회화되어있지 않은 부분은 보통 생활에서 마이너스가 되거나, 타인에게 손가락질 받는 부분이다. 하지만 소설에서는 절대로 없어서는 안 되는 부분이다. 다시 말해 소설이란 인간에 대한 압도적인 긍정이다.” 소설의 장르가 아니어도 글은 인간에 대한 “압도적인 긍정”, <글쓰기에 지친 이들을 우한 글쓰기 창작 교실>에 나온 표현대로, 언어(A)를 사용하여 언어(B)를 전달할 수 없는 것을 만들어 내는 그런 것이라 글은 드러내야 했다. 사진을 잘 찍는 가장 좋은 방법은 피사체를 가까이에서 찍는 것인 것처럼, 글도 사건과 상황, 사람과 감정을 접사 카메라로 찍듯이 쓸 때 그 미묘하고도 다른 그 순간을 언어로 포착할 수 있다. 그러니 좀 더 가까이 줌인은 당연지시라 여겼다. 그래서 소설은 가공의 인물로, 에세이는 주제에 한정된 부분된 노출로 작가는 자신을 드러내는 것인지 모르겠다. 아직 훈련이 그만큼 되지 않은 나는 가끔은 누구의 상황을 빌어 아닌 척 써보래 시도해보곤 했지만 대부분은 날 것 그대로 일 수밖에 없었다. 다음 글쓰기에선 접사 대신 다른 방식의 포착이 가능할까? 글이 길어지는 것에 대한 변명이다.
미완성의 글을 쓴다. 마치지 못한 인사, 아는 척하지 못한 말들, 여전히 하지 못한 말들이 있다.
감사했어요. 김제희 코치님, 2기 식구들~
이**
정말 365일이 마쳐졌네요. 마지막날 예배준비로 짬을 못내서 글쓰기를 못쓰고 말았지만. 지금이라도 씁니다.
이번 해 글쓰기가 일기식 기록이 대부분인 건 아쉽지만 그또한 성장이다. 내 이야기를 쓸수 있다는 것도 힘이 된다.
무엇보다 김제희 선생님의 편안하고 안정감 느껴지는 인도와 매일 와닿는 리드문 덕분에 이 공간이 언제나 편안해서 글을 이어나갈수 있었고, 함께 한 분들의 열심 또한 글쓰기 습관 형성에 도전하게 했다. 감사하다.
오늘부터 365글쓰기 공간이 없어지지만 이제 나만의 공간에서 자율적 글쓰기를 이어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
송구영신예배 드리고 새해 첫날을 맞이하였다. 첫날 기도와 운동으로 시작하고 사당 아트나인이라는 예술극장에서 영화 <두 교황>을 보았다. 영적 기운으로 새날을 여니 뜻깊다. 쪽 이렇게 운동으로 몸을 단련하고 영적으로 성화된 발전을 이루는 한해 되기를 스스로에게 축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