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토론 실습 중에 쓰는 참회록’
나는 다섯 달째 숭례문학당에서 독서토론을 공부하고 있는 프리랜서이다. 현재 공부 중인 독서토론 심화과정은 진행 실습을 마친 후 내가 배웠거나 수정해야 하는 부분에 대하여 ‘참회록’을 쓰게 되는데 그 일부를 독자들과 공유해볼까 한다.
올리버 색스의
자서전 《온 더 무브》을 읽고 토론하는 수업에는 나의 논제문 자체에 질문을 하는 패널이 있었다. 그렇다. 명확하지 않은 논제문은 패널의 질문을 유도한다. 급기야 왜 이런 논제문을 만들었는지 설명을 하고 싶은, 거역할 수 없는 충동을 느꼈다. 수업을 진행하시는 강사님께 묻고 말았다. “설명해도 돼요?” 당연히 안 되는 것을 알았지만 하고 싶었다. 토론자가 주체가 돼야 하는데 나는 또 내가 느낀 점을 구구절절 설명하고 싶었던 것이다.
《온 더 무브》를 읽고 내가 뽑은 키워드는 인류애, 인간애였다. 그것을 그나마 표면적으로 볼 수 있었던 장면이 톰건과의 일화였다. 톰건이 편지를 통해 대놓고 올리버에게 부족했던 부분을 말해주고 그 부족한 부분이 채워졌다고 말한 장면은 무척이나 매혹적이었다. 올리버가 아닌 나는 그 순간 올리버인냥 기뻤던 것이다. 인정받고 싶었던 갓 열여덟의 올리버가 내 안에 잠시 앉아 있었던 모양이다. 해서 나는 톰건의 그 질문에 매료되었고 어떻게 보았는지를 묻고 싶어서 올리버의 자서전임에도 톰건의 이야기를 적었던 것이다. 물론 이 장면을 어떻게 보았을지라는 질문과 톰건의 질문 자체에 대한 질문을 고민하다 48 대 52 정도의 아슬아슬한 ‘승’으로 톰건의 질문을 논제로 선택하였으나, 막상 수업 전에 다시 보니 내 의도와는 다르게 보여 수정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심쩍은 부분은 반드시 탄로나게 되어 있는걸까? 그 논제는 날카로운 패널의 질문을 피해갈 수 없었다.
이를 통해 나는 퇴고시 객관성을 갖는 연습을 해야겠다란 것을 배웠다. 아울러 예상치 못한 질문을 받았을 때 조금은 더 프로답게 당황하지 않고 그 시간만큼은 내가 담당한다는 생각으로 대처해야겠다는 것도 배웠다. 강사님이 계시기도 하고 다른 선생님들도 같이 공부하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지금까지는 더 많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오히려 예행연습인 만큼 그 시간이 진짜라고 생각하고, “아! 그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겠군요. 그렇게 생각하시게 제가 논제를 만든 점은 사과드립니다. 그래도 일단 다른 토론자들과의 토론을 통해 조금은 더 이해해보는 시간을 가져 보시면 어떨까 말씀드립니다.” 등의 이야기로 그 시간만큼은 내가 이끌어간다는 책임감을 더 키워야겠다.
실루엣이 모호한 선택논제를 논제로 만들 때 감정적이 된다는 것을 알았다. 어떻게든 만들고 싶은 생각은 실익을 따지기 어렵게 만든다. 책을 읽을 때 나는 감정이입이 가장 큰 장점인데 어떤 각도로 보면 그것은 약점이 된다. 실익을 객관적으로 따지면서 모호한 실루엣을 또렷하게 만드는 연습, 도전해 봐야겠다. 하지만 도전에 대한 다짐과는 별개로 자신은 없다. 그저 연습을 하는 수밖에, 하고 나를 다독이고 될 때까지 만들어 봐야겠다는 투지를 태워본다.
“~하면 공감한다에, ~하면 공감하기 어렵다”를 연습하다 보니 그런 프레임에서 벗어난 선택지를 만난 순간 말이 꼬였다. “모두 폐기한다에 조금 가까우시다면~” 그게 뭐가 그리 어려웠을까. 그렇다. 나의 당황지수는 그렇게 표면화되곤 한다. 이건 어떻게 고칠 수 있을까? 조금은 더 여유를 가져보면 어떨까? 그래, 여긴 연습을 하는 곳이고, 배우러 온 거니까 아이를 낳을 때 배운 라마즈 호흡을 통해 세링게티가 아님을 나의 뇌에 알려줘야겠다.
심화과정에서 진행자만큼 중요한 역할이 패널이다. 다양한 상황을 연출하여 진행자가 좀 더 노련하게 진행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하는 조력자. 그런데, 어쩌면 나는 오늘 가장 도움이 되지 않은 사람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예행연습인 만큼 다양한 경우에 대한 노출이 필연이건만 나는 또 주저하고 말았다. 패널 역할을 잘하면 강사님께서 쌍따봉을 날려주시거나 빵끗 웃어주신다. 나도 쌍따봉이 받고 싶다. 하지만 아직은 용기가 부족하다. 어떻게 하면 패널 연기를 잘 할 수 있을까? 나는 평소 쓸데없는 말을 그렇게 잘하면서 정작 필요한 순간에는 하지 못하는걸까. 다음 시간에는 다른 선생님께 도움이 되는 패널이 되고 싶다. 해보자. 도전이다.
언제나 논제문을 제출하고 나면 나는 제자리에서 일어나 0.3mm 정도 뛴다. 기쁘다. 실익, 모호함, 진행실력, 이 모든 것들을 제외하고 내가 이 책에 도전했고 논제를 만들었다는 사실이 기쁘다. 나의 한계는 어딘가에 부딪힐 때 알게 된다. 그래서 부딪히는 순간은 아프지만 한계를 아는 것이 나는 기쁘다. 어쩌면 이 기쁨이 LSD 나 암페타민이 주는 것과 비슷할지도 모른다. 그 기쁨 덕에 수업이 끝나면 바로 다음 책을 열고 머리를 쥐어짜는 과정을 반복한다. 되내인다. 내가 숭례문학당에서 만난 강사님들께서 알려주신 인생의 지침들. 끝까지 해볼 것, 그리고 힘들이지 말고 해볼 것. 그렇게 다음주 조금 더 성장할 그날의 나에게 파이팅을 외치면서 하나도 힘들지 않았던 수업의 참회록을 마친다.
글 / 독서토론 심화과정 33기 김자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