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의 맛을 아시나요?
허무를 직면한 김영민 선생은 “허무는 인간 영혼의 피 냄새 같다”고 단언한다. 가만히 있어도 스멀스멀 올라와서 본능을 건드리는 그 무엇. 내게 책이란 허무 그 자체로, 피 냄새처럼 비릿하고 비정하다. 피 묻은 칼끝을 소맷자락으로 무심히 훔치는 살수처럼 큰 기대 없이 책장을 넘기곤 했다.
책 읽는 일이 노동이 되고 권태로워질 무렵, 우연히 숭례문학당에 찾아들었다. 뜻밖이었다. 여긴 강호의 독서고수들이 포진한 곳. 책 한 권의 소중함이나 신성함을 다 잃어가던 당시, 한 발 한 발 조심히 내디디며 초심을 찾아 나섰다.
여기서 논제라는 산을 만났다. 매번 부족한 점이 보일 때면 탄식하기 일쑤였다. 그냥 될 일이 아니었다. 뭔가 잘못됐다 싶어 탈출구를 찾다가도 진지하게 임하는 동기들의 열정에 맘을 다잡곤 했다. 그러기를 1주, 2주, 그리고 8주. 그동안 토론 진행자로서의 쓴맛도 단단히 봤다. 논제가 딱딱 맞아떨어지고 토론이 잘 돌아갈 땐 그 희열감이 대단했다. 정말 몰랐다. 단짠단짠 강호의 맛이 이리도 기가 막힐 줄은. 역시 인생의 묘미는 허무만 있는 게 아니었다. 이것은 진짜 독+서의 맛이었다. 앞으로 이 몸께서 ‘독’ 같은 ‘서’로 얼마나 더 기쁠지, 얼마나 더 괴로울지 가늠은 안 된다. 단지 분명한 건, 죽기 전까지 계속 읽고 토론이나 하면서 허무든 피 냄새든 맡긴 맡으며 살아갈 듯하다. 하, 빌어먹을.
| ■ 송미정 문학박사이자 등단 작가로 문학과는 평생 애증관계에 있다. (주)부모마인드셋연구소와 도서출판 우먼더스토리 대표이며, 저서로 『존 레논을 믿지 마라』, 『자유란 무엇인가』, 『부모라는 왕관의 무게』 등이 있다. 숭례문학당 독서토론 심화과정 35기를 수료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