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처럼 쓰기 - 올리버 색스 편> 10기 후기



평생 동안 써도 여전히 재미나다는 글쓰기




올리버 색스의 글에서 느껴지는 따뜻한 인간애와 풍부한 독서력에 나는 깊이 감탄했다. 색스는 의학적 지식에만 머무르지 않고, 문학, 과학, 역사 등 다양한 분야를 폭넓게 탐구했다. 그는 환자들을 편견 없이 관찰하면서, 이 모든 것을 자연스럽게 글에 녹여내는 놀라운 능력을 보여줬다.

오수민 선생님의 안내로 색스의 글을 더 깊이 들여다보면서, 전에 보지 못했던 부분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의 글쓰기는 깊은 지식과 인간에 대한 따뜻한 애정으로 가득했다. 색스는 환자를 단순한 케이스로 보지 않고, 그들의 삶의 이야기에 귀 기울였다. 어려운 개념도 쉽게 설명하는 그의 능력과 문학적인 표현 방식은 특히 인상적이었다.

모임에서 각자가 쓴 글을 발표하면서, 색스의 영향력은 물론이고, 우리 안에 내재된 작가적 자질이 얼마나 풍성한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 모임을 통해 나는 색스의 글쓰기 방식을 배우는 것뿐 아니라, 우리 스스로의 작가적 역량을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모임을 마치면서, 나는 그처럼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갖고 독서하며, 따뜻한 마음으로 글을 쓰고 싶다고 다짐했다. 색스처럼, 나도 사람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대하는 '마음의 의사'가 되고 싶다는 소망을 품게 되었다.

(10기 참여자 - *)


 

"글을 쓰다 보면 생각과 감정이 분명하게 정리된다. 내게 글쓰기는 정신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절대적 요소다. 생각이 떠오르고 그 생각이 꼴을 갖추어가는 과정 전체가 글쓰기를 통해 이루어지는 까닭이다." 올리버 색스 <온 더 무브> p.465

'글을 쓰다 보면 생각과 감정이 분명하게 정리된다'라는 올리버 색스의 말을 이제 아주 조금씩 알게 되었다. 작가처럼 쓰기를 통해서이다나의 생각과 감정을 정리할 수 있다는 것이 즐겁고 고마운 일이다. 글을 쓸 수 있게 힘을 주시는 오수민 선생님과 함께 글을 나누며 기쁨을 주시는 모든 분들께도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내가 바로 물었다. “너 작가처럼 쓰기 다시 할 생각이니?”
내가 답했다. “해야지.”
뭘 써야 할지 몰라 도망가고 싶어 하면서 또?” 내가 말했다.

나는 동요하지 않는 상태로, 공지사항에 올라온 작가처럼 쓰기 11기를 온몸으로 기뻐하며 클릭한다. 몇 분 뒤 숭례문학당으로부터 신청, 접수되었다는 문자를 받았다. 잘 쓸 수 있을까 걱정은 더 심해졌지만 그러다 갑작스레 기분이 확 바뀌었다. “이 글쓰기가 이제 내 일상에 착 달라붙어 있군. 지금부터 내가 하고 싶은 글을 마냥 쓸 수 있어.” (올리버 색스 작품 <온 더 무브>에 나온 문장 틀을 이용한 작문)

(10기 참여자 - *)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로 처음 알게 된 작가, 올리버 색스를 읽게 되어 무척 즐거운 시간이었다. 선정된 4권의 책 외에도 두어 권을 더 들였는데, 다음을 기약해야 할 것 같다.

두 분 모두 의사인 부모님의 소명감을 가진 직업의식을 지켜보며 자랄 수 있는 건 일종의 특혜가 아닐 수 없다. 물론, 상처 또한 있지만 작가는 그 특혜를 잘 소화해서 성공적인 생을 살아간다. 젊은 시절의 패기로 어려움에 직면하기도 했지만 스스로를 지키고 환자를 이해하는 의사로 모든 순간을 열심히 기록한 사람으로 중요한 작업을 많이 남겼다. 글을 쓰는 의사라서 얼마나 다행인가. 자주 과학책의 어려움을 느꼈지만 신경의학 분야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 기회였다. “내가 생물학에서 필요한 사고방식에 익숙해지는 데는 제법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것은 마치 사람이 다시 태어나는 것과 같은 과정이었다.”(p.430)는 인용이 위로가 되었다.

작가로서, 의사로서의 삶 못지않게 삶을 대하는 태도에서 관심이 가는 부분들이 많았다. 지극한 기쁨으로 평생을 누린 수영은 아버지와 마찬가지였으며 음악적 소양과 함께 화학에의 끌림은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어떤 노력도 필요치 않았던 것처럼 느껴질 정도다. 자연스러운 탐구욕은 어떻게 생성되는가, 부럽기만 할 뿐이다. 오토바이에 빠지기도 하고 한때 약물에도 취한 경험이 있으며, 갑작스런 사고로 인해 자신 역시 환자가 된 사례는 어쩌면 운명적이기까지 해서 놀라울 정도였다.

야생마같은 기질을 학구적인 삶으로 대체하여 평생을 보낸 그가 말년에-이 또한 내게는 놀라운 지점이다. 일흔일곱 살에 만난 연인이라니, 내 인식의 편협함이 저절로 느껴졌다-누렸노라고 그린 소박한 일상을 보며 어느 부분 나는 쉽게 가졌던 것이기도 한데, 주어진 것은 당연하고 가지지 못한 것들에만 향했던 시선을 되돌아보게 하는 대목이었다. 40년도 넘게 홀로 터벅터벅 걸어 다니던 곳들을 함께 다니게 된 기쁨이 그가 받은 선물인 것만 같아서 글을 읽는 나도 흐뭇했다.

푸념이라곤 없는 작가의 글은 깔끔하고 담백하다. 가지각색 수첩을 늘 갖고 다니며 어디에서든 떠오르는 글을 쓰기 위해 준비하는 그가 열네 살 때부터 쓰기 시작한 일기장은 1,000권에 육박하고, 수없이 주고받은 편지글을 보관하고 있으며-보낸 편지의 사본을 갖고 있는 부분도 인상적이었다. 오래 전 내가 보낸 편지가 문득 궁금해질 때면 그런 생각을 해보기도 했는데, 그건 또 낯간지러운 일이라고 여기는 게 먼저였는데-수십 년 동안 쓴 1,000권이 넘는 임상 기록 등 수백만 단어 분량에 이르는 글을 평생 동안 써온 그가 여전히 새롭고 재미나다는 글쓰기, 그 세계로의 초대장인 것만 같다.

(10기 참여자 - *)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고들 합니다.
완전히 새롭다는 것이 여전히 가능할까요?
그럴 수도 있고, 또 아닐 수도 있겠지만요.
보다 글을 잘 쓰고 싶다면 100번 씹어 밥을 넘기듯 문장을 천천히 음미하고 분석해야 한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숲이 있습니다. 나 혼자 길을 내기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앞 사람이 내어준 발자국 하나, 뒷모습, 옷자락을 보고 따라가다 보면 길을 익히고, 길을 익히고 보니 어떻게 가야 새로운 경로를 만들 수 있는지 알게 되더군요. 이제는 지그재그로 갈 줄도 알고, 빙 돌아 다시 결국 그 자리로 가기도 합니다만, 작가를 따라가다 보면 은근히 재미가 있습니다. 그를 비껴가듯, 스치듯 보이지 않는 말을 주고받는 기분이기도 합니다. 저의 모든 글쓰기가 앞선 이들에게 빚짐을 인정하자 그와 동시에 그들의 유산을 물려받은 느낌입니다. 행복한 글쓰기였습니다.

(10기 참여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