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습관을 넘어, 성장을 향한 발돋움으로!
9월 2일 1일차를 시작으로 12월 10일로 100일차가 되었습니다. 하루도 빠짐없이 글을 써보자는 나와의 약속을 지키고 완주를 하여 보람과 기쁨과 자부심이 듭니다. 일기인지 에세이인지 모를 그날에 떠오르는 화두로 글을 써 나갔습니다. 100일이라는 시간은 아기가 태어나 목을 가누고 뒤집기를 시작하는 시점이기도 합니다. 100일이 된 아기처럼 이제 나의 글도 목을 가누고 뒤집기를 하였으니 배밀이하며 앞으로 나아가 보려 합니다. 계속 쓰기, 나의 단어로!!!!
━ 김ㅇㅇ
나에게 100일 글쓰기는 눈치 보지 않는 글쓰기를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처음 100일 글쓰기를 시작할 때도 어떻게 하면 글쓰기 습관을 들여서 블로그나 브런치에 정기적으로 글을 쓸 수 있을까를 생각했어요. 잘 써진 글은 올려야지 했던 거죠. 그런데 10일이 지나고 20일이 지나고, 점점 매일 쓰는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하게 됐어요. 꼭 잘 쓰는 글 말고, 글쓰기 플랫폼에 인증하는 글 말고, 그저 쓰는 인간으로서의 의미를 느끼는 시간이었습니다. 한 문장이라도 쓰라고 격려해주시는 리더님 덕분입니다. 완주할 수 있도록 끝까지 한결같은 페이스로 같이 뛰어주신 리더님 감사합니다 ^^
━ 김ㅇㅇ
아무도 들어주지 않을 것 같았던 내 이야기를, 마치 누군가와 마주 앉아 맘껏 수다를 떤 것처럼 시원하게 털어놓았습니다. 굳이 들을 필요도, 대세에 지장을 줄 만한 이야기도 아니었지만, 그래도 쌓여 있던 이야기 보따리를 하나 둘 풀어 내니 가슴이 후련해졌습니다. 어제 침대에 누워서는 ‘내일 무슨 글을 써야 하지’ 하는 걱정에 마음이 무거웠는데, 이제야 비로소 “아, 이제 끝났구나” 하며 안심이 됩니다. 기어가든 걸어가든 내 발로 뚜벅뚜벅 걸어 목적지에 당도할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기쁨과 보람이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맨 먼저 바느질을 끊어야 한다. 바느질은 조금만 꼼지락거려도 앙증맞은 결과물이 눈앞에 나타나기 때문에 글쓰기보다 먼저 바느질에 손이 가는 것은 단순한 회피일까, 아니면 손이 만드는 완성감이 주는 위로일까? 아마도 회피와 위로가 동시에 작동한다. 바늘을 잡는 순간 글쓰기에 대한 중압감이 신기하게 사라진다. 한땀 한땀 누비다 보면 우물 안의 물처럼 어느 순간 고요하게 마음이 차올라 충만해진다. 결과물뿐만이 아니라 단순한 동작의 반복을 통해서 얻는 카타르시스가 있다. 그러니 바느질은 오아시스 샘물에 비할 수 있다. 하지만 글쓰기는 백일 동안 어두운 동굴에 앉아 쑥과 마늘을 먹는 고행을 하는 한 마리 곰에 불과하다. 백일의 시간이 지나도 결국 인간이 될 수 없을 것 같은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힌 불쌍한 곰 말이다.
매번 저녁 10시가 되도록 무엇을 써야 할지 감을 잡지 못했다. 매일 똑같은 실패가 반복된다는 생각이 맴돌 뿐 나아지지 않았다. 애초에 백쓰는 연달아 3번 하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열흘 정도 더 생각해 보아야겠다. 일반인들은 자기가 혼자 읽는 일기장에도 각색하는 경향이 있다. 독자에게 보이면 부끄러운 장면들은 적당히 윤색의 과정을 거친다. 언론용이 있고 내부용이 따로 있는 것이다. 내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담는 지혜가 필요하다. 내 글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 주는 행위에 대하여 부끄러워하지 말아야지 다짐했다. 뻔한 거짓말을 하는 어린아이처럼 반성과 결심을 또 해본다. 그리 이루어지리라 믿으며, 나의 글쓰기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를. 이 아쉬움과 다짐을 발판 삼아, 다음 글쓰기에서는 조금 더 친절하게, 조금 더 보폭에 맞는 내 속도로 용기를 내어 걸어가 보도록 하자.
━ 김ㅇㅇ
2025년이 20일 남았다. 이 시기가 되면 한 해를 뒤돌아 보게 된다. 올해도 상사의 눈치를 보고, 자존심을 세우고, 세상에서 살아가기 위해 버텼다. 김 부장처럼. 언제부터인가 해가 바뀐다는 것에 크게 의미를 두지 않게 되었다. 그냥 시간이 가면 오는 것이었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계획을 세우지 않은 것 같다. 날씨처럼 삶도 계획대로 살아지지 않고, 예상을 빗나가기에. 사소한 것일지라도 주어진 것에 최선을 다하고 하루하루를 뜻있게 살자는 것이 계획이라면 계획일까. 그래도 해마다 새로운 것을 해보려고 노력했다.
올해는 글쓰기 수업을 들었고, 그곳에서 만난 책을 읽고 싶은 분들과 독서 동아리를 만들었다. 그리고 100일 글쓰기에 도전했다. 책을 읽는 것과 글쓰기는 바늘과 실 같다. 그런데 나는 책을 읽는다고 하면서도 기록을 남기는 것에는 게을렀다. 예전에 노래는 듣는 것에 불과했다. 글쓰기를 하며 노래를 들어보니 가사가 문학적이고 아름다웠다. 가사에 인생이 담겨 있었다. 나는 주로 소설이나 에세이를 많이 읽었다. 글쓰기를 하다 보니 시에도 관심이 생겼다. 집 책장에 고이 모셔 있던 시집을 꺼내 읽었다. 시에 사랑, 슬픔, 기쁨, 위로, 평안, 인생이 있었다. 간결하게 압축적인데도 시인의 마음이 느껴졌다. 시의 매력에 빠졌다. 머리와 마음속에 있는 것들을 끄집어내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글을 쓴다는 것은 참 대단한 일이다. "지금 삶이 힘든 당신,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당신은 이 모든 걸 매일 누릴 자격이 있습니다.", "대단하지 않은 하루가 지나고 또 별거 아닌 하루가 온다 해도 인생은 살 가치가 있습니다."
나의 마음을 울리고 나를 다독였던 이런 문장을 나도 쓰고 싶다. 하지만 나에게 글쓰기는 여전히 어렵다. 그러나 글쓰기를 하면서 나는 때로 해방되는 기분을 느꼈고, 나를 돌아보게 했다. 글쓰기로 올해는 충분했다.
━ 성ㅇㅇ
나에게 53기 100일 글쓰기는 어릴 적 꿈을 향해 내디딘 첫 발걸음이었습니다. 32년 간 다닌 직장을 퇴직한 후, 살아내느라 잊고 지냈던 내 안의 꿈이 다시 깨어났습니다. 100일 글쓰기는 습관 만들기를 넘어, 성장을 향한 발돋움이었습니다. 매일 글쓰기가 버거워서, 발버둥 치며 성장통을 겪었지만, 100일이 지난 후 한 뼘 성장했을 테지요.
━ 이 ㅇㅇ
글을 쓴다는 것은, 내 어릴 적 꿈이었다. 학창 시절에도 문과 계통의 선생님을 좋아했고, 국어나 사회 수업이 재미있었다. 어쩌다 보니 고등학교 때, 이과를 선택했고, 직업도 이과였고 지금까지 쭉 이과로 살아왔다. 문과적인 감성을 놓치지 않고 싶었고, 언젠가는 글을 쓰고 싶었다. 퇴직하고서 인생 2막을 살고 있는 지금, 어릴 적 글을 쓰고 싶던 마음이 깨어났다. 퇴직한 선생님들과 글쓰기 모임을 만들어 볼까도 생각했는데, 나를 모르는 사람들과 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인이 알려준 숭례문학당의 여러 글쓰기 강좌 중 겁도 없이 덜컥 100일 글쓰기를 신청했다. 같이 신청한 지인은, 시작하자마자 바로 하차해버렸다. 나는 해낼 수 있을까? 글쓰기를 좀 배우거나, 보다 짧은 기간의 글쓰기부터 시작해야 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디까지 나를 드러내야 할까 하는 제약이 막아섰고, 이과로 살아온 삶에 한계를 느꼈다. 날마다 무엇을 써야 할지 고민하고, 막상 글을 쓰다 보면, 어휘력이 짧아 적당한 단어를 찾지 못해서 글의 진척이 더디었다. 말하듯이 쓰는 게 좋다는데, 나는 말도 짧게 요점만 얘기하는 편이다. 수다스럽고 장황하게 얘기하는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주는 것이 힘들 때도 있었는데, 글을 쓰다 보니 그들의 능력이 부럽기까지 했다.
이럴 때는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무조건 버티는 것이 상책이다. 때로는 징징거리면서. '글을 좀 못 쓰면 어때? 난 이과잖아?' '글 쓰는 게 뭐라고, 힘들면 안 쓰면 되지... '그냥 엉덩이 무거운, 꾸준함으로 버텨보자...
어찌어찌하다 글쓰기 100일이 되었다. 글쓰기를 시작하면서 왜 글을 쓰려하는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겠다고 했다. 어렴풋이 답이 보이는 것 같기도 했지만, 정체가 명확하지는 않다. 안개 속에서 보였다 사라졌다 한다. 글쓰기 끝자락에, 나에게 또 묻는다. 100일 동안 나는 성장하였는가? 카톡방에서 다들 다시 도전한다고 하는데, 나는 다시 할 수 있을까? 잠시 쉬는 동안 그 답을 찾아보련다. (5.7장) (오늘도 어김없이 마감 시간 직전에 올린다. 이 시간까지 창작의 고통(?)에 시달렸다는 것이다.)
끝!, '끝'이라는 글자가 새삼 예쁘다! 진짜 끝! 근데..... 진짜 끝이야?
━ 양ㅇㅇ
혼자 일기만 쓰다가 남에게 공유하는 글을 써보자는 마음으로 100일 글쓰기를 시작하게 되었다. 처음엔 일기 이외의 다양한 글을 써보려고 했지만 잘 되지 않았고 중간에 쓰지 않은 날도 많았다. 그렇지만 매일 글쓰기를 이끌어가시는 선생님과 함께 쓰는 회원분들의 피드백을 받으며 쓰는 동안에는 즐겁게 쓸 수 있었다. 함께 쓰면서 더 열심히 쓰게 된 것 같다. 다음 기수에도 참가해서 함께 쓰기를 이어가려고 한다.
━ 이ㅇㅇ
결론부터 말하면, 세 번째 참여한 이번 53기는 나 스스로에게 너무 아쉬운 백쓰였다. 지난 두 번의 백쓰에서는 카페에 올라오는 거의 모든 글을 읽었다. 다른 사람의 글을 읽는 다는 건 내가 그곳에서 호흡하는 것을 느끼기 때문에 참 중요한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걸 너무나 잘 알면서도 난 이번 백쓰에서 다른 사람들의 글을 많이 읽지 못했다. 그 호흡이 투두둑 끊겨 있음을 느낄 때마다 더 부지런을 떨고 싶었지만 잘 안되었고, 잘 안되는 것이 반복되다 보니 겨우겨우 내 글 마감하기에 급급했다. 그래서 몹시, 아쉽다.
소중한 어떤 것에 손을 붙잡고 있지 않으면 어느 순간 무엇이 소중한지 알 수가 없다. 그렇게 한 살, 두 살, 나이 먹어가는 게 싫어서 자꾸 손을 뻗지만 나도 모르게 맥없이 스르르 풀어지는 걸 느낀다. 조금만 더 손가락 끝에 힘을 주기로... 그렇게 마음먹으며, 백쓰의 백번째 글을 쓴다. 백쓰 53기를 위해 리드해주신 리더님, 그 응원에 부응하지 못해 미안한 마음으로 감사함을 전합니다. 애 많이 쓰셨습니다. 진짜로요!^^
━ 최ㅇㅇ
백일 글쓰기를 하면서도 글감이 없어서 힘들었던 적은 없다. 하루에도 할 말이 계속 생각나고, 궁금한 것, 함께 생각했으면 좋을 문제들이 자꾸자꾸 생겨난다. 요즘 읽고 있는 책에 대해서도, 띄엄띄엄이지만 꾸준히 보고 있는 드라마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거리가 생긴다. 문제는 그것을 글로 정리 할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한때는 그렇게 머릿속으로만 생각했던 글감이 시간이 지나면서 휘발되는 것이 아까워 키워드만 메모지에 쓰거나 핸드폰 메모장에 저장해두곤 했다. 그러나 그것마저도 시간이 지나니 반짝였던 글감의 빛이 바래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운전을 하는 동안 생각을 말로 하면 그 말을 문자로 받아 적어주는 프로그램을 이용해보기로 했다. 그러나 그마저도 핸드폰 사진첩의 사진처럼 의미없이 쌓이기만 하고 다듬어 정리할 시간이 없어 차일피일 글쓰기, 즉 그 정리와 기록이 미루어지곤 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생각이 든다. 그 수많은 생각들을 누구나 할 수는 있지만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그것을 글로 정리하고 꿰어두는 수고를 하는 것이 곧 능력이라는 생각 말이다. 어떤 드라마나 영화, 또는 책이 나와서 사람들의 주목을 받게 되면 그것을 보고 꼭 하는 말들이 있다. "저거 나도 생각했었는데!" 누구나 생각은 한다. 다만 그 작가와 누구나의 차이는 인내와 끈기로 그것들을 글로 차곡차곡 쌓았는지의 여부이다.
얼마 전 리더님께서 올린 메세지에서, 자신이 썼던 글은 언젠가 더 큰 선물로 돌아올 것이고 글은 배신이란 것을 모르는 생물체라고 표현하셨는데 어떤 의미인지 궁금했다. 내가 예전에 써두고 잠들어 있는 글도 결국은 내가 깨워야만 의미가 있을 것 같은데 말이다.
없는 시간을 쪼개어 글로 쓴 후 이제는 블로그와 같이 여러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공간에 꾸준히 올려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백쓰처럼, 때론 며칠의 공백이 존재할 때도 있겠지만, 언제나 나를 기다려 줄 그 공간으로 언제든 돌아가 생각을 정리하고 글로 표현해서 정말로 생각지 못했던 큰 선물로 돌아오게 될지, 기쁜 마음으로 한 번 속아보기로 했다.
━ 한ㅇ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