쿳시와의 만남
노벨반을 통해 남아공 출신의 J.M.쿳시를 처음 알게 되었다. 아파르헤이트 시대를 거쳐 포스트 아파르헤이트 시대의 혼란기에 호주로 떠나 국적을 바꾼 네덜란드계 백인 작가이기에 그의 작품에는 백인-흑인의 관계가 지배-피지배의 도식적 구도가 전도되는 현상이 나타나 있다. 백인 처녀 농장주가 흑인 부랑자들에게 성폭행을 당해 임신한 아이를 낳아 기르고, 인접 흑인 농장주의 보호를 받기 위해 그의 후처가 되는 선택을 새로운 시대에 걸맞는 새출발로 인식하는 결말을 쉽게 납득하기 힘들었다. 작가는 소설을 통해 독자에게 '새롭게 보기'를 시전하는 시대의 첨병이라는 말에 딱 맞는 작가인 것 같다.
그래도 쿳시를 만난 덕분에 남아공의 인종 문제에 대한 관심이 생겼고, 이왕 아프리카에 대해 들여다보기 시작했으니 찐(?) 아프리카인 작가가 쓴 아프리카 작품들을 접해봐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되었다. 쿳시만 해도 네덜란드에서 남아공으로 이주한 보어인 부모에게서 태어나 남아공의 지배 계급인 백인으로 살다 호주로 떠난 사람이니 그의 정체성의 기반에는 디아스포라적 기질이 잠재해 있겠다 싶다. 독서를 통해 이런 생각을 하면서 사유의 외연을 확장해볼 수 있어 감사하다.
━오용* 님
정말 이해하기 어려운 책이었지만 내용이 정말 좋아서 꼭꼭 씹어가며 읽었습니다. 선*님의 공감 카톡으로 마음이 전달 된다는 게 어떤건지 처음으로 느끼게 해주시는 관계성에 놀랐습니다. 노벨반의 힘이 아닐까요.
같이 으싸으쌰 22기도 독파해봅시다.
━ 변가* 님
짧은 글쓰기를 매일같이 루틴화하면서 나만의 문체를 고집한다는 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깨달았다. 이게 나인가 싶다가 어제의 나와 너무나 온도가 다른 나를 발견한다. 나도 이런데 작가로서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은 짐작도 못할만큼 어려울 것이란 짐작이 든다. 그래서 쿳시가 위대해 보인다. 자신의 보여지는 모습이 무엇이든 변하지 않는 본질적인 자신의 의견을 관조하는 것과, 그것을 다른 사람들 앞에 펼쳐보이는 일은 자신이 갖고 있는 생각이 어지간히 투철하지 않다면 불가능하다고 본다. 나는 여기서 쿳시가 정면투쟁 하는 모습을 본다. 여자로서 남자와의 투쟁이든, 비기독교인으로서 기독교인과의 투쟁이든, 채식주의자로서 육식인과의 투쟁이든, 이견을 가진 사람들이 나를 공격할 때 나의 정신을 보호하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나는 그게 작가정신의 본질이라고 쿳시가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엘리자베스 코스텔로, 아름다운 여자가 나오는 이야기인줄 알았는데... 쿳시라는 매력적인(+날카로운) 작가를 알게 되어서 좋았습니다. 좋은 책 선정 항상 감사드립니다!
━김성*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