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에 이렇게나 큰 원동력이 될 줄 몰랐죠."
"누군가의 마음이 낸 길.
우리의 마음이 낸 길.
아주 친절한 사람들과 글이라는 길을 내고 공유하고 있고 소통하고 있다는 믿음 때문에..
글 쓰는 길에서 느끼는 고독은 처절하지 않고
감미롭다....
때로는 괴롭고 고통스러운 이 길에 글동무가 있어서.
그것도 자신의 일처럼 나서서 관심을 갖고 길을 내어주는 꽤나 친절한 글동무들이 있어
갈만하다.
고마워요.
다.빛.나 여러분 그리고 밤호수 작가님"
<마음의 자수님>
매주 최소 2개의 글을 써서 밤호수 작가님께 제출하고 첨삭을 받아야만 하는 수업이었다. 위 커리큘럼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과제 나눔, 토론, 작문 이론, 주제 글 나눔" 이 이 수업의 핵심이었다. 사실, 나는 누군가에게 첨삭을 받아 글을 써본 적이 없었다. 회사 제안서, 업무 메일, 보고서 등의 논리적 글쓰기는 먹고 살려고 써봤지만 '에세이'라는 장르는 써본 적도 없고 '에세이'라는 의미 자체도 잘 몰랐다. 이 수업은 가장 가까이에서 나를 다정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게 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 이유는 남이 아닌, 나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글을 써야 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평소 생각하는 것, 나의 시선과 나의 감정 그리고 타인과 사물에 대한 솔직한 마음을 담아내는 글이 바로 에세이였다. 처음에 무척이나 방황했다. 밤호수 작가님의 첨삭은 칼날처럼 예리했다. 하지만 따뜻했다. '쇠는 두드릴수록 단단해진다'라는 말처럼 나는 더욱 나를 단련시켰다. 내가 쓰는 글은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나의 태도였다. 처음에는 '미사여구'로 나를 감춰보려고 했지만 밤호수 작가님은 셜록 홈스보다 더 뛰어난 탐정이었다. 그렇게 나는 점점 나를 찾아갔다. 분석적이고 체계적이며 위트 있고도 진지한 나의 글을 쓰고자 '특유의 몸부림'으로 매일 새벽에 글을 썼다.
<파파도서관님>
당신은 왜 에세이를 쓰고 싶나요? 글을 왜 쓰나요? 에세이 클럽의 첫 질문이자 마지막 모임까지 저의 화두였어요. 에세이 클럽을 신청했을 땐, 글을 잘 쓰고 싶었을 뿐, 왜 쓰고 싶은지 몰랐거든요. 무엇을 써야 할지, 어떻게 써야 할지도 몰랐죠. 에세이 클럽을 마치며 저에게 에세이란 ‘나의 이야기를 꺼내어 타인에게 다정하게 나누는 작업’이라 말하고 싶어요.
‘이야기를 꺼내어’라는 말은 특히나 저에게 의미가 깊어요. 저는 남태평양 남단 뉴질랜드에서 살고 있어요. 그중에서도 인구 6천 명밖에 안 되는 작은 바닷가 마을에서 여행자를 상대로 숙박업을 하고 있어요. 매일같이 여행자를 위해 빨래를 하고 청소를 하고 때론 아침을 준비하죠.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잡초를 뽑으며 나와 잡초의 다를 바가 무엇일까 생각해요. 자아가 쪼그라드는 순간들이 있어요. 매일 열심히 살지만 나란 존재는 어디서도 찾을 수가 없었어요. 아이들과 정원의 나무는 쑥쑥 자라는데 나는 언제나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만 같아요. 에세이 클럽은 이런 보잘것없이 여겼던 나의 삶에도 의미가 있음을 깨닫게 해주었어요. 소박한 삶이 하나의 이야기가 되면 다른 이에게 감동을 줄 수 있더라고요. 밤호수님이 ‘글은 보잘것없는 곳도 세상의 중심으로 만들죠’라고 말해주었어요. 저는 제 이야기를 꺼낼 수 있는 용기가 생겼어요.
에세이 클럽을 통해 ‘의미 있는 찐 독자’가 생겼어요. 내 글을 진심으로 읽어주는 독자가 있다는 것이 글쓰기에 이렇게나 큰 원동력이 될 줄 몰랐죠. 다빛나의 멤버들뿐 아니라 밤호수님이 연결시켜주신 멘토님들이 나의 글을 관심 있게 읽어주었거든요. 비판하기보다 칭찬하고 감탄해 주었어요. 애정 어린 눈으로 바라봐 준다는 것은 그 자체로 사람과 글을 변화시켜요.
밤호수님의 첨삭은 그중에서도 으뜸이에요. 들으면 들을수록 계속해서 더 듣고 싶은 잔소리였죠. 제가 글을 잘 쓰고 싶은 욕심에 수식어가 길어지고 말이 꼬이고 부사어를 남발하고 있다는 것도 이번에 알았어요. 일기가 아닌 에세이를 쓰기 위해서는 독자를 고려해야 해요. 독자를 위해 글을 다듬어 가는 과정을 저는 ‘다정하게 나누는 작업‘이라고 부르고 싶어요. 퇴고는 다정한 과정이죠.
<달콤한 영아님>
글을 쓰는 장소, 글을 쓰는 나 그리고 글을 나누는 지인들이 있다. 길 가다 우연히 만나지지 않을 이들은 우주의 기운으로 우연히 그날 그때 모였다. 모임을 만든 선생님이 살아온 궤적의 어느 한 지점에서 우리는 동시에 같은 점으로 모여들었고 잠시 그 점에 머물면서 같은 꿈을 꿨다.
‘에세이 클럽’에서 에세이를 쓰기로. 글의 주제, 스타일은 다채로웠다. 공통점이라면 고민이 많다는 점 정도. 그래서 모임에서 이 고민 저 고민을 나누다 헤어져 글도 고민스럽게 썼다. 이게맞나? 란 의문을 꼬리표처럼 달고 에세이는 뭘까? 란 질문에 답을 찾아서 소소한 일상을 거창한 척 써봤다. 그랬더니 에세이가 되었고 나에게 익숙하다 못해 식상한 일상이 누군가에게 새로운 이야기로 읽혔다. 어떤 소재든 에세이가 될 수 있고 써서 에세이라 이름 붙이면 되지 않을까하는 에세이의 무한함을 경험했다.
다채롭게 빛나는 우리의 시간은 여기까지로 제 1막을 정리한다. 이어서 제 2막을 준비한다. 우리의 다음이 어떤 모습일지 어렴풋하게 상상이 되는데, 이 상상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서 쓰는 수밖에 없다. 혼자서 힘들면 함께 쓰고 그래도 안 되면 다시 밤호수님을 찾아가야지. 방법은 여러 가지, 다만 멈추지 않고 쓰는 사람으로 남아 있으면 된다.
<벼루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