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문학상 수상자 작품 함께 읽기 25기 : <분노의 포도> 참여 후기


서로 도울 수 있는 연대의 당위성 짚어준 작품



 

좋은 작품을 읽으면서 작가가 독자에게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나 감동이 짙게 여운을 남기면서 생각에 잠기게 된다. 프론티어 정신과 아메리칸 드림으로 무장하고 신대륙 미국을 개척한 사람들의 분투 덕분에 미국은 20세기 세계 질서를 움직이는 강자가 되었다. 귀족이나 기득권층이 아니더라도 창의와 도전으로 부자가 될 수 있는 기회가 열려 있었고, 누구라도 부자가 되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게 되었다.

하지만 자본주의의 성공 신화를 맹신한 미국 사회의 모순과 병리적 현상이 곳곳에서 터져 나오면서, 이를 경고하는 작품들도 많이 나오기 시작했다. 1925년에 출간된 데어도어 드라이저의 <아메리카의 비극>과 스콧 피츠제랄드의 <위대한 개츠비>가 대표적이다. 십여 년 뒤, 1939년에 나온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도 이윤 추구라는 자본주의의 가치 앞에 타락하고 붕괴하는 공공선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위대한 작품들은 시대적 갈등의 심연을 깊이 새겨볼 수 있게 해준다. 이윤 추구 이전에 서로 도울 수 있는 연대의 당위성을 짚어 보게 해준다. 결국 가난한 사람만이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는 불편한 현실을 외면하지 않게 해준다. 분노의 포도가 영글어 터져 나오길 기대하는 독자의 기대를 노동운동이나 농민운동의 조직화를 직접적으로 촉구하지는 않고 끝나는 열린 결말이지만, 각성한 주인공이 그 방향으로 움직일 것임은 어렵지 않게 예측할 수 있다.

이 말이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이번에도 2025년 올해에도, 함께여서 가능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오용*

 

문체는 간결하고 묘사는 디테일해 가독성이 좋았다. 처음 제목만 보고 막연하게 관념적일 거라고 예상했는데, 작가는 현실적이고 건조한 문체로 덤덤하게 모순과 부조리를 말한다. 마지막의 열린 결말은 더 많은 가능성을 위한 작가의 의도가 아닐까 싶다. 사실 어릴 때는 희비가 확실한 마무리를 좋아했었는데, 중년이 되니 꼭 결말을 정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된다. 예측할 수 없는 게 삶이니까.

삶의 주인공이 될지, 유랑자로 떠돌아야 할지, 이 책은 선택에 대한 이야기다. 절망의 연속인 한가운데에서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질문을 던진다. 길고 지리한 문장속에 끈질긴 불안감을 주었던 만연체의 문장! 전체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웠던 내용들이 있음에도 그 안에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가(주인공들이 에스터르/벌루시커) 지키고자 했던 지성과 순수성이 야만과 폭력과 선동 거짓(이중성) 앞에서 얼마나 허무하게 짓밟힐 수 있는 것인지 말하고 있는 듯 이해했다.

주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