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포크너 함께 읽기《압살롬, 압살롬!》참여 후기



포크너와 함께 한 가을, 조금 더 깊어지고 넓어진 것 같다.




서트펜 신화의 결말이 고대 비극처럼 막을 내립니다. 그가 순진한계획을 세우고 시간을 아끼고 농축하며 쌓아올린 결과 서트펜 가의 마지막 후손은 검둥이 백치인 짐 본드입니다. 슈리브와 퀜틴은 헨리 서트펜의 은둔과 종말도 목격합니다. 아담의 계보를 기록하는 창세기 5장은 누가 누구를 낳고, 낳았으며로 이어지는 창조와 번성의 행렬입니다. 작품을 간결하게 축약하는 듯한 결말의 부분은 의도한 것처럼 선명하게 대비되는데, 누구와 누구는 누구를 죽게 했고, 죽게 했으며가 스산하게 이어집니다. 남은 건 단 한 명 뿐이라는 종결이 <백년의 고독> 결말을 연상시킵니다. 마르케스는 돼지꼬리까지 추가했지요. 남부의 부패와 부도덕을 청자나 전달자, 3자의 입장에서 지켜보던 퀜틴은 그 간격을 서서히 지우며 이야기 속으로 침잠합니다. 자기 통제력을 잃어가던 퀜틴은 전사(前事)와도 같은 <압살롬, 압살롬!>에서 감당하기 힘겨운 시간을 이미 축적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견디던 중압감은 결국 <소리와 분노> 퀜틴 섹션을 맞게 합니다. 

그럼에도 남부의 작가 포크너는 퀜틴의 목소리를 가져와 난 남부를 증오하지 않아.’ 라는 선언 같은 문장으로 작품을 마무리합니다. 작가가 타협하지 않는 시선으로 문제를 직시하고 고발하는 집요한 과정은 독자를 어렵게 합니다. 그럼에도 영원성과 유토피아를 추구할 때 동일성의 욕망이 증대하고, 오만은 반드시 멸망을 부른다는 걸 보여주네요. 포크너에게서 호메로스의 주제 또한 다시 한 번 상기하게 됩니다.

<압살롬, 압살롬!>을 읽으며 기쁘고도 압살당하는 것만 같은 한 달을 보냈습니다. 포크너를 읽다보니 겨울이 되었네요. 치열하게 읽고 나눠주신 선생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운영자 김은신 강사

 

 --------------------------------------------------------------------------------------------------------------------------------

 



전위적으로 높은 수준의 예술가들은 당대의 대중들로부터 외면을 당하거나 소외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20세기 미국의 위대한 작가 윌리엄 포크너 역시 아일랜드의 제임스 조이스처럼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실험적인 고급스러운 예술 작품을 썼기 때문에 오랜 시간이 지날 때까지 대중들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했다(p.547)

번역자인 이태동님의 평대로 난해한 포크너의 소설을 악전고투 끝에 완독하여 기쁘다. 작년에 처음 읽을 때 안개 속을 헤매듯이 헷갈려 힘들어서 이번 기회에 다시 꼼꼼히 읽고 단상을 정리하며 제대로 이해하고 싶었다. 여전히 헷갈린다. 천재적 작가는 왜 이렇게 어렵게 책을 쓰나 의문이 든다. 나의 취향은 아니다. '소설은 일단 재미있어야 한다'는 서머싯 몸의 견해를 따르는 편이다.

포크너의 소설은 그냥 편한 마음으로 술술 읽을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술술 읽어지지도 않지만 그렇게 읽다가는 기껏 읽은 내용들이 솔솔 빠져 나가버린다. 몇 번 씩 앞으로 돌아가 다시 확인하고 의미를 곱씹어야 겨우 윤곽이 잡힌다.소리와 분노처럼 다중 화자의 시점이 복잡하게 교차하지는 않지만, 잦은 플래시 백으로 서사가 왔다 갔다 하고, 누구인지 특정하지 않은 채 지시 대명사나 인칭 대명사를 언급하며, 무언가를 암시하는 단어를 밑도 끝도 없이 써대서 해독하기가 쉽지 않았다. 

게다가 압살롬, 압살롬!은 남북전쟁을 전후로 한 남부 요크나파토파란 상상의 공간에서 4대에 걸친 서트펜 가의 몰락을 그리는 계보 소설이어서 미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사전 지식이 동원되어야 하는 점도 독자를 힘들게 한다. 한국의 독자로서 공감이 크게 가지 않는 요소였던 것 같다. 하지만 어렵게 음미한 이번 독서가 내공 형성에 조금 도움이 되었으려니 여기고 위안을 삼는다.

 ━ 오용*님

 

자신과 그 주변에서 글쓰기가 시작된다는 원칙은 어디에서나 볼 수 있지만, 이렇게 도착적이다 싶을 만큼 치열하고 정교하게 쓴 작가를 만나기는 쉽지 않다. 여러 번 책을 놓을 뻔한 고비가 있었지만, 해설자의 말대로 한 번 끝까지 읽고 나니 포크너의 작품 세계에 도전하고 싶어지는 보상을 받은 것 같다. 서트펜의 악행과 남부에 서린 빈약한 도덕적 토대와 순혈주의에 골몰해서 읽다 보니 사실 이 해설에서 말하는 감동과 울림에 집중하지 못했다. 정신력 아닌 체력이 허락한다면 언제든 다시 꺼내 읽고 싶은 소설이다.

예전에 <소리와 분노>를 억지로 읽은 뒤, 윌리엄 포크너라는 이름을 독서 버킷리스트에서 지운지 오래였습니다. 피츠제럴드를 좋아했고, 뒤늦게 헤밍웨이의 재미를 알게 된 저에게 포크너는 너무나 이질적이고 낯설기만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줄거리에 끌려, 새로운 독서 자극이 필요해서 함께 읽기를 신청한 <압살롬, 압살롬!>은 포크너의 집요함이 이룬 성취를 느낄 수 있게 한 작품이었습니다. 독서를 한 건지 훈련을 한 건지 헷갈리기도 하고, 끊임없이 오독 여부를 점검하고, ''가 누구인지 헤매고, 매일 '여기까지만 읽을까' 고민했지만 영양제 먹듯 꾸준히 읽으니 결국 한 번은 읽어냈네요. 이 프로그램에 참여했기에 가능했습니다. 해설자가 말한 '힘들여 읽은 노력에 대한 보상''언제든 기회가 되면 포크너 작품을 하나씩 도전하고 싶은 마음' 형태로 온 것이 약간 당혹스럽고, 이번에 생각보다 공력이 많이 들어 계획했던 <자선 단편선>은 건너 뛰어야 할 것 같아 아쉽지만 직접 읽어야만 알 수 있는 포크너 소설의 재미를 알게 되어 보람찬 한 달이었습니다. 매일이 고비였지만 평일의 독서 훈련 끝에 맞은 주말의 충만감은 절대 못 잊을 거 같습니다.

 ━ 박*진님

포크너 작품 <압살롬, 압살롬!><소리와 분노>보다 힘들었다. 문장은 조금 적응이 되었지만 서사는 더 비극적이고 잔인했다. 이렇게 참담한 소설을 읽어 내려가면 무언가에 찔린 듯 명치가 뻐근해지고 다음 내용이 궁금하지만 두려워서 책장을 넘기기 싫기도 했다. 그래도 또 읽고 싶다. 다시 읽으면 작가가 우리에게 전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더 잘 보이지 않을까 생각된다. 역사 속에서 '순진성'이라는 단어로 표현되는 서트펜 같은 사람이 얼마나 많았을까! 인간은 ''만으로도 ''만으로도 이루어진 존재가 아님을 다시 느낀다. 포크너와 함께 한 가을, 조금 더 깊어지고 넓어진 것 같다.

참여하신 선생님들께서 나누어주신 글 덕분에 완독했어요. 함께 해서 감사했습니다. 매번 다정한 답글 주신 은신샘 감사하고 고맙습니다^^ 톡토론 모임은 다른 일정이 있어서 불참합니다. 죄송해요~~~ 모두들 한 해 잘 마무리하시기를 바래요.

 ━ 박*희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