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서구도서관 ‘최진영 작가 초청 강화여자중학교 북콘서트’

 

 최진영 작가 초청 강화여자중학교 북콘서트 

 

 말보다 글이 더 편한 사람, 최진영

저는 그냥 글이 필요한 사람이었어요




인천 서구도서관이 ‘2023 학교로 찾아가는 북콘서트기획으로 마련한 최진영 작가 초청 북콘서트가 지난달 22일 오후 140분부터 2시간여 동안 인천 강화여자중학교 대강당에서 열렸습니다.


숭례문학당이 진행한 이날 북콘서트는 가수이자 방송인으로 활동하는 안수지 작가가 사회를 맡고, 노래는 박찬영, 신가윤 두 가수가 맡아 무대를 채워주었습니다.


올해 단편소설 <홈 스위트 홈>으로 이상문학상을 수상해 다시 한 번 작품성을 인정받은 최진영 작가(42)2006<실천문학> 신인상을 받으며 활동을 시작해 장편 끝나지 않는 노래, 나는 왜 죽지 않았는가, 구의 증명등을 썼고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으로 2010년 한겨레문학상, <겨울방학>으로 2020년 백신애문학상, <이제야 언니에게>2020년 만해문학상을 받았습니다.


강화여중 학생들은 이번 북콘서트 기획을 위해 사전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가장 만나고 싶은 작가로 구의 증명을 쓴 최진영 작가를 1위에 올렸습니다. 최 작가는 현재 제주도에 머물고 있는데, 학생들이 자신을 가장 만나고 싶은 작가로 뽑았다는 소식을 듣고는 없던 일정을 새로 만들어 학교를 찾았습니다.


구의 증명은 사랑하는 연인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겪게 되는 상실과 애도의 과정을 통해 삶의 의미 혹은 죽음의 의미를 되묻는 소설입니다. 이 소설은 지난 2015년에 출간됐는데, 올해 역주행을 하며 베스트셀러 6위에 오를 만큼 입소문이 많이 났습니다.


최진영 작가는 이런 현상에 대해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싶기도 하고, 신기합니다라고 첫인사를 전했습니다.




올해 단편 <홈 스위트 홈>으로 제46회 이상문학상 대상을 받은 소감을 먼저 물었습니다.


“20대 때부터 거의 모든 수상작을 읽어왔던 상이었어요. 내심 바라기는 했지만 기대는 전혀 하지 않았어요. 기쁘고 행복합니다.”


<홈 스위트 홈>은 말기암 선고를 받은 여성이 병원 치료를 거부하고 시골의 폐가를 구해 수리하면서 새 을 준비하는 이야기입니다. 새 삶이란 결국 죽음일 것인데, 주인공은 생애 처음으로 시간과 공간의 구체성을 띤 기억을 이 집에서 쌓아갑니다.


강연은 종종 다녀봤지만 북콘서트는 처음이라 긴장돼요. 저는 말과 글 중에 글이 더 편한 사람이에요. 글은 담백하게 될 때까지 고쳐 쓸 수 있는데, 말은 덜어내는 게 불가능해요. 그래서 말을 많이 한 날은 집에 가서 잠들기 전에 이불킥을 할 때도 종종 있어요.”


말하기의 부담을 얘기했지만, 작가의 말은 조곤조곤 분명하고 표정도 밝았습니다.


이날은 강화여중 전교생이 모인 날이어서 작가의 학창시절 이야기와 그때의 꿈에 대해 묻는 질문이 많았습니다.


저는 중학생 때 혼자 조용히 지내던 학생이었어요. 작가가 된다거나 글을 쓰는 사람이 될 거라는 꿈도 없었어요. 책도 어린왕자정도만 읽었을 뿐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고요. 대학도 국어 과목을 좀 잘해서 별다른 생각 없이 국문학과에 진학을 했죠. 조용하고 소극적인 사람이라 남는 시간에 도서관에서 책을 읽기 시작한 게 아마도 작가의 길로 들어서게 했던 것 같아요.”


처음에는 흐릿하다가 살다 보면 점차 선명하게 다가오는 것, 꿈은 그렇게 자란다고 생각해요. 그러니 지금 당장 하고 싶은 일이 없다거나 꿈이 없다고 해서 주눅 들지 않았으면 해요. 꿈은, 나중에 찾아도 돼요. 이 말을 꼭 해주고 싶어요.”

 

나랑 함께라면 불행해져도 괜찮다는 사람



당연하겠지만, 글쓰기의 비법을 묻는 질문도 나왔습니다.


글쓰기를 잘 하려고 노력하거나 그런 적이 없어요. 저는 그냥 글이 필요한 사람이었어요. 내 감정을 말로 표현하는 게 어려웠어요. 그래서 오해를 살까 싶어 말을 아꼈다가 글로 쓰는 연습을 하기 시작했어요. 그게 일기라는 형태의 내 첫 글쓰기였어요. 따로 소설을 쓰려고 공부하진 않았어요. 어딘가에 뭔가를 배우러 다니는 성격이 아니었으니까요. 다만, 내가 풀어낸 내 감정 표현을 다른 사람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져서 무작정 공모전에 글을 보내봤는데, 덜컥 당선돼 등단하게 됐어요.”


최 작가는 자신이 어느 날 갑자기 소설가의 길에 들어선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학생들에게 꼭 일기를 써볼 것을 권했습니다.


자신에게 일어나는 감정을 표현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에요. 하지만 머릿속 생각을 문장으로 만들다 보면 내가 몰랐던 내 감정을 알 수 있어요. 나는 짜증이 났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글로 써서 읽어보면 내가 서운했었구나, 하는 걸 알게 돼요. 그러면서 감정에 이름을 붙이는 연습을 계속하다 보면 내가 나에 대해 조금씩 더 알아가게 되는 것 같아요.”


사랑에 대해서도 말했습니다.


내가 누군가를 좋아하는 감정을 글로 쓰다 보면, 나는 상대방을 사랑한다고 생각했었는데 차마 글로 안 써지는 경우가 있어요. 이때의 내 감정을 다시 들여다보면, 결핍이나 집착, 외로움 같은 다른 감정인 경우가 많았어요. 그래서 사랑이 참 어렵고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게 또 재미있는 것 같기도 해요.”


학생들의 관심사는 이윽고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소설 구의 증명에 닿았습니다. 이 소설에는 작가의 개인사가 녹아 있다고 합니다.


이별을 겪은 후로 더 이상 사랑하지 않을 거야, 하는 감정에 지배당할 때였어요. 그런데, 저는 결핍이 많아서 사랑이 필요한 사람이었어요. 그전까지 내가 생각한 사랑은 항상 행복하고 아름답기만 했어요. 하지만 막상 경험해본 사랑은, 아픔이나 질투와 같은 무섭고 어두운 감정들이 동반되어 있더군요. 사랑이란 이런 감정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소설로 이런 감정을 쓰다 보니 받아들이게 되더군요. 나랑 함께 행복하기만을 원하는 사람이 아니라 나랑 함께라면 불행해져도 괜찮다, 그런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이런 문장을 쓴 후 거짓말같이 다시 사랑이 찾아왔어요.”


사랑을 언제 확인할 수 있는지, 그 순간에 대해서도 말했습니다.


내가 바라보는 상대방이 어느 순간 약한 모습을 보일 때, 축 내려앉은 어깨나 자책하는 모습을 볼 때, 그럴 때 실망하기보다 마음이 찡하고 아플 때가 있어요. 저는 그때 상대를 사랑한다는 감정을 확인해요.”

 

우리는 모두 다르다는 걸 항상 잊지 않아야



작가의 소설 속 주인공은 잘나고 멋지고 성공한 사람들이 아닌데, 어쩐지 자꾸 눈에 들어오고 마음이 쓰인다, 왜 그럴까, 하는 질문에는 우리는 모두 언젠가는 죽어요.” 하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작가의 작품 속에는 삶과 죽음의 이야기가 많이 녹아 있습니다.


한 번뿐인 이 삶이 왜 이렇게 모두 다 다르지? 하는 생각을 해요. 우린 모두 스스로 선택해서 태어난 게 아니에요. 우연으로 태어났지만, 세상에 단 하나뿐인 존재죠. 그렇다면 그에 걸맞게 온전한 내 삶을 살아가야 해요. 그런데, 내가 아닌 주변의 많은 생각에 둘러싸여 있어요. (온전한 내 삶을 어렵게 하는 것들이죠.) 마흔이 넘은 저도 지금 학생 여러분과 크게 다르지 않은 고민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어요. 제가 사람들과 만나서 대화하고 경험하는 것들이 제 인생의 한 단락이라고 생각하며 담담히 결말을 향해 써 내려갈 뿐이에요.”


구의 증명이 뒤늦게 독자들의 관심을 끈 데 대해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출판사를 통해서 3년 전부터 읽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누구도 이유를 알지 못했어요. 2015구의 증명출간 당시 저는 그렇게 널리 읽히는 작가가 아니었어요. 그런데 제 책이 잘 팔리지 않는다고 해서 글쓰기를 포기하거나 제 작품에 대해 의심을 했다면, 그리고 제 작품을 실패라고 규정했다면, 그 이후의 제 책들은 아마 없었을 거예요.”


지금 당장의 결과로 성공과 실패를 구분할 수 없다는 걸 배웠어요. 시간이 지나면 다르게 해석되고 다르게 받아들여지는 것들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해요. 2015년의 내가 지금의 나를 먹여 살리고 있다는 느낌을 받거든요. 여러분도, 설사 지금 내가 능력이 없는 것 같다고 느껴지더라도, 나중에 510년 뒤의 여러분을 지금의 여러분이 먹고살 수 있게 해주는 힘이 될 수 있을 거예요.”


전교생이 다 모인 자리라 꽤 북적거릴 만했지만, 학생들은 작가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놓치지 않으려는 듯 귀를 솔깃 세우는 모습이었습니다. 작가를 응원하는 박수도 아낌없이 보냈습니다.




사회자는 행사를 끝내며 학생들에게 꼭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어떤 말을 전하고 싶냐고 작가에게 물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달라요. 그걸 잊지 말았으면 해요. 내가 존중받고 싶다면, 그만큼 타인을 존중해야 해요. 그것 말고는 방법이 없어요. 언제든 내가 가해자가 되는 순간이 찾아올 수 있어요. 그러니 항상 조심하려고 노력하고 마음을 다잡아야 해요. 우리는 모두 서로 다른 것뿐인데, 다르다는 이유로 밀어내고 손가락질을 하는 경우가 많아요. 이 세상에 똑같은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어요. 우리는 모두 다르다는 걸 항상 잊지 않고 살아갔으면 좋겠어요.”


박수가 쏟아졌습니다.


마치 최진영 작가의 대규모 팬클럽 모임 같았던 이날 행사가 끝나자 학생들은 하교 시간을 미루면서까지 너도나도 작가의 사인을 받기 위해 길게 줄을 늘어섰습니다. 제주에서 강화까지 먼 길을 날아와 준 최 작가에게 보내는 감사이자 지지와 성원의 표현으로 읽혔습니다.


/ 김민석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