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포크너 <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 / 곰> 함께 읽기 후기



포크너의 작품은 힘들지만 계속 읽고 싶어지는 묘한 매력이 있다




<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1년 전 작품인 <소리와 분노>와 견주어 심도는 조금 덜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주제를 전달하는 형식이나 톤에서 느낀 점인데, 화자의 회전율이 높은 게 독해에 장점일 수도, 오히려 단점일 수도 있다고 여겨집니다. 또한 <>의 아이작을 통해 작가는 미국 역사의 그림자를 낱낱이 지목하고 비판합니다, 새로운 시선과 관점을 제시하고 아이작이 그렇게 했듯이 구체적인 실천을 요구합니다. 이는 비단 80여년 전 동시대 독자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습니다. 작가는 더 힘써 읽고, 생각하고, 답을 찾기를 권합니다. 문제에 오롯이 직면하는 인물의 자리에 독자 자신을 세울 것을 요청합니다.

일독이 곧 완독일 수 없음을 매번 깨닫습니다. 완독은 과연 가능할지 점점 장담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함께 읽고, 논제로, 토론으로, 서평으로 다시, 또 다시 만나려 애쓸 뿐입니다. 기억의 쇠퇴는 빠르고 깨달음의 빈곤은 가속하기에 읽을 때마다 오독이었음을 발견할지라도 실망하지 않고 반복합니다. 포크너를 읽을 때, 복잡하고 난해하여 거듭 길을 잃고 고생하다가 문득 오로라나 오아시스를 발견하는 순간이 있습니다. 형언할 수 없이 아름다운 문장으로 풍광을, 자연을 언어로 그릴 때, 시간 등의 관념에 대해 서술할 때면 모든 피로가 일시에 사라집니다. 윌리엄 포크너는 읽을 때마다 매번 다른, 더 많은 얼굴을 보여주는 작가입니다.

가을이 깊어가니 빅바텀과 올드벤이, 샘과 아이작이 더욱 생각날 것 같습니다.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윌리엄 포크너라는 히말라야를 조금쯤은 엿본 시간이었기를 바라며 인사드립니다10월은 제가 가장 아끼는 포크너 작품 <소리와 분노>를 만납니다. 윌리엄 포크너 함께 읽기가 앞으로도 계속될 수 있기를 바래봅니다.

━ 운영자 김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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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

중간 중간 유머러스한 장면이 많다는 점에는 동의하지만 그마저도 너무나 블랙코미디여서 마냥 웃을 수만은 없었다. 이 작품에서는 삶의 무의미함에 절망하는 것에 조금 더 무게가 실려 있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이**

포크너 소설, 읽던 페이지를 두 번 세 번씩 읽으며 무척 특별하다 여기면서도 한껏 재미가 들렸는데... 몸이 안 좋아 완독을 못했네요. 올려주신 단상들 덕분에 더 흥미로웠습니다. 강사님 서평까지 올려주시니 천천히 완독에 골인해보렵니다. 감사합니다. "" 다음 책도 준비해 두었습니다^^

━한**

번역자의 해설을 통해 그동안 작품을 읽으며 느꼈던 포크너 문학의 난해함의 이유를 대강 알 수 있게 되었다. 열다섯 명의 화자에 의한 시점의 변화, 볼드체에 의한 의식의 흐름의 변화, 일인칭과 삼인칭 대명사가 누구를 지칭하는지 헷갈리게 하는 대명사의 불분명한 사용, 이상한 상징과 비유 같은 문학적 기법은 기존 독법의 상식을 뛰어넘어야 해독이 가능하기에 난해하기만 하다. 독자의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참여를 요구한다. 피곤하지만 인상적이고 의미 있는 독서였던 것 같다.

작년에 그의 대작인 <압살롬, 압살롬!>을 읽을 때 지난했던 경험이 있어 이번 독서에 큰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매도 일찍 맞으면 좋다. 그의 작품에 녹아 있다는 남부의 정서를 이번 작품에서 직접 느끼기는 어렵지만, <압살롬, 압살롬>에는 남부의 패배와 좌절감, 인종과 성적 억압 같은 정서를 깊이 있게 다루고 있어 그의 문학적 특성을 이해할 수 있다.

<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는 부조리한 죽음 여행이라는 주제를 깊이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다. 근래 가까운 친구들이 잠자리에 들었다 깨어나지 못하고 죽는 경우가 빈발하여 죽음이 나와 상관없는 일이 아님을 새삼 느끼고, '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날까를 짚어보는 계기가 되었다.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읽은 이후 가장 진지하게 죽음을 생각해 보았다.

━오**

 《

완독 진심 축하드립니다. 너무 어려워서 가독성이랄까요? 제겐 너무 어려운 도전이네요. 덕분에 많이 참조하며 거의 읽어내고 있답니다. 감사해요~!!! 강사님이 올려주신 서평에서 또 한 번 포크너의 소유 말고 공유철학이 느껴집니다. 바로 그 점이 제게도 무척 끌리는 것 같아요. 어렵지만 포크너의 사유를 좀 더 만나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소리와 분노] 함께 읽기도 기대됩니다.

━한**

포크너의 <>은 토지 사유제와 노예제도의 문제를 비판적으로 거론한 데 이어 인류 문명이 발전하며 일으키는 환경 파괴의 문제에 대한 생명론적 반성을 촉구한다. 비인간적인 노예제도야 오랜 갈등 끝에 제도적으로도 역사적으로도 종결되었지만, 토지 소유와 환경 파괴 문제는 여전히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현재진행형 과제이다. 환경 문제는 성장 문제와 충돌하며 토지 소유는 사유재산이 투쟁에 의해서 확립된 개인의 자유 문제를 깊이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일도양단으로 결론을 내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포크너의 문제 제기를 전향적으로 생각해보는 계기로 삼고 쉽지 않은 독서를 마친다.

윌리엄 포크너의 소설은 읽기 힘들다. 스토리 전개를 따라가며 재미와 의미를 찾아가는 전통적인 독법으로는 소화하기 어렵다. 가벼운 마음으로 쓱 읽으면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인지 헷갈리기 쉽다. 서사가 사건의 발생 순서대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수시로 왔다갔다 하고, 사건의 기술 도중에 갑자기 의식의 흐름에 따라 화자의 내면이나 기억의 내용이 특별한 문장 부호 없이 묘사되고, 볼드체로 강조된 문장이 길게 서술되기도 하지만 무엇을 강조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기도 하다.

그래서 그냥 읽고 넘어가다 이해가 되지 않아 다시 돌아가서 맥락을 살피고, 문장을 곱씹어 의미를 찾아보는 고된 작업을 불가피하게 하게 된다. 결코 쉽게 재미 삼아 읽고 마는 유형의 책이 아니다. 애써 의미를 찾았다 해서 끝나지도 않는다. 작가는 문제를 제기하고 독자에게 대답해보라고 촉구할 뿐 결코 답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그가 던진 질문을 몇 번이고 생각해 보고 나름대로 답을 내보는 되새김질을 해야 한다. 생각하기 싫어하거나 컨디션이 피곤한 독자라면 도중에 읽기를 그만두기 십상인 책이다.

다행히 끝까지 완독할 수 있었다. 혼자 읽었으면 중도에 포기할 뻔했다. 작년에 다른 독서 모임에서 포크너의 장편 압살롬, 압살롬!을 고생하며 읽은 경험이 있어 난해한 그의 작품을 읽는데 도움이 된 것 같다. 일종의 내성이 생겨 난해함이라는 펀치를 견뎌낼 수 있는 맷집이 생긴 것 같다. 포크너의 작품은 힘들지만 계속 읽고 싶어지는 묘한 매럭이 있다. 이름만 알고 미쳐 읽어보지 못했던 그의 다른 작품들도 이번 기회에 끝까지 읽어보고 싶다. 김은신 선생이 앞에서 페이스 런너처럼 구간 구간 끊어서 인도해주니 힘들지만 생각보다 무난히 완주한 것 같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