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아 작가, “소설의 완성은 독자의 몫”
─ 인천광역시청 주관 <정지아 작가 북콘서트> 성황리 열려 ─
숭례문학당이 인천광역시청과 함께 진행하는 인문학 프로젝트 ‘2023년 독서학습 토론과정’ 연수의 일환으로 기획된 <정지아 작가 북콘서트>가 지난 8월 30일(수) 인천광역시청 본관 2층 대회의실에서 성황리에 열렸습니다.
인천광역시청의 ‘독서학습 토론과정’ 연수는 직원들의 종합적 인문 사고 능력 배양과 함께 다양한 세대와 조직 간의 원활한 의사소통을 목적으로 금년 5월에 개설, 9월까지 약 5개월 동안 진행되는 장기 프로젝트입니다. 인천광역시청 총 47개과에서 신청한 다양한 직급과 직위를 가진 직원 60명이 2개 반으로 선발 편성되어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날 행사는 인문학 관점에서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에 대한 이해와 성찰을 목적으로 열렸습니다. 행사의 진행과 대담은 숭례문학당 김민영 이사가 맡았고, 가수 조다빈과 이재안이 뮤지션으로 참여했습니다.
초청해준 관계자들과 독자들에게 큰 응원 받은 것 감사
정지아 작가는 인사말을 통해 “태어나서 올해가 가장 바쁜 해”라며, 특히 “이렇게 자주 인천을 오가게 될지 몰랐는데, 방문할 때마다 초청해 주신 관계자들과 독자들에게 큰 응원을 받아 장거리 방문도 전혀 힘든 줄 모르겠다.”고 기쁘게 초청 소감을 밝혔습니다.
대담은 집필 활동 30여년 만에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으니 그 후 생활에도 변화가 있었겠다고 묻는 질문부터 시작했습니다. 정 작가는 “늘어난 통장 잔고도 반갑지만, 무엇보다 독자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다는 게 가장 행복한 일이었다.”고 말하고, “단점이라면 성격상 집에만 있는 편인데, 감사하게도 불러주시는 곳이 너무 많고 거절하기도 어려워 집을 자주 비우게 된다는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소설가로서 30여 년 동안 많은 작품을 냈는데, 이번처럼 대중의 큰 관심을 얻지는 못해 외롭지 않았느냐는 질문에는 “물론, 서운할 때도 있었죠. 하지만 저는 의외로 자기애가 높습니다. 대중은 명작을 보는 눈이 없다, 하는 생각으로 버텼지요. 제가 문학을 접하게 된 초심을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기도 했고요. 그러다보니 어느 순간 글 쓰는 일 말고는 다른 일을 할 수 없는 사람이 됐더군요. 그게 계속 글을 쓸 수 있는 원동력이 된 셈이기도 하고요.”라며 밝은 표정을 지어보였습니다.
책 제목 ‘아버지의 해방일지’에 숨은 비하인드 스토리도 들려주었습니다.
“제가 처음 정한 소설 제목은 ‘이웃집 혁명전사’였어요. 그런데 출판사 마케팅 팀에서 절대로 안 된다며 반대했어요. 시장성이 없다는 거죠.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온전히 편집자의 제안이었어요. 저는 사실, 당시 유행했던 드라마 제목에 묻어가는 것처럼 보이는 게 싫었습니다. 편집자는 요즘 시대는 표절보다 오마주나 밈 등 문화가 다르다며 저를 설득하더군요. 그 말이 일리가 있겠다 싶어서 편집자의 말을 신뢰해 보기로 했죠. 그런데 그게 주효했던 것 같습니다. 이 책은 제목 덕을 많이 봤다고 생각하거든요. 역시 나이가 들수록 젊은 사람의 말은 적극 수용해야 한다고 느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세상과 불통하던 한 사회주의자의 죽음이 맞닥뜨린 아이러니 표현
작가는 이 작품이 독자들에게 어떻게 전해졌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은 ‘전혀’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소설의 마지막 완성은 독자가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독자들이 모두 다르게, 제각각 받아들이는 걸 기대해요. 시간이 날 때마다 새로운 리뷰나 서평, 독후감 등을 찾아봅니다. 어떻게 읽고 보셨나, 궁금해서요. 그걸 찾고 발견하고 읽는 즐거움이 큽니다.”
독자들이 작품을 읽고 후기로 올리는 이념(이데올로기)에 대한 여러 가지 다양한 생각과 관련해서는 “살아온 시대마다 주어진 환경이 다르니 이념 또한 다를 수 있어요. 하지만 중요한 건 다 같은 인간이라는 점입니다. 저는 어렸을 때 반공 교육을 받고 자라서, 괴뢰군이 머리에 뿔 달린 괴물로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들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독자들이 이런 점을 생각하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당연한 일이지만,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은 작품 속 화자인 ‘나’와 현실의 ‘정지아’ 작가를 자주 연결해 보게 되는데, 그래서 현실과 허구의 경계에 대해 질문이 나왔습니다.
“참 아이러니한 것 같습니다. 제가 쓴 ‘빨치산의 딸’은 실록이라고 했는데 대중은 소설이라고 하고, 이번 책은 소설이라고 이야기하고 다니는데 독자들은 다큐로 받아들이십니다. 소설에 등장하는 캐릭터는 현실에서 가져왔지만 에피소드 대부분은 허굽니다. 일부 조연으로 등장하는 허구의 캐릭터도 있습니다. 주인공은 제가 아닙니다. 저는 아버지와 일찍 화해하고 굉장히 사이좋고 행복하게 지냈습니다. 이 작품은 소설적 가공을 거친 부분이 많아요. 살아오면서 느낀 갈등 상황들을 감정으로 표현할 만한 소설적 장치를 만드는데 공을 많이 들였습니다. 감정선은 저의 것이지만 상황은 허구라고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작품을 얼마 만에 완성했는지, 그리고 집필할 때 막히면 어떻게 풀어가는지 묻는 질문도 나왔습니다.
“아버님이 2008년에 돌아가셨습니다. 이후 제 내면에서 오랜 시간 이 작품 캐릭터를 만들며 지냈던 것 같습니다. 어느 정도 구상이 된 후 집필에만 걸린 시간은 한 달 정돕니다. 저는 글을 쓰다가 막히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놉니다. 스스로 해소될 때까지. 2주 동안 단 두 문장만 쓴 적도 있습니다. 아버지와의 이별이 힘들었기 때문이어서 그런지, 그 감정이 글에 묻어나는 게 싫었습니다. 아버지의 죽음을 되도록 우스꽝스럽게 표현하고 싶었어요. 전봇대는 전기의 이동을 상징합니다. 소통의 시작이 전기인데, 세상과 불통하던 사회주의자의 죽음이 맞닥뜨린 것이 전봇대라는, 그 아이러니가 재미있게 표현되길 바랐습니다.”
불편한 진실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인간은 단단해질 수 있다
작품의 배경이 된 구례에 대한 질문에는 “구례는 지리산과 백운산 사이의 정말 작은 면적의 땅입니다. (제가 사는 곳은) 걸어서 10분이면 끝에서 끝까지 갈 수 있어요. 빨치산이 활동하던 당시의 구례는 낮에는 군인과 경찰이, 밤에는 빨치산들이 먹을 걸 찾아 내려왔어요. 양쪽 모두에게 고통을 받은 곳이죠. 이곳은 가치관이 다르다고 해서 불화로 이어지는 경우가 없어요. 한순간 대립하다가도, 이런 작은 공동체에서는 언젠간 서로 필요해지기 마련입니다. 서로 밉지만, 또 도와야 하는 환경이 그렇게 만들어요.”라며 함께 사는 공동체의 지향점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작가는 또, “어머니 임종을 곁에서 지키려고 내려왔는데 어느덧 12년이 지났습니다. 연세가 아흔일곱이예요. 잠깐 머물 줄 알았는데 강산이 변할 때까지 살다 보니 이제 도시에서 살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아마 어머니가 돌아가셔도 구례에서 살아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빨치산 딸이 싫어서 구례를 떠나 서울로 갔지만, 그렇다고 제가 빨치산의 딸이 아니게 되는 건 아니죠. 본질은 변하지 않아요.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인간은 단단해질 수 있는 것 같습니다.”라며 고향 구례에서 사는 삶의 계속성을 전망했습니다.
그러면서 “시골에 사는 사람들은 절대로 우울증이나 폭력성이 나타나지 않아요. 이곳에선 샤넬 가방에 감자와 고구마를 담아서 다녀야 합니다.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으니 더없이 편한 몸빼 바지만 몇 벌 사 입는 게 다예요.”라며 시골살이의 소박함에 대해 덧붙였습니다.
이날 북콘서트는 작가 사인회를 끝으로 종료되었습니다. 정 작가는 꽤 긴 시간 동안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해 준 참석자들에게 다시 한 번 감사의 인사를 건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