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처럼 쓰기 9기 <박경리 - 토지> 후기 모음


   

 

내 마음에 글을 쓸 수 있게 날개를 달아 놓으셨다


처음 대하소설 읽기에 도전! 마음먹기가 한 달, 신청하고 맘 정하기 한 달이 된 것 같다. 나의 집중력이 점점 떨어져 책을 읽고도 무엇을 읽었는지 알 수 없어 신청한 작가처럼 쓰기강좌를 수강하게 되었다. 글쓰기 수업 강사님께서 추천한 필사 문장력 특강책도 읽으며 필사도 했다. 그야말로 필사에 집중했다. 그러던 중에 띄어쓰기 오류를 발견하고, 한글 맞춤법이 눈에 들어왔다. 신기했다. 내가 이런 게 안 되고 있었구나! 자신을 알아갔다.

드디어 첫 수업, 긴장감은 태어나 처음으로 느껴보는 떨림이었다. 그 떨림은 맑은 기분을 갖기에 좋았다. 토지 책을 사면서 내가 읽어낼 수 있을까? 그냥 필사하지 뭐, 그러면 뭔가 내 기억에 묻어나겠지하는 그런 마음이었다.

수업은 여지없이 다가왔다진행되면서 박경리 작가처럼 따라 쓰기를 연습했다. 강사님이 제시하는 과제는 책에 별점과 단상 그리고 한 단락씩 4컷의 단락이 주어졌다. 내가 읽고 이런 단락이 과제로 주어진다면 이렇게 써볼까? 읽으면서 생각하고 밑줄을 그어보며 읽어냈다. 언제나 그렇듯 나의 집중력은 믿을 게 못 되었다. 읽고 나면 항상 이런 내용이 있었나? 하면서도 예전에 드라마로 보았던 토지 대하드라마의 기억이 되살아나며 책과 함께 읽혔다. 인물의 특징과 그들의 삶이 보다 또렷하게 보였다. 강사님께서는 항상 수강생들의 글쓰기를 독려하며 조용하고 차분하게 하나하나 수강생들의 글을 분석하여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내 마음에 글을 쓸 수 있게 날개를 달아 놓으셨다.

1부에선 용이와 월선의 관계가 궁금했고, 2부에선 귀녀의 무모한 계획이 읽어내는 가속도가 붙었으며 3부에선 한복이 평사리를 찾아오며 성장해 가는 과정이 좋았다. 4부 일본이 수탈해 가는 과정에서 살아남으려는 평사리 사람들. 그래도 하루하루 삶을 이어가는 과정이 그때나 지금이나 살아가는 데는 별다르지 않구나……

과제는 그야말로 나의 글쓰기를 성장하게 했다. 같이 수강한 선생님들의 평가와 그들의 글을 읽을 때는 어떻게 썼는지를 알 수 있었다. 특히 문장의 구성과 짜임새, 문학적 요소들을 갖추어 놓은 글들은 나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 시간이 조금 더 주어진다면 좋겠는데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방학을 이용하여 듣게 된 이 수업이 아쉽게 단절이 된다는 게 애석하다. 다음에 또 시간이 맞으면 계속 수강하고 싶은 수업이다.

오수민 강사님 열강해 주시고 이끌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함께한 선생님들 열정 넘치는 평가 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또 뵙기를 희망해 봅니다. (*)

 

나를 붙잡아주며 새롭게 나아갈 수 있는 동력 얻었다


박경리 작가의 깊이 있고 섬세한 인물 묘사는 나의 가장 연약한 부분이지만, 기죽지 않고 계속해서 나만의 방식으로 변화를 주며 문장 쓰기를 연습하였다. 이 여정에서 함께하는 선생님들의 지지와 격려는 나에게 글을 쓸 수 있는 에너지를 주었다. 만약 이러한 지지가 없었다면, 나는 중간에 포기했을지도 모른다대단한 이 작품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내지 못하고, 작가의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 해도, 작가의 글에 조금이라도 발을 담그고 꾸준히 노력하기만 하면 된다. 포기하지 않으면 된다. 그럴 때 이 작가의 글이 나의 마음에 스며들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임하였다.

작가의 글을 조금씩 수정하고 나의 상황에 적용해 볼 때마다, 나는 작가로서의 자질이 조금씩 생겨나고 있다고 믿었다. 그렇다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믿고 간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부끄러운 글일지라도 칭찬과 격려를 통해 새로운 용기를 얻고, 서로를 격려하는 과정에서 더욱 힘을 얻을 수 있었다. 오수민 선생님의 작가처럼 쓰기는 바쁘고 시간이 없으며 자질이 부족하다고 포기하려 할 때마다 나를 붙잡아주며 새롭게 나아갈 수 있는 중요한 동력이 되었다. 조금씩 나아가다 보면 언젠가는 내가 원하던 곳에 도달할 것이라 믿으며 오늘도 한 발짝 더 내딛는다. 결국 중요한 것은 그냥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

 

이곳은 진정, 치유하는 글쓰기 상담소

 

그간 엄두도 내지 못했던 작품을 <작가처럼 쓰기>를 통해 함께 읽고 쓰고 곱씹으며 하동 평사리 누구에게 빙의해 보기도 하고 멀찌감치 관전하기도 하면서 , 사람에 대해 깊이 숙고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화나고 씁쓸하고 안타깝고 오만가지 감정으로 들쑤시더니 그보다 많은 걸 무심히 던져주는 인생 책임이 분명하네요.

두어 달, 4,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 동안 토지를 통해 삶의 희로애락을 조금은 담담하게 마주볼 수 있는 힘을 얻어갑니다. “쓰는 자는 모두 작가, 우리는 즐겁게 쓰는 자, 함께 쓰는 자라며 항상 응원해주시는 오수민 샘이 있는 곳, 매번 나온 말이지만 이곳은 진정, 치유하는 글쓰기 상담소입니다. 함께 해서 좋았습니다. 감사합니다. (*)


 “나를 사랑하는 방법이 또 하나 생겼다


토지를 읽고 필사를 하며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 작가처럼 쓰기를 통해 나를 사랑하는 방법이 또 하나 생겼다. 글쓰기였다. 글을 쓰며 나를 더 사랑하고 나의 글을 통해 누군가를 더 사랑하게 되었다. 글쓰기에 힘을 실어주시는 오수민 선생님과 함께하는 분들 또한 내게 힘이 되어 감사한 마음이다. 나의 글이 하나씩 쌓이게 될 때 나도 조금씩 좋은 사람이 되길 바래본다. (*)

위대한 문학작품 통한 위로, 당당하게 취해도 좋겠다

 

익숙한 토지를 이제야 읽기 시작했습니다. 비애가 없는 삶은 돼지만도 못하다는 작가의 말씀은 무수한 고난에 스러지지 않은 치열함이겠지요. 작가의 삶과 작품 속 인물들을 보면서, 작은 것에 휘청이는 내가 외면하고 회피한 시간에 대해 그러느라 자생력이 떨어진 온실 속 화초가 되었다는 걸 새삼 돌아보게 됩니다.

위화 작가의 말씀인데요. “절망을 느낄 때 소설 속 인물을 보면 왜 저렇게 행복할까? 하는 생각이 들 수가 있는데 그게 자신에게는 일종의 자극이 되고, 반대로 고난과 역경의 소설을 읽으면 이렇게나 힘들고 어려운 생활을 하고도 버틸 수가 있구나. 그럼 나도 해낼 수 있겠다 하게 되죠. 그래서 위대한 문학작품이 반드시 즐거움을 선사하지는 않는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위대한 문학 작품들이 언제나 삶의 고난과 비참한 운명을 알려주는 이치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우리보다 더 힘들게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마음이 한결 편해지기도 하고 앞으로 살아가는 데에 자신감도 생길 테니까요."

현실에서 누군가의 고난을 보고 상대적으로 내가 낫구나, 편안하구나 하는 감정을 갖게 되는 경우 그 감정은 불온한 것만 같아서 불편해진다. 하지만 문학작품을 통해서 갖게 되는 그런 감정이 나를 위로해준다면, 나를 한 걸음 내딛게 해준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사실 휴식을 일종의 로맨스물 혹은 근심걱정 없는 오락 프로그램으로 대체할 때가 많다. 드라마를 좋아하는 내가 오래전 드라마 토지를 진득하게 보지 않았던 것 또한 같은 맥락이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나 그건 시간 낭비라는 부메랑으로 이중의 역효과를 초래하곤 한다. 그러니, 위화 작가의 말대로 위대한 문학작품을 통한 위로를 당당하게 취해도 좋겠다.

작가는 찰스 디킨스와 도스토예프스키를 언급했는데, 박경리 작가의 토지를 읽었더라면 달라지지 않았을까 생각하는 내가 조금 웃긴가. 금세 사랑에 빠지는 전형일까. 아직 도입을 벗어나지 못한 채로도 작가에 대한 경외의 마음이 뭉클뭉클 오른다. 우선 토지정주행부터 하는 것으로. 이제 시작인 토지를 놓지 않고 잘 읽어가겠다는 다짐은 늘 하는 수많은 다짐들의 더미에 슬쩍 걸쳐 놓고 잊지 않겠노라는 다짐을 더 해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