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보다 중요한 건 매일 나를 향해 펜을 들었던 과정 그 자체다“
참으로 지난하고 긴 시간이었다. 최근 10년을 통해 이처럼 긴장감 있는 시간을 보내기는 오랜만인 것 같다. 처음 시작할 때는 호기롭게 가벼운 흥분 상태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부터 무리한 도전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매일 한편의 글을 100일 동안 써내야 한다는 부담감이 시간이 지날수록 체증되었고, 중간 정도 이후부터는 내 일상과 삶의 한계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삶의 양과 질이 단순하다는 이유로 글을 쓸 수 있는 더 이상의 글감을 찾을 수가 없었다. 매일 고민하며 글을 꾸역꾸역 쓰기는 했는데 정말 어떻게 시간이 흘러갔는지 꿈만 같은 시간들이었다.
글을 쓴다는 행위에 도전했다는 자체가 무리였다고 지금은 절감한다. 그리고 글쓰기를 위한 사전 준비가 많이 부족한 상태였음을 이 기회를 통해 절실히 느꼈다. 새로운 지식이 입력되어야 출력이 되는 것인데 입력 자체가 부족하였으니 출력이 원만하지 않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런 결론을 얻은 것만으로도 100일 글쓰기를 통해 얻은 값진 처절한 통찰이라고 스스로 위로한다. 그뿐만 아니라 이 100일 글쓰기를 통해 얻을 수 있었던 부수적인 배움들이 앞으로 어떻게 글을 대하여야 하는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준 것은 의외의 수확이다.
첫째, 글쓰기란 누군가에게 나를 보여야 한다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글의 내용에 대해서 한 번 더 생각하게 하는 검열의 시간이 반드시 필요함을 알게 되었다. 또한 글감에 대한 자세한 관찰과 깊은 사유가 필요하고 이해하고 배려하는 자세를 요구한다. 그런 노력이 결여된 글은 '좋아요'가 따라오지 않는 비참한 상황을 직면함을 감수해야 한다
둘째, 세상 매일 올라오는 일상의 이야기 들을 털어놓은 흔적들이 나의 삶에 자신감을 얹을 수 있게 했다. 모두가 숨을 고르듯 편안하게 머물며 떠는 수다가 특별하지 않은 단순함이었지만 오히려 철학적이었다. 그동안 나는 온 세상의 힘듦을 혼자 지고 사는 듯한 생각을 하곤 했는데 많은 분들이 같은 고민을 하고 살고 있으며, 그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여 헤쳐 나가고 있음을 엿볼 수 있어 용기를 얻는 기회가 된 것이다. 그래서 그 글을 모티브로 한 글을 쓰면서 그들과의 공감을 교류하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성숙하지 못한 어린왕자가 뭇 별들을 돌아다니며 배우고 성장한 것처럼 서로에게 길들여진다는 의미를 삶에 녹여 낸다면 외롭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셋째, 내 안의 완고함에서 벗어나야 함을 알게 되었다. 누구나 자기 삶의 철학이 있고 원칙이 있을 것인데 특히 나와 같은 60년대에서 70년대를 살아온 사람의 고정관념은 불가역적이다. 글에서 사용하는 단어나 문장 그리고 문체가 딱딱한 것이 나의 성격과 비슷하다. 타인이 글을 읽기에 많이 불편함을 알면서도 그 시대의 한자어 등을 지금도 자연스럽게 사용하고 있다. 또한 글의 중심에 내가 있는 경우가 다반사인데 타인을 중심으로 글을 써본 경험이 없어 부단한 노력이 요구되는 사항이다
이렇듯 매일 새로운 글을 갈구하는 시간들로 100일을 보내면서 나를 알게 되고 상대를 이해하게 되어 얻은 것도 많이 있다. 그러나 정작 글쓰기 실력이 늘어났느냐는 글쎄요? 라고 할 수 밖에 없다. 처음과 지금의 상황을 비교할 때 오히려 나를 표현할 수 있는 어떠한 글감도 없는 듯 지금은 막막한 상태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누군가와 함께 있다는 사실이 큰 버팀목이 되었다. 아마도 100일 글쓰기가 종료되면, 공감하며 의지할 수 있는 누군가가 없다는 공허함으로 불보듯 뻔하게 글쓰는 일을 뒷전으로 밀어 낼 것이다.
100일 글쓰기를 하면서 수없이 그만두고 싶었던 유혹을 견뎌내야 하는 어려움도 있었지만, 아날로그 적인 삶에서 벗어나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넓게 바라볼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 새로움들이 내 삶의 생체리듬을 활성화 시켜주었고 글쓰는 동안만큼은 열정으로 세상에 존재 할 수 있게 해준 100일 글쓰기에 감사한다. 그동안 글 같지도 않은 끄적거림을 봐주신 모든 분과 리더님에게 감사드립니다.
━ 임**
약 6개월 전에 100일 글쓰기를 했었다. 이번이 두 번째 100일 글쓰기다.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100일을 완주하는 것을 목표로 삼지는 않았다. 현직에서 직장생활을 하며 매일 정해진 시간에 글을 쓴다는 것이 쉽지 않고, 업무에 쫓기다 보면 자연스럽게 뒤로 밀리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약 20번 정도 글을 썼다. 후회는 없다. 100일 동안 빠짐없이 써야 한다는 목표보다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 자체가 내 삶에 의미 있는 자산이 되었기 때문이다.
글을 쓰는 이유는 뛰어난 작가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속적으로 공부하고 생각하는 습관을 만들기 위해서다 그런 점에서 이번 100일 역시 충분히 뜻깊었다. 다만 타인의 글을 깊이 읽으며 생각의 폭을 넓히지 못한 점, 유머나 가벼운 수필처럼 다양한 시도를 해볼 마음의 여유가 부족했던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글을 쓰면서 주제가 나도 모르게 반복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경험이 쌓일수록 스스로 옳다고 믿는 관념이 단단해지고, 젊은 사람들에게 삶의 방식을 가르치려 하는 '꼰대'의 태도다. 왜 비슷한 이야기를 반복하고 특정 주제에 집착하는지 100일 글쓰기는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만들어 줬다. 당분간은 매일이라는 부담 없이 쓰고 싶을 때 쓰고, 바쁘면 쉬어가며 생각날 때 다시 펜을 들 생각이다. 나이가 들수록 기억은 희미해지지만 글로 남겨둔 생각과 감정은 언제든 다시 살아나기 때문이다. 만약 세 번째 100일 글쓰기를 시작한다면 그때는 삶을 가르치려 하기 보다 타인의 글을 더 많이 읽고, 한결 여유로운 시선으로 세상을 담아보고 싶다. 그동안 나 자신을 깊이 돌아볼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이번 글쓰기는 충분히 가치 있었다.
━ 강**
나는 왜 자꾸 일을 벌이는가, 나는 왜 계속 시도하는가, 나는 왜 이런 작은 성취들을 좋아하는가.
재미있게 사는 것, 좋은 것들을 나누는 것을 좋아하는 성질이라고만 생각해오던 것들에 새삼스럽게 물음표를 붙여 본다. 나에 대해서 궁금한 게 많다. '궁금'과 같은 해맑은 단어보다, 해소되지 않은 문제에 대한 물음표라는 점에서 '의문'이라고 하는 게 낫겠다. 그 말은 다시, 내 행태를 해결해야할 문제라고 보고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누구도 아닌 바로 나 자신이 말이다.
나고 자라면서 '못한다'는 타박도 듣지 않았지만 '잘한다'는 칭찬도 듣지 못했던 것 같다. 관심밖에 있었다고 할까. 할머니가 더할 수 없이 사랑을 주셔서 지금 이렇게 크게 흔들리지 않고 살아가고 있지만 없으면 없었지, 자라는 내내 같이 살았던 부모님의 무관심이 아쉬웠던 것 같다. 수년 전에 그림책을 읽고 마음의 이야기를 나누는 모임이 있었는데 지금 부모님께 듣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라고 했다. 어렵지 않게 생각했는데, 평소에 생각해보지 않은 말, '잘했다'였다. 내가 이뤄온 크고 작은 성취들을 인정받고 칭찬받고 싶었다는 걸 그때 알았다.
어렸을 때는 친척들이 공부 잘하는(성적 좋은) 언니들의 안부만 궁금해했다. 바로 옆에 있는 나나 작은 언니는 없는 사람이었던 기억이 난다. 그게 서러웠던 건 단 하나, 부모님의 인정과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내가 특별히 노력하지 않아도, 나의 타고났거나 자연스럽게 길러진 어떤 면들로 학교에서 상도 여럿 받았고, 선생님들의 관심과 인정도 있었다. 그게 기쁘기보다, 받고도 쓸쓸했다.
시간이 흐른다는 건 축복이 맞다. 언젠가 부터는 부모님의 인정과 관심보다 내가 나를 인정하는 게 더 중요해졌다. 그건 더 가혹할 수도 있지만, 더 쉬울 수도 있다. 앞서 제시한 나에 대한 의문 '나는 왜 자꾸, 나는 왜 계속, 나는 왜 이런'에 대한 대답이다. 나는 자꾸, 계속해서 나를 인정할 거리들을 찾고 있다. 나를 칭찬해주고 싶어서 안달이다.
━ 강**
드디어 100일이다. 이날까지 쓸 수 있을지 자신은 없었다. 매일매일 숙제하듯 쓰다 보니 100일이다. 아마 101일은 힘들 것이다.
언제부턴가 글을 써야지 생각만 하다 미루고 미뤘다. 책상 앞에 똑바로 앉아서 써야지 하다가 그 책상 앞까지를 못 갔다. 올해가 되어 이제는 써야겠다, 조금씩이라도 써야지 하다가 미적거리고 있다가 '100일 글쓰기'를 만나 지원했다. 처음엔 막상 쓰려니 뭘 써야하나 싶었는데 아침에 우연히 들른 김밥 집에서 유쾌한 할머니들을 만나니 절로 써졌다. 그러고도 며칠은 우연히 이어져 쓸거리가 계속 생겨 누군가 격려해주는 듯도 했다. 계속 쓰다 보니 관성이 생긴 것인지 폰을 들고 엄지로 자판을 누르다보면 원고지 4~5매 정도는 채울 수 있었다. 가능하면 아침에 후다닥 써서 숙제 마치고 볼일 보고. 어떨 땐 누워서 쓰기도 하고. 굳이 책상 앞에 앉아야하는 게 아니라서 폰으로 쉽게 써서 좋았다.
그런데 쓰는 건 쓰는데 글이 나아지진 않았다. 써놓고도 제대로 표현해내지 못한 것 같아 제미나이에게 물어보면 기가 막히게 잘 정리해주고 원래 말하고자 했던 것도 잘 짚어주었다. 글은 이렇게 써야하나 싶고 그 글을 올리려다 그건 내 글이 아닌 것 같았다. 나의 경험과 내 생각이 들어있고 표현도 잘 되어있는데 내 글이 아닌 듯한.
5매 정도가 한계인 것 같다. 그 이상을 써보려 하면 딱 막히는 느낌이다. 일정 기간이 지나야 할까. 그래도 그때그때 떠오른 생각들을 흘려보내다 서투른 글 속에라도 집어넣어 본 건 잘한 것 같다. 다른 분들의 글을 제대로 못 본 건 아쉽다. 그만큼의 여유가 없다. 몇 분 글만 팬으로서 보긴 했지만.
내일부터는 편해질 것인가, 아쉬워질 것인가. 이렇게 100일 정해놓고 하는 만큼 매일 쓰지는 않을 듯하다. 그래도 지금처럼 가끔씩이라도 메모장에 쓰긴 할 것이다. 아쉬움이 있다면 생각이 짧고 표현이 부족하다는 거. 혼자만의 글이 아니라 소통하는 글이 되면 좋겠는데 여러모로 부족함을 느낀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오프로 글쓰는 모임을 해보고 싶다.
━ 성**
처음 글을 쓸 때는, '글을 꾸준히 쓰면 잘 쓰게 된다'라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기에, '이 도전을 마치고 나면, 나는 얼마나 글을 잘 쓰게 될까?'라는 설렘으로 도전을 시작했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니 내가 얻은 것은 의외의 것이었다.
이 발전을 체감한 것은, 영화 '호프'의 후기를 쓰면서였다. 나는 영화를 보는 것을 꽤 즐긴다. 영화는 내가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의 입장을 전달해 주고, 그 입장에서의 생각을 하며 내 세계를 넓히게 돕는다. 그런 것 없이, 순수하게 즐기기만 해도 좋다. 그런 내게, 영화를 보고 나서 생각을 나누고 대화하며 그 영화의 새로운 면을 발견해 간다는 것은 너무 하고 싶은 일이었다. 그래서 항상 서평을 써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그런데 머릿속에 있는 막연한 감정이나 말들을 밖으로 꺼내는 게 어찌나 어려운지. 소위 밈으로 도는, '내가 하고 싶은 말과 내가 할 수 있는 말', '아 어 진짜 대박짱' 정도의 말밖에 나오지 않는 것이었다. 이로 인해 때로는 소통을 포기하고 끙끙거린 적도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책상 앞에 앉자마자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를 만큼 수월하게 글이 술술 써내려가지는 게 아닌가! 누군가에게 나는 이렇게 봤다고 공유해도 남부끄럽지 않을 만큼.
글이란, '내 머릿속의 작은 뚜껑을 열어 그 안에 뭐가 있는지 사람들에게 내보일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능력을 갖추는 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문자의 가장 기본적인 능력이 새삼스레 대단하게 느껴졌다. 의사소통과 기록. 태어나 문자를 접한 지가 30년. 이제야 글의 의의를 다시 깨닫게 된 것만 같다.
소통이란 건, 여러 분야에 쓸 수 있다. 앞서 쓴 것처럼 영화 소감을 적을 수도 있고, 전시회 후기, 일상 등 내가 담고 싶은 것을 담아낼 수 있는 틀이다. 이렇게 가볍게 쓸 수 있다면, 기승전결과 플롯이 있다면 짧은 소설도 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는 요즘이다.
전에는 글을 쓸 때, 내 머릿속에 문장이 완벽하게 먼저 있지 않으면 그것을 옮기는 것이 힘들었다. 하지만 이제는 내 뇌가 손끝에서 사고하는 마냥,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나싶게 글이 바로 바로 써진다. 심지어, 어색한 표현이나 문법적 오류도 전엔 수두룩했는데 이제 문장이 앞뒤를 갖추어서 써진다. 물론 다듬고 꾹꾹 눌러 쓴 글도 좋다. 하지만 나는, 그것만 생각하느라 지금 같은 글쓰기를 하지 못했는데 스스로의 변화가 뿌듯하다.
이번 글쓰기가 만족스러워서, 다음에 또 열리면 다시 해볼까 싶기도 하다. 그 때는 나만의 도전 목표를 만들어서, 특정 기간 동안에는 색다른 어휘를 사용해보기라던가, 기간을 나눠서 짧은 소설을 써본다던가, 주제를 정해서 에세이를 써본다거나 해도 좋을 것 같다.
좋은 기획과 만족스러운 도전이었다. 함께 완주하며 댓글과 좋아요로 힘을 주신 동료분들과, 기회를 만들어 주신 숭례문학당과 리더분께 감사를 드린다.
━ 조**
네가 잘 해낼 줄 알았어. 작년 12월 31일 운동이라는 걸 처음 해보면서 새로운 걸 얼마나 꾸준히 하고 싶어 하는지 알게 됐잖아. 운동에 대한 대단한 목표보다는 절실한 마음이 더 컸으니까 그런 걸까. 그저 운동을 하고, 하기로 한 주기를 지키고, 그리고 느끼든 느끼지 못하든 조금씩 그 시간이 루틴이 되어가는 게 신기했잖아.
100일 글쓰기도 그런 마음이었어. 글쓰기는 자연스러운 일이고 루틴이지만 굳이 100일이라는 기간 동안 다른 도반들과 함께 나눈다는 게 새로웠달까. 스무 명의 도반과 함께 날마다 글을 써나가는 하루하루가 예상 밖의 전개였던 거 같아. 네가 그 시간을 기다리고 즐거워하고 또 집중하기도 하는 모습들이 오랜만에 좋아보였어.
가족과 사랑하는 랑랑이 이야기, 직장 이야기, 너의 마음 이야기, 친구들과 지인들 이야기들이 가득했어. 어쩌면 네가 좋아하고 아끼는 존재들이었을 거야. 너 자신까지도. 마음이라는 게 생각보다 잘 들여다보고 꺼내 보면 그렇게 어려운 수학 문제가 아니라고 느끼는 듯했어. 하루하루가 팍팍하고 어쩌면 올해 가장 무거운 시간들을 지나가고 있지만, 글쓰기만큼은 무겁지 않아 보였어. 자연스러운 시간이었달까.
네가 가장 관심이 가는 것, 네가 하고 싶어 하는 이야기들이 많아서 좋았어. 후 하고 숨을 내뱉으라는 한의원 원장님 말처럼 100일 글쓰기가 너에게 그런 들숨과 날숨 같았어. 숨을 고르는 데 글쓰기만큼 너에게 맞는 게 없다는 걸 너도 또 알았지? 네가 좋아하는 읽고 쓰고 어떤 식으로든 기록하는 삶이 앞으로도 계속 이어나가길 나도 응원할게.
좋아하는 것을 일로 하지 말라지만 너는 좋아하는 걸 일로 하고 있으니 앞으로 더 재미난 시간이 올 거야. 잊을 수 없는 이 뜨거운 100일의 시간도 입추를 지났잖아. 이제 가을도 겨울도 무슨 일이 생길지 기대하면 어때. 가만히 들여다보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재미가 100일 글쓰기에서 가장 좋았던 거 맞지? 그 어떤 것보다 네 시간과 네 삶을 정성껏 마주하는 네가 참 고맙더라. 누가 뭐래도 너는 너답게 너의 보폭과 속도로 걸어 갈거야. 내일부터 다시 1일이다 그치. 100일도 잘했으니, 1일부터 다시 또 신나게 해보자.
인생, 다 기세라잖아. 압도적으로 즐기며 성실하게 살았으니 또 압도적인 내일을 기대하자. 눈에 힘 딱 주고, 네가 좋아하는 아기 예수 탄생을 기다리는 대림절에 별표하고 알지? 멋지다. 이 기세로 계속 가줘. 어떤 풍경들을 마주하게 될지 기대된다. 그 장면들 잘 기록해 주겠지? 언제든 나는 너랑 함께할 거야.
━ 송**
100일이라는 시간의 끝에 섰다. 매일 글을 써내려가는 일은 결코 녹록지 않았다. 어떤 날은 술술 써지기도 했지만, 도저히 쓸거리가 떠오르지 않는 날도 있었다. 몸이 무겁고 피곤해 '오늘 하루쯤은 그냥 넘어갈까' 하는 유혹도 찾아왔다. 깊은 밤, 이미 잠에 들었다가도 빠뜨리면 안된다고 맞춰둔 알람 소리에 벌떡 일어나 마감 시간 전에 써내려고 애쓴 날도 있었다
100일쯤 지나면 글쓰기가 매끄러운 일상의 루틴으로 자리 잡을 줄 알았지만, 사실 여전히 쓰는 시간은 들쑥날쑥하다. 그러나 분명한 변화가 내 안에 남았다. 예전에 평생교육원에서 들었던 일상의 글쓰기 수업은 일주일에 한 편, 깊이 있는 글을 완성해내야 하는 또 다른 무게감이 있었다. 하지만 매일 단 한 줄이라도 채워가며 100일을 견뎌낸 지금, 내게는 다소 자신감이 생겼다. '이제 일주일에 한 편쯤이야 얼마든지 쓸 수 있겠구나' 하는 마음이다.
돌아보면 삶은 늘 선택의 연속이었다. 평생교육원 글쓰기 수업 등록 시기를 놓쳐 아쉬워할 때 숭례문학당에서 100일 글쓰기 안내 메일이 왔다.
글 쓰지 않으니 하루하루가 무의미하다고 느낄 즈음이었다. 기회가 주어질 때 망설이지 않고 얼른 붙잡아 책임을 다하다 보면, 결국 내가 원하던 방향으로 삶이 흘러가곤 한다. 타인에게 보이는 모습과 내 내면이 자연스럽게 일치해가는 느낌, 그것이 글쓰기를 통해 내가 얻은 가장 큰 선물이다. 언젠가 '사랑하는 이를 위해 할 수 있는 최고의 일은 내가 잘 살아가는 것이다'라는 문장을 읽고 마음 깊이 공감한 적이 있다.
시골 생활의 고됨 속에서 나를 걱정하며 "엄마,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즐겁게 지내"라고 말해주던 딸들의 얼굴이 스친다. 자식들에게 엄마라는 존재가 그저 '희생'과 '헌신'의 이름으로 남아 마음을 아프게 하고 싶지 않았다. 나 자신을 온전히 돌보며 안온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고, 매일 나를 돌아보는 이 글쓰기 여정을 통해 이제는 정말 그럴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든다.
아직도 글 속에는 고쳐야 할 부분이 많고, 나의 글쓰기는 여전히 미완성이다. 하지만 글을 쓰며 나를 마주했던 날들과 그렇지 않았던 날의 삶은 명확히 달랐다. 글을 쓰는 시간은 오롯이 나를 돌아보며 어제보다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힘찬 발걸음이었다. 어제보다 조금 더 나은 나를 그리며, 차분하고 단단하게 잘 여물어가는 내 삶을 준비하는 이 여정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비록 내 걸음이 남들보다 느릴지라도, 매일 멈추지 않고 이어온 그 걸음에는 분명 단단한 힘이 있다고 믿는다. 100일 동안 나와의 약속을 지켜낸 나 자신에게 다정한 응원을 보내며, 앞으로 펼쳐질 또 다른 글쓰기의 날들을 반갑게 맞아본다.
━ 박**
뜻하지 않게 100일 글쓰기와 일본 장편 드라마 <만복> 전체 151화 보기를 동시에 마무리하게 된 날이다. 드라마는 별 생각 없이 시작하였는데 참으로 많은 생각과 즐겁게 공부를 하는 계기가 되었다. 동시에 일본에 대한 이해가 심각하게 부족한 상태라는 사실도 깨달았다. 100일 글쓰기의 후반부에는 <만복> 감상 후기가 오늘까지 해서 14회나 차지하게 되다니 생각지도 못한 성과물이다. 놀랍게도 <만복>의 회차가 거듭될수록 찾아보고 싶은 내용은 더 쌓여갔다. 100일 글쓰기 긴장이 풀리면 잊어버릴 수도 있어서 생각나는 대로 적어본다.
일본 대학생들의 여성 인권 운동 '우먼 리브, 일본의 학생운동, 생전 장례식, 일본 근대 이후 화풍의 변화 과정, 패전 이후 미 진주군의 통치, 패전 후 복구 과정, 일본의 고속 경제 발전 과정과 기생관광, 일본 기업의 경영방식, 일본 극우의 실태, 일본 내 베트남 반전 운동, 재일 한국-조선인 정착의 역사와 차별문제, 재일 한국인 기업가의 성장 스토리. 일본 내 미국 문화의 이식과 전파, 일본 킷사텐(커피집)의 역사, <만복>에 등장하는 일본 국민 배우 등등 궁금한 점이 매우 많다.
최근에 대전을 다녀와서는 매우 특이한 점을 발견하였다. <만복>의 주인공 만페이의 인생 여정이 대전 빵집 성심당 창업주인 임길순 암브로시오 (1912. ~ 1997)의 스토리와 매우 닮아있다는 점이다. “모든 이가 다. 좋게 여기는 일을 하도록 하십시오." (로마서 12,17)라는 성심당의 사훈과 만페이의 "세상 사람들을 기쁘게 하고 이롭게한다"는 철학이 거의 비슷하다. 일본 패전(만복)과 한국 전쟁(성심당)을 겪으며 고난과 혼돈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기반을 구축한 점도 그렇다. 성심당의 현 대표이자 장남 임영진 요셉(1954~) 주도하에 개발한 튀김 소보루빵, 크림 케잌, 컵빙수는 <만복>에서 만페이의 '즉석라면', '컵누들' 발명과 맞물리며 음식 문화에 혁신을 가져온 점도 유사하다. 생각을 거듭할수록 성심당의 스토리도 드라마나 영화화하면 좋지 않을까 하는 바람을 가져보게 된다.
빵과 라면 발명에 수많은 밤을 새워가며 고민했다는 뒷얘기처럼 어찌 보면 글쓰기도 끊임없는 발명과 창조를 위한 몸부림인 것 같다. 글감을 발굴하라. 생각을 입혀라. 본인의 글로 완성(창조)하라. 100일 글쓰기를 마치며 드는 생각이다.
세련된 퇴고는 못하였지만 활어회 같은 글감이 분출했을 때 엉성하게나마 잡아놓을 수 있게 된 날들이 무려 100일이나 되었다니 뿌듯하다. 날마다 거르지 않고 해냈다는 사실에 스스로를 칭찬하고 싶다.
아쉬운 점도 몇 가지 있다. 문우님들의 글을 다 읽어보지 못한 것, 간혹 읽더라도 다정한 댓글을 일일이 올리지 못하고 좋아요 표시만으로 끝낸 점이다. 100일을 시작할 때는 모든 분들의 글을 읽는 게 당연하고 그럴 수 있으리라 여겼고 처음에는 열심히 읽기도 하였다. 참가자들의 성향을 파악하고 그에 맞는 글도 써봐야겠다고 맘먹었다. 그런데 웬걸, 차츰 마감에 쫓기느라 내 글도 제대로 퇴고하지 못한 채 마무리하는 날이 반복되고 그러다보니 너무 피곤하고 마음에 여유가 없었다. 민망하고 초라한 핑계이지만 슬쩍 내놓고야 말았다.
아침 글쓰기를 하면 차분하고 좋으련만, 그게 잘 되지 않았다. 하루에 느끼고 보고 경험한 내용을 일기처럼 정리하는 밤 시간이 글을 쓰는데 집중력이 높았다고도 할 수 있다. 아무리 밤 시간이라 한들 혼자서는 물론 불가능했을 것이다. 마감에 쫓기니 써졌고, 마감에 쫓기느라 완성도가 떨어진 글이 나올 수밖에 없었던 아이러니.
글쓰기는 체력이 뒷받침되어야 함을 절실히 느꼈다. 피곤이 엄습하면 글을 쓸 수도 타인의 글을 읽을 수도 없다. 나의 불성실한 태도에도 불구하고 여러 문우님들의 공감표시와 댓글, 이순영 리더님의 격려의 댓글은 글쓰기의 추동력이 되어주었음에 감사에 감사를 드리고 싶다. 다양한 연령대 문우님들이 인생이야기와 성찰에 관한 내용을 들려주셔서 또한 감사하다
오늘까지 이끌어주신 이순영 리더님! 함께 해주신 문우님들! 참으로 감사합니다. 100일 글쓰기의 결론은 고승의 사리처럼 '감사'로 남는군요. 모두들 건강하시고 글쓰기도 계속 달려주시길요.^^
━ 윤**
100일이라니 다른 것도 아니고 글쓰기를 100일간 했다니 이런 경사스러운 날이 나에게 오고야 말았다. 100일은 어떤 날인가 자고로 공이 마늘만 먹고 100일을 인내하여 사람이 되었다는 시간이다.
아기가 태어나 자기 혼자 밤낮없이 먹고 자기만 하다가 밤과 낮을 구별하기 시작 할 수 있는 때가 아닌가. 그 만큼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100일은 글쓰기라는 제목부터가 나를 홀리듯이 이끌었다. 망설임 없이 신청하고 시작하기만을 기다렸다.
매일이라는 규칙이 나의 무거움과 가벼움을 평평하게 만들기에 족한 시간이었는지는 모르겠다. 챌린지 기간 중 다만 어느 순간부터 글을 써야한다는 마음과 타이프를 치는 동작이 익숙해 졌다. 그 중에서 정말 신기한 것은 쓸 이야기가 없을 때 쓴 이야기가 없다고라도 쓰라고 해서 그렇게 해서 하루가 갔다. 그러다가 하루 중 에피소드를 쓰고 일상을 쓰다 보니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세미한 작은 일들도 나의 기록으로 남겨졌다.
또 글을 쓸 수 없는 그런 순간이 왔을 때도 쓴 이야기가 없다고 하며 운을 띄우고 글을 썼는데 의식의 흐름대로 쓰다 보니 1페이지를 적게 되었다. 이후에는 글감이 없어도 쓸 이야기가 없어도 마감 시간 때문에 앉아있게 되었고 또 자연스럽게 글을 쓰는 행위가 이어졌다. 글의 내용에 대해서는 가치가 있는지 정보가 있는지 쓸모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분명 의미가 있는 단 한 편밖에 없는 내 글이다. 100편의 글이라니 성취가 좋다.
내가 나를 인정하면 된 것이리라. 장하다. 나 자신, 글을 쓰면서 나를 내가 장하게 여기며 대견하게 여긴 점도 들은 수확이다. 내가 나를 응원하고, 글로 써야하니 부정적인 부분이 많아 여러가지 일들 중 억지로 긍정적인 면을 억지로도 찾은 점이다. 그러면서 감사한 부분이 생겼다. 이렇게 된 것에는 문우님들의 도움이 크다. 보이지 않은 독자들이 있으니까.
그리고 내가 나를 응원하게 된 이유 중 하나는 글을 쓴 시간도 없는 마감시간에 다른 문우들의 글을 읽으려고 노력하면서 응원하면서다. 다른 이들의 글을 열심히 응원하며 ♡을 남기는데 나는 내 글에 대해서 같은 마음인가 싶었다. 나도 나를 응원하자 싶었다. 타인과 나를 자연스럽게 응원하며 상생한 것 같다.
글을 쓴다는 것은 타인에게 하소연하고 친구에게 있었던 일을 이야기 하는 것보다 잊어버릴 것 무엇이고 그러면서 내가 잃어버린 것은 무엇인가 시간일 흘러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의 성숙도에 따라 같은 글이라도 다르게 느껴질 것이다. 아마 대견하기도 하고 부끄러워 질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이 시기에 다른 도움을 받지 않고 글을 썼다. 말이 되든 안 되든 온전히 내 글로 채워갔고 내 나름의 목표와 의미인 습관에 두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100일간 저장했던 글을 활용해 쓴 것은 100일 글쓰기 챌린지 참여 전 써 두었던 독후감 1편뿐이었다. 이 독후감도 글을 쓰면서 나의 단상을 몇 줄이라도 첨가하려고 노력했다. 100일 동안 온전히 습관이 들었기를 바랄뿐이다.
글을 쓰면 쓸수록 나의 비투항을 알게 되니 책을 자연스럽게 더 읽게 되었고 고등학교 때 말고는 소설을 읽지 않는데 소설에도 눈을 들리고 문학의 가치도 고전의 가치도 알게 되어서 내가 업그레이드 된 기분이다.
이 시기에 몇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 마감시간을 지키기 위해 글을 쓰다 보니 맞춤법과 띄어쓰기를 위해 다시 보는 시간이 거의 없다시피 했다. 탈고와 퇴고의 시간을 거치지 않아 글로써의 가치는 적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약간의 강박처럼 말을 할 때도 글을 적을 때도 '정보'를 주는 것을 좋아한다. 쓸모를 위해서, 유용해야 가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번 글쓰기는 철저히 그런 것을 의식적으로 배제했다. 온전히 글 쓰는 행위에 집중하고 싶어서였다. 초기에 글을 쓰는 이유도 모르고 또 나를 알고 싶다는 생각에서였다. 이런 이유로 내가 쓴 글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을 쓰고 그것의 배경이나 의미, 사회적 맥락을 확장하면서 글쓰기가 확장에 대해서 한계가 있었다.
그리고 내가 쓴 글은 진짜 무엇을 이야기 하고 싶은지 나도 모르니. 그래서 뭐 후단이 없었다. 아마 마감시간에 쫓겨 생각의 숙성이나 어휘력의 부족인 탓도 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나의 내면 진실한 깊숙한 곳을 정면으로 바라보기를 회피한 것일 수 도 있겠다는 추측도 해보았다. 두려워서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나는 등줄기가 싸늘해짐을 느꼈다. 인간의 내면 깊숙한 곳에 있는 진실한 감정을 마주했을 때 흔히 그리는 것처럼 약간의 경외심마저 느껴졌다.
면도날의 이 문장을 보면서 막연히 나도 그런가 싶었고 그래서 여기에도 혹시 몰라 적어본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직면인가 보다. 그리고 모자무씨에서 박경세가 자꾸 수박 겉핥기처럼 글의 맛을 운운한 장면이 이런 건가 싶다.
마지막으로 글의 구성이나 맥락의 구조를 접목시키지 못 한 점이다. 작가나 전문가들마다 구성이 먼저다 아니다 갑론을박하는 논쟁거리지만 어째든 알고 안 것을 실천해서 디테일까지 도착하는 것은 어떤 일이든 마찬가지 일 것이다. 이것은 또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만 얻어지는 것이니 또 다든 실천 과제다. 오늘은 마지막 날이기도 하고 이번만큼은 마감시간 전에 글을 쓰고 남기자 생각했는데 오늘도 여지없이 마감 30분 전이네 하하
내일 글을 다시 쓸 수 있을까? 나의 자의로? 어떤 외적인 구속이 없어도? 다시 글을 이어서 간다고 선언하면 200일 300일 1,000일 가능할까? 마음만 먹으면 50% 실천하면 100%라는데 나는? 궁금해진다. 문우님들과 리더님 감사합니다. 나도 지금까지 수고했네.
━ 황**
멀게만 느껴졌던 100일이 완성되었다. 물론 하루도 빠지지 않은 완벽한 100일을 채우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양호한 출석으로 마무리 했다. 처음엔 어떻게든 빠지는 날 없이 채우려다가 은근한 스트레스가 쌓였고, 그러다가 도저히 쓰지 못하여 하루를 놓치고 난 후에는 오히려 강박같은 스트레스를 살짝 놓을 수도 있었다.
나는 대부분 퇴근 후에 글쓰기를 했는데, 시간에 쫓기기도 하고 미루기도 하다가 결국 12시에 임박하여 글을 쓰는 습관이 들어버렸고 그로인해 수면패턴이 무너지면서 다음날 업무시간이 피곤해 지는 악순환이 되기도 했다. 그래도 그 습관은 쉽게 고쳐지지 않아 결국 오늘도 12시에 임박하여 글을 쓰고 있다. 글을 쓰기 위해 카페에 들어오면 여러분들이 먼저 남겨주신 글을 읽게 되었고 그 글을 읽다가 시간이 많이 지나 정작 내 글은 신중하게 쓰기보다는 마감 안에 써야한다는 생각으로 시간에 쫓겨 쓴 글이 참 많았다.
그럼에도 정성스럽게 올려주신 글들을 보며 대단한 글 솜씨에 감탄도 하고 공감도 하고 여러 연령대의 인생사와 인생조언들도 볼 수 있었다. 한 사람 한 사람 여러분들의 인생사를 보며 어느 한분도 허투루 또는 쉽게 살아온 인생이 아닌 너무나 정성스럽게 살아온 인생들을 보며 대단하기도 부럽기도 했다. 거기에 비하면 난 참 편하게만 살아 온 것 같은데, 글쓰기 내용들은 어린아이 투정처럼 마치 나만 힘든 사람인양 써내려 간 글이 부끄럽기도 했다. 세상에 누구하나 쉬운 인생, 거저먹는 인생은 없는데.. 지금 당장 마음이 조금 힘들다고 내가 가장 힘든것처럼 투정부린 듯한 생각이 들어 많은 반성하기도 했다.
처음에 글쓰기를 시작할 땐 이런 공개된 곳에 내 글을 쓰는 게 낯설기도 하고 어디까지 내 개인적인 해도 괜찮은 건지 자기검열도 많이 했지만, 글을 쓰다 보니 나중에는 전혀 그런 생각 없이 그저 그날 내가 했던 생각들과 나의 어려움 나의 힘듦을 위로받듯이 얘기하는 공간이 있고 내 얘기를 가만히 들어주고 토닥여 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많이 되었다. 물론 글쓰기 실력이 늘지는 않았지만, 평소 내 얘기를 쉽게 꺼내지 않았던 나로서는 큰 도전이기도 하고, 큰 발전이라고도 생각이 든다.
뭔가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도전을 해보고 싶었던 나에게 이번 글쓰기는 그런 의미에서도 큰 성공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내일 부터는 일찍 잠자리에 들 수 있을 것 같아 부담감은 없어졌지만 여러분들의 훌륭한 글들을 볼 수 없다는 점은 너무나 허전하고 섭섭한 마음이다. 그래도 100일 동안 여러분들의 좋은 글을 읽을 수 있어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항상 지금 있는 각자의 자리에서 건강하고 행복한 일상들을 보내시기를 두 손 모아 바라겠습니다. 모두들 건강하세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더위에 지친 우리들을 위해 커피쿠폰도 보내주시고 열심히 댓글도 남겨주시고 글쓰기 독려도 해주신 이순영 리더에게 감사의 마음을 꼭 전하고 싶습니다. 건강하시구요~
━ 박**
가재미 문태준
김천의료원 6인실 302호에 산소마스크를 쓰고 암 투병 중인 그녀가 누워 있다
바닥에 바짝 엎드린 가재미처럼 그녀가 누워 있다
나는 그녀의 옆에 나란히 한 마리 가재미로 눕는다
가재미가 가재미에게 눈길을 건네자 그녀가 울컥 눈물을 쏟아낸다
한쪽 눈이 다른 한쪽 눈으로 옮아 붙은 야윈 그녀가 운다
그녀는 죽음만을 보고 있고 나는 그녀가 살아온 파랑 같은 날들을 보고 있다
좌우를 흔들며 살던 그녀의 물속 삶을 나는 떠올린다
그녀의 오늘길이며 그 길에 돋아나던 대낮의 삐꾸기 소리며
가늘은 국수를 살던 저녁이며 흙담조차 없었던 그녀 누대의 가계를 떠올린다
두 다리는 서서히 멀어져 가랑이지고
폭설을 견디지 못하는 나뭇가지처럼 등뼈가 구부정해지던 그 겨울 어느 날을 생각한다
그녀의 숨소리가 느릅나무 껍질처럼 정정 거칠어진다
나는 그녀가 죽음 바깥의 세상을 이제 볼 수 없다는 것을 안다
한쪽 눈이 다른 쪽 눈으로 감강하게 쏠려 버렸다는 것을 안다
나는 다만 좌우를 흔들며 헤엄쳐 가 그녀의 물속에 나란히 눕는다
산소호흡기로 들이마신 물을 마른 내 몸 위에 그녀가 가만히 적셔준다
100일 글쓰기는 먼저 지난 기에 참여했던 남편이 추천해 주어서 시작하게 되었다. 자기표현을 잘 하지 않는 남편이 매일 매일 핸드폰을 붙들고 밤마다 썼다! 를 조용히 외치고 잠드는 모습을 보였다. 매일 외부활동이 잦은 남편이 늦게 들어오면 실망하고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여 우는 나를 보고 나에게도 100일 글쓰기를 해보라고 신청기한이 다 될 때까지 확인하고 확인해서 막판에 신청을 했었다.
처음부터 목적을 잡지 못했다. 혼자 되뇌는 시간, 휩싸여 있는 시간이 많아서 이걸 잘 할 수 있을까 마구 쏟아내는 것 말고 글로 매일 정화할 수 있을까. 스스로의 동기가 막연한 상태였다. 신청 전 숭례문학당에 프로그램을 훑어보며 자서전 쓰기도 있었는데 넘치고 있는 지아비대연 상태에서 너무 빠져들어 갈 것 같아 좀 더 정상적인 상태를 목표하며 100일 글쓰기를 신청했다.
애초에 내가 100번을 쓸 수는 없을 것 같고 30%는 써보자 생각했는데 총 24번을 썼다. 12시 까지는 거의 시작을 하고 수정버튼을 눌러 더 써서 시간 내에 짧더라도 매일 글을 쓰며 하는 훈련에도 어긋나 있었다. 내 현재, 오랫동안 뭉쳐져 있는 엄마에 대한 이야기. 이거는 쓰면서 글쓰기가 아니고 상담 자리에서 해야 하는 이야기인 것 같은데 너무 골을 파고 있어서 고민하던 것도 많았다.
그래도 글을 써야하는데 라는 생각 때문에 울음에서도 벗어날 때도 있었다. 글을 써야하는데 그럼 이걸 씨볼까 하면 원래 좋은 일들도 맘속에서 지나가고 있던 것을 기록하니 남는 게 있어서 좋았다.
설명을 길게 하고 구구절절 얘기하는 편이라 생각을 정리해서 정리된 생각들로 글을 쓰는 다른 분들이 부럽기도 했다. 글을 쓰고 싶으신 분, 인생을 돌아보고 현재의 생각도 정리하고 계신 분, 100일이라는 기간이 있으나 과거도 현재도 왔다 갔다 하며 감정으로 뭉뚱그려진 것들이 조금씩 펼쳐져서 가벼워 진 하루하루가 감사했다.
불성실하게 올렸지만 매일 글을 올리도록 독려해주시고 가끔 올리는 글에도 응원해주신 리더님, 올린 글을 읽어주시고 좋아요도 눌러주셨던 선생님들께도 너무 감사드린다.
문태준 시인의 가재미는 시인의 형수님이 암으로 돌아가실 때 지켜보았던 경험으로 쓴 시이다. 죽음을 앞둔 사람의 침대에 가만히 같은 자세로 누워 있어 준 ㅇㅇ. 내가 쓴 글을 읽어주는 것만으로도 같이 있어준 느낌을 받는다. 나도 답글을 달진 못했지만, 다른 분들의 글을 다 보지는 못했지만 같이 있어준 글쓰기 참여자분들께 감사드린다.
━ 김**
5월에 시작한 백일 글쓰기의 마지막 날이네요. 오늘 글을 쓰면 50개의 글을 올리게 됩니다. 첫 시작은 가볍게 쓰자는 생각이었는데 주된 주제는 정치 문제였습니다. 결코 가볍지 않은 주제였는데 그것을 가볍게 쓰자했으니 달성하지 못할 목표였던 셈입니다. 5,6월은 그래도 빠짐없이 쓰고자했는데 한번 빠지니 하루 이틀도 금방이고 열흘도 금새 지나가더군요. 고민이 많고 생각이 많고 기분이 아니고 그런 핑계를 대며 넘어갔습니다. 사실 오늘도 그렇지만 그래도 글을 남깁니다.
━ 김**
내 글이 누군가에게 읽혔으면 하는 마음과 아무도 읽지 않았으면 하는 양가감정을 매 글을 올릴 때 마다 느꼈던 것 같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의 재주는 글재주도 글재주이지만 내 말을 사람들 앞에 스스럼없이 내보이는 능력에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간에 60일 넘게 도주(?)해버린 것이 약간 아쉽다. 이대로 흐지부지 끝나버릴 뻔했는데, 막판에 붙잡아 주셔서 어영부영 끝까지 함께 완주한 듯한 착각이 든다. 나쁘지 않다. 좋은 착각~^^ 뿌듯하다.
사실 많이 의식했다. 내 글을, 다른 사람의 글을, 다른 사람의 시선을, 댓글을, 좋아요 수를..... 초반엔 재밌게 다른 분들의 글을 읽다가도 읽으면 읽을수록 내 얘기를 하기가 점점 어려워졌다. 내 글이 안 써졌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의도적으로 안보기로 했다. 경주마의 차안대처럼, 옆에 신경 쓰지 말고 내 글에만 집중하자. 일단 내 글부터 쓰고 보자, 이런 마음으로. 더 활발하게 소통하지 못한 건 좋은 멤버의 자세가 아닌 것 같아서 아쉽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런데 이런 마음마저도 갈수록 좀 지쳤던 것 같다. 글이 안 써져서 책을 더 찾게 됐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 다양한 시각적 자료를 많이 봐야하듯이, 책 속의 글들을 우선 더 흡수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글을 쓰지 못한 기간 동안은 나름 60일 간의 독서여행을 했고, 만족스러운 시간이었다.
머리 한 켠에 항상 글쓰기를 의식하면서....(이젠 이런 부담이 없으니 시간 날 때마다 올라온 글들을 찬찬히 읽어보고 싶다.)100일 글쓰기를 하며 좋았던 점 중 하나는 서로에 대해 이름 석자와 참여 동기 정도만 알고 시작한다는 거다. 나이도 모르고 직업도 모르고 생김새도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게 좋았다. 별로 중요한 정보가 아닌 것 같다. 어떤 정보를 들으면 나도 생각하고 싶지 않은 고정관념들에 나도 모르게 사로잡힌다. 오히려 글을 통해 조금씩 알게 되는 게 좋았고, 딱 글에서 보여준 만큼만 알 수 있는 게 좋았다.
또 다른 장점은 빠짐없이 매일매일 올리지 않더라도 잠시 쉬거나, 혹은 그보다 더 오래 쉬더라도, 언제든 글을 쓰면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이 존재한다는 거였다. 마치 멀리 이탈해도 다시 돌아갈 곳이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언제 사라졌었냐는 듯이 그냥 똑같이 글을 올리면, 그곳에는 한 명이든 두 명이든, 항상 누군가 함께 하고 있는 느낌, 이런 느슨한 연대를 느낄 수 있는 게 좋았다. 이렇듯 쓰고 싶은 말이 있어서 글을 끄적였을 때 올릴 수 있는 공간이 계속 있으면 좋겠다. 서로 간간히 들여다보면서 또 너무 신경 쓰거나 간섭하지는 않는, 너무 관심 갖지도 않는 공용 거실 같은 공간. 이런 모임을 찾아 헤맬 것 같다. 내가 직접 만들거나. 브런치나 블로그 등 불특정 다수 누구에게나 열린 곳에 올리는 거랑은 다른 느낌이다.
━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