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포크너 함께 읽기>를 마치며


   요크나파토파의 소우주를 유영하다

 

작년 9월부터 해를 넘겨 윌리엄 포크너 함께 읽기로 아침을 열었습니다. 쉬어 갔던 한 달을 제외하고 총 8개월간 전작 읽기 수준으로 국내에 번역되어 있는 주요 포크너 주요 작품을 만나보았습니다. 고되고 어렵기도 하였고, 지칠 때도 있었으며, 모호하고 답답한 지점에서 쳇바퀴 도는 기분에 빠지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시원한 바람, 언뜻 비치는 햇살에 기뻐하는 순간도 어김없이 찾아왔습니다.

고통 받고 갈등하는 인간의 나약함을 외면하지 않았던 포크너는 생의 비밀을 깨우치기 위해 어둠과 그림자를 응시했습니다. 정교하게 아로새겼습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를 독자에게 거듭 물어서 각자의 답을 이끌어내었고, 나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하였습니다. <내가 죽어 누워있을 때>부터 문제작 <성역>까지 함께한 시간이 잊지 못할 경험으로 생생합니다. <성역>을 읽으면서 <the PARIS REVIEW 인터뷰 작가란 무엇인가 : 소설가들의 소설가를 인터뷰하다> 완전한 자유의 증명, 윌리엄 포크너” 편을 통해 작품 세계 전반을 조명한 일도 도움이 되었습니다.

때로 때때로 아홉 편의 포크너 논제도 다시 보며 환기하시면 좋겠습니다. 윌리엄 포크너는 많이 읽히는 대중적 작가는 아닙니다. 그러나 한 번 읽으면 잊지 못할 작가임은 분명합니다. 언제 어떤 방식으로 윌리엄 포크너 함께 읽기 2가 열릴지 가늠할 수 없지만, 우리가 골똘히 붙잡고 읽던 날들은 다시 돌아보고 싶습니다. (번역이 안 되어 계속 궁금하던 <내려가라, 모세여>5월에 출간되었네요. <>이 속한 작품집이라 추가로 볼 예정입니다.) 포크너가 뒤에 남겨놓은 불멸, 그 소리들은 침묵과 소란함으로 영속할 것입니다. 오랜 시간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운영자 김은신 강사


번역자 이진준님의 해설을 통해 포크너의 <성역>을 읽으며 이해하기 힘들었던 부분들의 일부가 납득이 된다. 제목의 의미를 템플과 연결하여 해석한 부분이 인상 깊다. 특히 템플과 루비로 대표되는 상층과 하층의 여성들이 모두 남성이 지배하는 가부장제 질서에 의해 예속되어 있으며, 금기를 깼다고 믿는 가해자를 불태워 죽이는 남부 남자들의 정서는 정의의 실현이나 도덕적 분노의 발현이 아니라, 자신들의 사회가 지닌 여성에 대한 위선적 태도가 그를 통해 까발겨진 데 대한 발작적 대응이라는 해석에 공감이 간다. 한편 성역이 올드프렌치맨 지역의 매음굴일 수 있다는 해석은 전혀 뜻밖이어서 새롭게 읽힌다.

<성역>1920년대 미국 사회를 비판적으로 묘사한 작품이라는 해설도 이해의 지평을 넓게 해준다. 시어도어 드라이저의 <아메리카의 비극>, 스콧 피츠제랄드의 <위대한 개츠비>와 <낙원의 이편> 같은 작품들 또한 1920년대 미국 사회의 풍요와 그에 따른 도덕적 방종과 타락을 주제로 쓰여진 명작들이다. 이들과는 결이 다르게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전후 삶의 방향을 '잃어버린 세대(Lost generation)'의 일탈에 대해 미국이 아닌 스페인을 배경으로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를 썼다.

포크너 문학의 특징으로 꼽는 언어, 시간, 의식의 파괴라는 모더니즘 문법 이야기는 지금까지 읽은 그의 작품들을 통해서 숱하게 겪었던 것이라 새삼스러울 것은 없다. 이 때문에 여전히 그의 문법은 생소하게 느껴져 독서 시 머리를 쥐어짜야 하는 수고가 수반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포크너의 책을 읽는 재미가 있다. 나도 나름 포크너 덕후가 되어가는 것 같다. 윌리엄 포크너 함께 읽기 덕분에 혼자 읽기 힘든 포크너 주요 작품을 완독할 수 있었기에 감사하다.

 **님

 

오, 한 달이 다 갔네요. 정말 빨랐던 한 달이에요. 개인적인 일들이 몇 개 있었는데. 퇴근 후에 책을 읽어야 하는데 책 내용이 너무 우울하고 그래서 책을 잘 못 읽었습니다.

늘 잘 리드해주셔서 감사하고 수고 많으셨어요. *샘의 책 읽기와 내용 정리는 대단하시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두 분을 보면서 많이 배웠습니다책은 완독을 못하면 아마 천천히 읽게 될 것 같아요.

모두 애쓰신 5월이 지나갑니다. 감사합니다.

 하**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