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주 작가 《안녕하세요? 우리 동네 사장님들》 북토크 주요 내용


<박현주 작가 신작 그림책 북토크>

  

안부가 궁금한 동네 사장님들, 안녕하시죠?”

 

몇 명의 사장님이 아니라, 모두가 사장님인 시대를 꿈꾸는 이야기

 



숭례문학당이 지난 818, 신작 그림책 안녕하세요? 우리 동네 사장님들을 출간한 박현주 작가를 초청해 북토크를 열었습니다. 학당 8층 북라운지에서 박 작가의 신작 출간 재능 기부로 열린 이날 모임은 작가와 독자가 차담(茶啖)을 나누듯 그림책을 쓰고 읽는 일의 즐거움과 의미에 대해 서로 편안하게 대화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대학에서 조소를 전공하고, 이후 단편 애니메이션과 일러스트레이션 작업을 하다 그림책을 만나게 된 박현주 작가는 현재 두 아이의 엄마로 살림하며 그림책 작가로 활동 중입니다. 그동안 쓰고 그린 책으로는 나 때문에, 비밀이야, 이까짓 거!가 있습니다.


이날 북토크 사회는 박 작가의 열렬한 팬이자 최근 아이들이 마음으로 글을 씁니다를 펴내 화제를 모은 숭례문학당 강사 오수민 선생님이 맡아주었습니다. 무더위가 조금씩 물러가고 있던 이날의 특별한 만남 내용을 간략히 전해드립니다.

 

작은 동네에서 소박하게 공동체를 이루면서 사는 이야기

 



오수민 : 무더운 여름을 보내는 숭례문학당의 여름방학 특별 북토크 손님으로 최근 신작 그림책 안녕하세요? 우리 동네 사장님들을 출간한 박현주 작가님을 모셨습니다. 오늘 북토크는 박 작가님이 책 출간 후 첫 번째로 독자와 만나는 시간이라는데, 숭례문학당 회원님들을 위해 특별히 재능 기부로 마련해 주셨습니다. 작가님께 다시 한 번 감사 말씀 드립니다.


박현주 : 자리를 마련해주셔서 오히려 제가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더운 날이 계속되고 있는데, 이렇게 많이들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오수민 : 우선 책 소개를 잠깐 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박현주 : 이 책은 제가 꽤 오랫동안 아이디어를 갖고 있었어요. 스케치도 했었고. 10년 정도 됐네요. 처음에는 이 이야기가 저한테 굉장히 추상적으로 다가왔어요. 어떻게 보면 쉬운 이야긴데. 요즘 다시 생각해 보니, 내가 살고 싶은 이상적인 동네를 얘기하고 그리고 싶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작은 동네에서 소박하게 공동체를 이루면서 사는 이야기. 거기서 아이들을 안전하게 키우고, 이웃들과 늙어가고이 책은 그런 곳에서 살고 싶은 이야기예요. 이웃이 서로서로 연결되어 있고, 거기서 같이 먹고 살고, 정을 나누는 이야기.


오수민 : 10년 정도 묵힌 이야기군요. 그럼, 이 책을 쓰게 된 동기가 있으실 텐데요?


박현주 : 이 책을 스케치한 때가, 제가 첫 책 나 때문에를 막 준비하고 있을 때로 기억해요. 나 때문에는 제 개인적인 상처에 대한 이야기였어요. 그 상처를 스스로 치유하기 위해 만든 책이었다고 할까요? 그 책을 작업할 때 많이 힘들었어요. 제가 힘든 그 와중에 주변 동네 제과점들이 없어지는 걸 봤어요. 파리바게뜨, 뚜레주르 이런 프랜차이즈점들이 많이 생겨서 기존 동네 제과점들이 사라지는, 그런 변화를 겪을 때였지요. 그걸 보면서 좀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어요. 이러다간 이 세상에 몇 명의 사장님이 세상을 다 지배하고, 우리들은 결국 어딘가의 사원이 되겠구나, 하는 생각. 갑자기 무섭게 느껴지더군요. 그래서 이런 이야기로 일주일 만에 쓰고 그렸어요. 동네 가게들, 모두가 사장인, 그런 동네 이야기였죠. 스케치를 해놓고 원래 하던 작업으로 돌아왔어요. 그리고 이 이야기는 언젠간 하게 되겠지, 묵혀놓은 상태로 뒀어요. 그런 뒤 다른 이야기를 하다 보니까, 이 이야기는 서랍 속에만 내내 있었죠.


2년 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그때 아버지가 쓰시던 핸드폰을 엄마가 쓰겠다면서 동네 핸드폰 대리점에 가셨어요. 그런데, 핸드폰 가게 사장님이 가지고 간 핸드폰을 보자마자, “, 이거 어르신 핸드폰인데 어떻게 가지고 계시는 거예요?” 하고 묻는 거예요. 그래서, 저희 아버진데, 돌아가셨다고 전하니까, 깜짝 놀라시는 거예요. 아니, 얼마 전까지도 왔다 갔다 하셨다면서. 아버지가 인터넷 같은 걸 못하시니까, 핸드폰 작동이 안 되면 그 가게에 가서 항상 봐달라고 하셨대요, 아주 사소한 것도. 그게 귀찮을 법도 한데, 늘 잘 봐주셨다고 하더군요. 거기서 항상 핸드폰을 바꾸고 하셨으니까. 그런데,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하니까, 그분이 우셔요. 그걸 보고는, , 이게 그냥 동네에서 핸드폰 하나 거래하는, 그런 사장님과 아버지 사이가 아니구나, 사람과 사람 사이 관계가 굉장히 끈끈한 거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저한테는 그게 참 크게 와 닿았어요.


그 일이 있고 나서, 저희 엄마가 항상 가는 미용실이 있어요. 거기서 밥도 해먹고, 계도 하고. 신발도 사요. 동네 아주머니가 거기서 건강에 좋다는 신발이 있다고 얘기하면, 그냥 사요. 거기서 신발 주문하는 사람이 발 사이즈를 그리고, 그걸 갖고 가서 만들어 오는 거예요. 30만원씩 하는 신발을 거기서 턱 하니 산다니까요. 그 동네에 정육점이 하나 있었는데, 굉장히 오래된 정육점이었어요. 엄마가 항상 그곳에서 고기를 샀는데, 고기를 사서 집에서 구워먹다가 맛이 없잖아요? 그러면 그 고기를 가지고 가요. 정육점 아주머니가 양념을 참 잘해요. 그 아주머니가, 엄마가 가지고 간 고기에다 양념을 해줘요. 그렇게 양념한 고기를 갖고 집에 와서 구워 먹어요. 저는, 그렇게 동네 가게들과 친한 게 불편했어요. 왜냐하면 다른 가게를 갈 수가 없잖아요. 다른 곳에서 뭘 사갖고 가다 들킬까 싶기도 하고. 지나는 길이면 꼭 아는 척을 해야 되고. 그래서 불편했는데, 엄마가 아버지가 안 계셔도 그 동네에 계속 살 수 있는 건, 늘 익숙한 가게들, 그런 가게들에 택배도 맡길 수 있고 아이도 잠깐 봐달라고 할 수 있는, 그런 친한 가게들이 있어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그런 가게들이 좋다, 없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지금은 이사해서 아파트에 사는데, 뭐든 집에서 배달을 받을 수 있고, 비대면으로, 그래서 엄청나게 편해요. 배달하는 사람과 눈 마주칠 일도 없고. 이렇게 편한데, 이런 편안함이 좋기도 하지만, 좀 쓸쓸한 생각이 들 때가 있었어요. 그때 생각했어요. 내가 살던 그 동네 가게들, 그런 게 필요한 것 같다, 하는 생각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싶기도 하지만. 그래서 10년 동안 묵혀뒀던 이야기를 서랍에서 꺼내 정리하게 된 겁니다.


오수민 : 그런데, 이 책은 뭐가 마음에 걸려서 10년이나 서랍 속에 잠들어 있었을까요?


박현주 : 촌스러워서요. 그때 생각한 건 동네 제과점이 없어지고 대기업 프랜차이즈점이 생기는 이야기, 그러니까 동네 가게 사장님과 대기업 사장님, 이런 생각에 휩싸여 있었어요. 그러니까 의도가 너무 빤히 보이잖아요. 누군가에게 뭔가 자꾸 가르치려 하고, 뭔가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하는, 그런 의도가 앞서니까 진정성도 없어지는 것 같았어요. 이 이야기가 정말 내 속에서 우러나오는 이야기가 맞나, 하는 회의 같은 것도 있었어요. 이런 걸 저 스스로는 촌스럽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니까, 촌스러워서 그냥 넣어 놨던 거예요. 이번에 책을 내면서 그걸 극복한 것 같고.


오수민 : 작가님이 예전에 살던 동네의 가게들은 작가님과 어떤 인연이 있었는지요?


박현주 : 제가 어릴 때 살았던 동네는 서울의 빈민촌이었어요. 들으시면 깜짝 놀라실지도 모르는데, 홍대 근처 동교동이었어요. 거기에 판잣집도 있었어요, 기찻길 옆에. 지금은 연트럴파크라고, 굉장히 좋아졌죠. 그때는 기찻길 옆에 작은 집들이 있고, 그 옆에 연탄 불고기 파는 곳도 있었어요. 가게와 집이 구분이 안 가는, 그런 환경이었어요. 대부분 가겟방에서 사니까. 안에는 방하고 부엌이 있고, 바깥쪽으로는 가게가 있는, 그런 구조의 집들이 많았어요. 그래서 친구 집이 과일 가게거나, 연탄 가게거나, 서점이거나, 갈비집이거나, 그랬어요. 그러니까 친구 집에서 먹고, 친구 집에서 사고, 그랬죠. 친구 집에서, 우리 집에서, 다 같이 노는, 그런 게 굉장히 익숙했어요. 친구 집에서 문방구를 하면 정말 부러워했죠.


오수민 : 예전에는 모두가 사장님이었는데, 지금은 모두가 사장님이 아닌 시대로 바뀐 셈이군요.


박현주 : 그런 셈이죠.


오수민 : 지금 작가님이 살고 있는 동네를 생각해 보면, 어떠세요? 옛날에 살던 동네와.


박현주 : 새 동네로 이사 와서는 대형 마트에 가고, 비대면으로 택배 물건을 받고, 그런 게 편리하고 좋았어요. 동네 가게가 어디 있는지 잘 모르기도 했고. 그러다 살다 보니까 조금씩 동네 가게가 보여요. 맨 처음 발견한 가게는 계란 파는 가게였어요. 특란이 8천원인데, 계란이 정말 좋은 거예요. 그래서 이젠 대형 마트에 가더라도 계란은 안 사요. 동네 가게에서 사죠. 게다가 그 집은 연중 거의 무휴예요. 언제든 살 수 있어요. 가면, 항상 아주머니는 드라마를 보고 있어요. 그리고 그 옆에 에그타르트 가게가 있어요. 거기서 쿠킹클래스 같은 걸 해요. 그런데 하루에 서너 시간 밖에 문을 안 열어요. 그 가게에서 만든 에그타르트는 하나만 먹어도 배가 부를 정도로 두꺼워요. 아쉬운 게, 몇 시간 안 해요 . 아가씨 혼자서 하는데, 금방 팔려서 맛보기가 어려워요.


제 아이랑 추억이 생긴 사진관도 있어요. 아이가 증명사진을 찍을 기회가 있었는데, 고등학생이에요, 또래 아이들은 대개 동네 사진관에서는 사진을 안 찍어요. 인터넷 검색을 해서, 포토샵을 잘해 주는 곳을 찾아요. 그런 곳은 비싸죠. 마침 동네 사진관이 있길래, 할아버지가 하시더라고요, 쌀 것 같아서 갔더니 정말 정성껏 찍어 주시더라고요. 찍으면서 잠깐 얘기를 하게 됐어요. 할아버지가 사진을 하신 지 거의 50년이 됐더라고요. 제가 지금 은평구에 사는데, 은평구에서만 50년 동안 사진관을 하셨대요. 그런데, 현재 입주해 있는 건물이 헐려서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고 걱정하시더군요. 그런 저런 이야기들을 하다가, 사진을 찍고 나서 5천원을 깎아주셨어요. , 제 아이가 학생으로 보이니까, 용돈을 주셨어요. 3천원을. 그때 아마 손에 잡힌 현금이 3천원이었던 것 같아요. 많이 당황했어요. 그런 경험이 없었거든요. 처음 간 사진관에서 사장님 할아버지가 용돈을 주신다? 좀처럼 있기 힘든 일이잖아요. 받으라고 하시는데, 아이가 굉장히 좋아했어요. 3만 원 이상의 기쁨이었죠. 그러고 얼마 뒤, 그 사진관 건물이 헐렸어요. 헐리고 나서 봤는데, 할아버지 사진관은 길 건너편 번듯한 건물에 새로 입주를 하셨더군요, 안 없어지고. 그래서 아이랑 박카스를 하나 사서 갖다 드렸어요. 축하드린다고. 저랑 그 사진관의 인연은 두 번 밖에 안 돼요. 제 여권 사진이랑, 아이 증명사진이랑. 그런데, 아주 오래 알고 지낸 것처럼 가깝게 느껴졌어요, 박카스를 사서 가는데 전혀 어색하지 않았어요. 되게 좋았어요, 그 기억이.

 

다채로운 색으로 다양한 가게들, 다양한 사람들 표현

  

오수민 : 작가님 얘길 듣다 보니 계란 가게, 에그타르트 하는 집, 사진관도 한 번 가고 싶다, 그런 생각이 듭니다. 이 작품을 보면 색깔이 많이 들어가 있어요. 전작인 이까짓 거!를 보면 노란색이랑 회색 정도만 썼거든요. 색깔을 가능한 빼려고 했다고 하셨잖아요. 이번 신작에는 색을 다채롭게 쓰신 이유는 무엇인지,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요?


박현주 : 이까짓 거!는 색으로도 메시지를 주고 싶었어요. 주인공 아이와 준호에게만 색이 들어갔어요. 노란색은 주인공 아이가 갖게 된 용기를 상징했죠. 아이의 심리에 집중하기 위해서 여러 색을 쓰지 않았어요. 아이와 아이가 바라보는 준호, 그 외의 것은 다 회색이에요. 반면에, 이번 작품은 다양한 가게들, 다양한 사람들이 나와요. 그래서 일부러 색을 많이 썼어요. 다 다르게. 책을 보시면, 왼쪽 면은 색이 없어요. 양쪽 다 색이 꽉꽉 들어가면, 양쪽 면 다 색이 다양하게 들어가면 산만해져서 전달이 어려울 것 같았어요. 왼쪽 면은 주인공 아이의 카드가 전달되는 게 중요해서 카드만 잘 보이게 색을 썼고.


오수민 : 카드 색이 빨간색인데, 그러고 보면 빨간 색이 확 눈에 띄어요. 중간 중간에도 빨간색이 많이 있고. 혹시 빨간색을 선호하시는지요?


박현주 : 빨간색을 좋아하기도 해요. 뭔가가 눈에 띄면, 빨간색이 가장 먼저 들어와요. 제일 중요하게 느껴지는 거죠. 어릴 때부터 빨간색을 좋아해서 그런지도 몰라요. 뭔가 제일 중요하다, 이걸 봐주세요, 할 때 저는 항상 빨간색을 쓰는 편이에요.


오수민 : 책에서, 주인공 아이가 카드를 전달하러 다녀올 곳이라고 적힌 지도에 보면 다녀올 곳을 빨간색 화살표로 연결해 표시한 그림이 나와요. 이런 건 어떻게 해석하면 될까요?


박현주 : 이 마을에서 가게들은 다 연결되어 있어요. 동네 사람들은 이 헤어살롱에서 머리를 하고, 저 정육점에서 고기를 사고, 저 정육점 부부도 이 헤어살롱에서 머리를 해요. 헤어살롱 사장님은 이 동네 슈퍼에 가서 물건을 사죠.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는 과일 장사도 이 동네에 와서 사진을 맡겨요. 그러니까, 어떤 공동체성 같은 걸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서로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 같이 사는 것, 사소한 물건 하나도 서로 사고 파는 것, 네가 살아서 나도 살 수 있는 그런 관계, 그런 걸 표현하고 싶었어요.


오수민 : 주인공 아이가 전달하는 초대장 안을 보면 모두 ‘OO 사장님이라고 적혀 있는데요. 맨 마지막만 배달 누나로 되어 있어요. 그렇게 하신 이유가 있을까요?


박현주 : 앞에 트럭 과일 장수가 나오잖아요. 저는 이 트럭 과일 장수를, 지금 청년으로 그려져 있는데, 원래 스케치에서는 젊은 아가씨를 그렸어요. 그렇게 하고 싶었어요. 제 머릿속에, 머리를 빠글빠글하게 한 씩씩한 아가씨가 동네에 트럭을 몰고 와서 과일, 야채를 파는 모습이 너무 멋있게 느껴졌어요. 그래서 그걸 꼭 넣고 싶었는데, 출판사랑 조율하는 과정에서 그게 좀 튄다고 하더라고요. 트럭 아가씨한테 시선이 많이 가고, 거기에 특별한 의미가 들어갈 것 같다는 거죠. 여러 사람 중의 한 사람일 뿐인데. 그래서 그걸 좀 일반적인 인물로 만들었으면 좋겠다, 하는 의견이었어요. 그래서 트럭 과일 장사는 대개 아저씨 같은 분들이 많이 하니까, 인물을 그렇게 바꿨어요. 대신, 자전거를 타고 무언가 배달하는 사람을 학생, 아가씨, 젊은 여자, 이렇게 넣은 거예요. 이 책을 처음 스케치할 때는 배달하는 일들이 많지 않을 때였어요. 10년 전이니까. 요새는 배달이 흔하고 많잖아요. 그래서 요즘 많이 볼 수 있는 풍경을 넣자, 그래서 배달하는 사람을 넣었어요.


오수민 : 요즘 보기 힘들어서 그런지, 연세 높은 삼만리자전거 사장님과 젊은 문화서점 사장님이 장기 두는 장면이 나왔는데요. 세대 차이가 있는 분들이 장기를 두는 장면이 참 정겹게 보였어요.


박현주 : 그리고 싶은 장면이었어요. 저희 아버지가 바둑 두는 걸 좋아하셨어요. 친척이나 누가 오면, 성별이나 나이와 상관없이 바둑을 둘 줄 아냐고 물어보시고, 둘 줄 안다고 하시면 같이 두자고 하셔요. 바둑을 참 좋아하셨죠. 그런 모습이, 길을 가다가도 나이 드신 어른들이 장기 두고 바둑 두고 하는 모습이 그렇게 정겹게 보였어요. 그래서 그걸 넣고 싶었죠.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대개 뭔가를 계속 사고 파는 관계인데, 장기를 두는 두 사람은 서로 사고 팔지 않는 관계예요. 그냥 옆집 친구, 시간을 같이 보내는, 취미를 같이 하는, 나이나 세대와 상관없이, 그런 친구 관계를 하나 넣고 싶었어요. 그리고 사랑하는 관계도 있잖아요. 그것도 넣고 싶었어요. 사랑도 하고, 친구도 맺고, 물건도 사고 파는, 그 속에서 아이도 자라나는, 그렇게 살아가는 모습들을.

 

작품은 세밀하게 계획을 세워 하나씩 차근차근 작업

 



오수민 : 작가님은 작품 작업을 할 때 시간을 어떻게 내시는지?


박현주 : 제 책은 제가 직접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지만, 그 외의 시간은 주로 의뢰받은 일들을 해요. 다른 분의 글에 그림을 넣는 작업. 생업이죠. 그 일들은 직장을 나가서 하듯 해요. 주말에는 안 하고. 아침에 일어나서 낮 시간 동안 주로 해요. 집에서. 옛날에는 밤낮없이 했지만, 요즘은 밤을 못 새니까 그렇게는 안 해요. 일은 굉장히 계획적으로 해요. 하나씩 세밀하게, 차근차근. 그렇지 않으면 불안해요. 마감에 대한 불안감이 커요. 의뢰를 받으면, 해야 될 작업 일정을 보고, 스케치는 얼마 동안 하고, 채색은 얼마 동안 해서 완성하고, 그렇게 하자면 스케치는 하루에 몇 장을 해서 보내야 하고, 이런 걸 다 계획을 세워서 해요. 그렇게 해야 마음이 편해요. 이런 일정으로 진행하면 내가 언제 쉴 수 있겠구나, 하면서 여유를 내죠. 안 그러면 일을 몰아서 해야 되는데, 그러면 쉴 수가 없어요. 계획을 하면, 내가 하루에 몇 장만 하면 돼, 그러면 나머지 시간은 내 시간을 가질 수 있어, 그렇게 안심할 수 있어요. 그런데, 제 책을 할 때는 기획부터 스스로 해야 되잖아요. 의뢰 받은 일은 이미 기획되어 있는 일을 일정에 맞추어 작업하기만 하면 되지만. 아이디어를 내고, 글을 쓰고, 다듬고, 생각을 계속 해야 해요. 메모를 해뒀던 걸 들추기도 하지만, 갑자기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도 있잖아요. 그럴 때는 집중해서 해요. 그러다 의뢰받은 일을 해야 될 시간이 오면 잠깐 멈추었다가. 또 다시 시간을 내서 집중해서 하고. 그것도 계획을 세워서 해요.


오수민 : 작품이 잘 풀리지 않을 때는 어떻게 하시나요?


박현주 : 저의 생업이라서, 잘 풀리지 않을 때도 해야 해요. 안 풀릴 때일수록 계획을 더 세부적으로 쪼개요. 너무 그리기 싫거나 정말 그려지지가 않을 때는, 오늘은 사람만 그리자, 몇 시부터 몇 시까지 딱 한 장만 그리자, 이렇게 계획을 세워요. 작업을 타이트하게 잡지 않고. 그래도 안 되면 그냥 버스 타고 나가요. 지하철 말고. 버스 타고 나가면 아이디어가 막 생기기도 하고. 그렇게 돌아다니다 보면, 에너지를 얻는다기보다 생각이 좀 전환이 되는 것 같아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오수민 : 작품을 할 때, , 이걸 하길 잘했다 싶은, 자신감이 충만할 때도 있을 텐데, 그런 땐 언제인지요?


박현주 : 겸손이 아니라, 저는 항상 자신이 없어요. 그림책을 처음 시작할 때도, 세상에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들이 많고, 좋은 그림책도 많은데, 내가 여길 비집고 들어갈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했어요. 막상 또 책을 내고 나면, 왠지 더 안 좋게 출판이 된 것 같고, 이야기도 신선한 것 같지 않고, 이런 이야기를 누가 좋아할까 싶기도 하고. 이렇게 스스로 비하할 때도 있지만, 무적이 될 때도 있어요. 누가 무슨 말을 하든 아무렇지 않을 때, 그럴 때는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얘기나 어떤 장면에 확신이 있을 때에요. 책마다 그런 게 하나 정도는 있었어요. 나 때문에할 때는 사실 첫 작품이라서 창피하고 부끄럽기도 하지만, 두 아이가 자고 있는 장면, 가운데 고양이를 사이에 두고 두 아이가 낮잠을 자고 있는 장면, 그 장면을 그릴 때는 그림이 정말 잘 그려지고, 다 그리고 나서는 마음에도 확 들어오더군요. 그래서 누가 뭐래도 이 장면은 참 좋다,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누가 어떤 비평을 하든 충분히 감내할 수 있을 것 같은.


비밀이야할 때도 맨 마지막 문장, 우리가 동물을 키우는 걸 엄마가 허락하지 않을 텐데 어떡하지? 할 때 누나가 딱 비밀이야!’ 그럴 때. 그 말은 갑자기, 불현듯 떠오른 거였어요. 둘이서 동물 키우는 이야기를 하고 상상하는데, , 재밌다, 그런데 동물이랑 같이 사는 거, 엄마한테 어떻게 얘기하지? 그렇게 얘기하다 잠깐 생각이 멈췄다가 문득 비밀이지하는 생각이 떠올랐어요. 왜냐하면 이제 둘이 너무 친해졌으니까. 둘이서 비밀을 나누는 친구가 됐다는 게 그 비밀이야에 담겨 있어요. 그게 제목이자 책의 주제가 된 거죠.


이까짓 거!에는 준호가 피아노 학원으로 들어가는 장면. 그때부터는 진짜 주인공 아이가 혼자 가는 거잖아요. 누구도 끝까지 나랑 같이 가줄 수는 없어. 그런 거. 누군가의 동무도 한계가 있고, 위로도 한계가 있고, 결국에는 나 혼자 가야 되는데, 그 시점이 준호가 피아노 학원에 들어갈 때거든요. 제 스스로도 준호가 같이 가다 피아노 학원으로 들어가 버린다, 이 생각에 이르렀을 때, , 이 이야기는 괜찮다,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안녕하세요? 우리 동네 사장님들에는 과일 트럭 아저씨가 왔을 때. 다들 뛰어나와서 사가는 장면. 정겹다고 해야 할까요? 동네 사람들이 트럭 아저씨를 기다린단 말예요. 항상 오는 게 아니니까. 그래서 굳이 그 트럭 아저씨한테도 초대장을 전하는. 트럭 아저씨를 기다린 거죠.


오수민 : 작가님을 그림책 작가로 계속해서 활동할 수 있도록 하는, 어떤 내적 원동력 같은 게 있을 것 같아요. 세 가지 정도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박현주 : 우선은, 저는 그림을 그리는 것 외에 할 줄 아는 게 없어요. 활동하다 보면, 그림 그리는 것만으로는 경제적으로 힘들거나 문제 해결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올 때가 있잖아요. 그럴 때 다른 일을 해볼까, 하는 생각도 있었어요. 그런데, 그림 그리는 일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겠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하던 일 성실하게 하는 쪽을 택했어요. 성실하게, 계속해서 하다 보니, 이 일이 정말 제게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릴 때부터 이야기를 정말 좋아했어요. 읽는 거, 보는 거, 드라마, 만화, 영화. 이야기를 참 좋아하는데, 그걸 글로만 쓰기에는 부족하고, 그림 하나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담는 능력도 없고, 그래서 저한테는 그림책이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들어요. 말로 다 못하는 건 그림에서 찾고, 그림에서 다 할 수 없는 건 글에서 찾는. 그림책은 글이 없어도 서사(敍事)가 있어요. 글이 없어도 이야기는 있다는 거, 그게 그림책의 매력이기도 합니다.


두 번째는, 저에게는 이 일이 집에서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할 수 있다는 게 컸어요. 잠시 작업실을 가져본 적도 있었는데, 저하고는 맞지 않더라고요. 제게 인생에서 한 획을 그은 사건이 뭐냐고 물으면, 아이를 낳아 기른 일일 거예요. 엄마로서 살게 된 것. 엄마로서는 이제 스무 살이에요. 내 나이 말고. 엄마가 돼서 아이를 키웠던 경험은 제 삶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니까. 지금은 물론 아이들이 저와 함께 있는 거, 그다지 좋아하진 않아요. 컸으니까(웃음).


세 번째는, 이런 강연회가 잡히면, 여기 올 때까지 걱정되고 불안하고 막 가기 싫기도 해요. 그런데, 막상 와서 독자들과 만나보면 행복해요. 마치고 집에 가는 길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어요. 뿌듯하고. 그림책으로 만나는 분들이 정말 선해요. 그림책을 즐기시는 분들은 특별하신 것 같아요. 그림책은 비평도 다른 장르에 비해 그리 맵지가 않아요. 사람들이 착해서 그런 가보다, 하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쉽게 마음을 잘 다치고, 위축되고, 그런 편인데, 그림책을 좋아하는 분들이 선해서 그런지 그런 일은 잘 일어나지 않아요.


오수민 : 개인적으로 생각하시는 장점과 단점도 듣고 싶습니다.


박현주 : 고집이 없다는 것, 그게 아마 장점이자 단점인 것 같아요. 제게 어떤 제안이 오거나 하면, 수용을 굉장히 잘하는 편이에요. 저와 생각이 달라도, , 내 생각이 틀렸나보다, 그렇게 생각해요. , 그분이 나보다 더 잘 아시니까, 이런 생각도 하고. 책으로 사례를 들자면, 어떤 면에서 그런 점이 책을 더 잘 되게 하는 점도 있어요. 이까짓 거!만 해도 출판사 사장님이 그 제목을 제안했어요. 근데, 저는 그 제목이 싫었거든요. 하지만 그 책은 제목 덕을 많이 봤어요. 단점이 되는 경우라면, 책이 다 만들어져 인쇄되어 나왔을 때, 책은 어떤 부분에 내가 원하지 않은 장면이 들어가 있는 걸 발견하게 되는 경우가 있어요. 출판사에서는 좀 사소하게 생각하는데, 작가에게는 그게 크게 다가오는 경우가 있어요. 그럴 때, 어떤 작가는 그걸 지적하고 책을 다시 찍기도 해요. 하지만 전 그걸 못 하겠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가요. 책을 다시 찍게 하는 작가, 그걸 할 수 있는 고집이 부러웠어요. 작가가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고집을 피울 필요도 있는데, 저는 그걸 못 하는구나, 그런 생각.


설명하고, 충고하고, 가르치려드는 이야기 경계

 



오수민 : 작가로서 하는 고민도 많을 것 같습니다.

박현주 : 나이가 들면서 자꾸 관조하면서 설명하고, 충고하고, 가르치려드는, 이런 이야기들이 자꾸 떠오르니까, 그게 걱정이에요. 이런 이야기를 안 하고, 내 이야기를 할 수 있어야 하는데, 하는 생각. 계속해서 세상을 더 낯설게 보고 고민하는 나를 찾을 수 있을까, 그런 고민. 저는 다른 그림책 작가들의 작품은 잘 안 보는 편이에요. 영향을 받을까봐. 대신 다른 것들로부터 자극을 얻으려고 해요. 소설을 많이 읽는 편이에요. 영화도 자주 보고. 며칠 전에 양귀자 선생님의 모순을 봤는데, 왜 이제껏 이 책을 안 읽었는지 탄식이 나더군요. 삶을 바라보는 시각이 정말 새로웠어요.


오수민
: 다음 작품은 어떤 이야기가 나올까 궁금합니다.


박현주 : 오수민 작가님의 신간 아이들이 마음으로 글을 씁니다책을 읽은 후 글쓰기를 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어요. 제가 추천사를 쓰기도 했는데, 그 계기로 오랫동안 중단했던 일기를 다시 쓰기 시작했어요. 오늘 아침엔 제가 쓴 옛날 일기를 봤는데, 제 아이가 초등학교 2학년 때, 학교에서 수학 나머지 공부를 한 이야기가 있어요. 친구들도 다 집에 가고, 선생님과 둘만 남아서 과제를 하는 거예요. 선생님이 문제를 내 주고, 아이가 그걸 풀면 집에 가는 거죠. 아이가 엄청 창피해했어요. 저한테는 그날 나머지 공부를 해서 속상하다는 얘긴 안 했어요. 대신 다른 얘길 했어요. 그날 선생님이 초코 과자를 줬어. 선생님도 나머지 공부를 시킨 게 안쓰러웠던 거예요. 그래서 먹을 걸 준거죠. 그리고, 옆반 선생님이 지나가면서 감자칩을 줬어. 그것까지 먹어서 오늘 기분 좋았어, 그러는 거예요. 그날 공부를 끝내고 교문을 터벅터벅 걸어서 집에 오는데, 전단지 나눠주는 아주머니가 있더래요. 그런데, 아무도 전단지를 받지 않더래요. 그래서 자기가 굳이 가서 받았대요. 그 아주머니는 아이한테 전단지를 줄 이유가 없었겠죠? 어린 아이니까. 그런데 아이는 그걸 받아주고 싶었대요. 그 이야기를 저한테 와서 한 거예요. 그래서 그걸 제가 일기에 썼어요. 그리고 그렇게 쓴 걸 읽으면서, , 이걸 그림책으로 하면 좋겠다,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오늘 아침에. 우리 아이가 그런 마음을 먹은, 그 전단지를 받아주고 싶은 마음을 알 것 같았어요. 안쓰러운 자기와, 전단지를 나눠주는 안쓰러운 아주머니, 그 두 사람이 만난 거예요. 그 두 안쓰러움과 안쓰러움이, 연민과 연민이 만난 거죠. 요즘에 누군가 많이 가지면, 나머지 사람들은 그만큼 적게 가지고 빈곤해질 수밖에 없는, 그런 구조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고 있는데요. 그래서 이 이야기를 후속 작품으로 하면 좋겠다, 하는 생각이 아침에 들었어요.


오수민 : 전단지에서 후속작 영감을 얻은 셈이군요. 다음에 나올 작품으로 작가님을 숭례문학당에서 초대해 북토크를 열고 싶습니다. 그날이 기다려집니다. 요즘 바라는 일이 있으시다면?


박현주 : 여행. 여행을 가고 싶어요. 유일한 소망이랄까요? 시간은 매일매일 금방 가는데, 여행을 가는 시간은 특별하게 느껴져요. 여행 속 시간은 다르게 흐르는 것 같아요. 여행했을 때 시간은 다 기억에 남아요.


오수민 : 이 책의 주인공, 동네 사장님들도 책을 보실 텐데, 사장님들에게 한마디 하신다면?


박현주 : 보실까요?(웃음) 좀 기운 나는 말씀을 드리고 싶은데동네에 작은 가게들이 있다는 것은, 그 동네에 색을 입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동네의 그 작은 가게들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정말 소중한 추억의 장소가 된다는 것, 그런 걸 느끼면서 장사를 하면 좀 기운이 나시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 책의 처음 제목은 우리 동네 사장님 12이런 식이었어요. 그러다, , 코로나 시대를 거치면서 다들 살아남았을까, 가게들은 다 잘 유지하고 계실까, 그동안 정말 안녕하신지, 안부가 궁금하고 걱정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그런 의미를 담고 싶어 제목을 바꿨어요. 그리고, 우리가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갈 때 안녕하세요, 하고 말하잖아요? 그런 인사도 들어 있고요.


오수민 : 어려운 시절, 동네 사장님들도, 우리도 모두, 다 안녕하면 좋겠습니다. 오늘 초대에 응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박현주 : , 우리 모두 정말 안녕했으면 좋겠습니다. 편안하고 좋은 자리,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