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주 1칼럼> 2기 후기


"공동체 문화 회복 절실하다"


 

현장에서는 더 많은 교사가 폭언과 폭행을 당했지만 공개하기 창피해서 그래도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니까 참고 덮으며 점점 감정을 다치지 않기 위해 기계처럼 가르치는 행위만 해왔다. 누군가의 희생이 있어야만 비로소 관심을 가지고 뭔가를 하는 듯한 시늉을 하는 기득권들에게 화가 난다. 더 많이 드러냈더라면 참지 않고 더 빨리 곪을대로 곪은 현장의 모습을 보여줬더라면 선생님의 죽음을 막을 수 있었을까? 이제 예쁜 제자 중 교사를 꿈꾸는 아이가 있을 때 진지하게 말린다. 견뎌낼 수 있겠냐고.

아이들이 실패와 고통을 스스로 견뎌내는 힘을 키워주는 게 중요하다. 귀한 아이들의 모든 문제를 원천봉쇄하려는 일부 학부모들의 삐뚤어진 양육관이 결국 성인이 된 아이들이 갈등 상황을 마주할 때 속수무책으로 무너지게 한다. 건강한 아이로 자랄 수 있도록 합리적 학부모, 열정을 잃지 않는 교사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는 학생, 그리고 제발 제대로 된 실상을 파악하고 실질적인 시스템을 마련하는 정책 입안자가 필요한 시점이다. 너는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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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사전을 찾아보니 다음과 같은 뜻이 나온다. '때에 따라 떠오르는 단편적 생각 또는 그 생각을 적은 글.' 그렇다면 이해가 된다. 어떤 문제에 대해 글을 통해 자신의 의견과 주장을 조리에 맞게 논하는 논설과는 달리 자신의 깊은 곳에서 길어올린 자기의 한 조각.

저자는 글의 초반, 뜬금없이 수많은 논란과 악의적 방송으로 TBS에서 퇴출당한 김어준을 언급한다. 무려 굵은 글씨체로. 하지만 당시 TBS의 뉴스공장은 2022년 시사인 설문조사 결과 가장 신뢰하는 방송 1위였고, 김어준 씨는 퇴출당한 것이 아니라 서울시의회의 국민의 힘 의원들이 서울특별시 미디어재단 TBS 설립 및 운영에 관한 조례 폐지 조례안을 통해 TBS 구성원들의 밥줄을 빌미로 압박한 끝에 자진 사퇴를 하였다. 어쩌면 이 하나로 이 단상이 얼마나 짧은지를 다 가늠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나의 짧은 생각, 단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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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초등 교사의 죽음을 계기로 우리나라 교육계의 문제가 한순간에 폭발한 느낌이다.

개인적으로 한 국가의 성숙도는 바로 교육과 의료 부분에 대한 지원책에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모두를 놓치고 있는 모습이다. 어느 곳에서든 문제가 발생할 수 있지만 철학이 없는 교육 정책은 항상 흔들릴 수 있고 그럴 때마다 모두가 불행해지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바로 세우고자 한다면 교육을 모든 역학 관계에서 뜯어내서 독립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다. 이념을 떠나 10년, 20년을 내다보고 정책을 입안하고 조율해 나갈 수 있다면 교육 관련 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모두가 신뢰할 수 있기에 그렇다.

지금처럼, 100가지 문제를 찾기보다는 1가지 원칙을 세우고 교권, 학생권, 인권 등이 조화로운 참교육을 시행한다면 미래 교육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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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이초 새내기 초등 교사 죽음 통해 본 단상>을 읽고

교권이 무너진 데에는 여러 원인이 있다고 말하지만 그 원인들과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아 아쉬웠다.

"교사 인권 조례, 학부모 인권 조례까지 만들겠다고 하기 전에 상위법이 있는 상황에서 학생 인권 조례가 굳이 더 필요한지는 심각하게 고민해봐야 한다"는 부분은 동의한다. 학생 인권을 보호할 수 있는 근거는 얼마든지 있는데 굳이 새로 만들어 복잡하게 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 너무 학생 인권만 강조하는것 같아 아쉽다. 교사와 학생 모두에게 만족할수 있는(불가능할까?) 시스템이 구축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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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권 회복을 위해

이번 새내기 교사의 일은 너무나 안타깝고 지켜주지 못해 더 마음이 아픕니다. 교권과 학생 인권이 대립되면서 모두가 존중되어야 합니다. 박소영 위원님은 결과론적으로  글을 쓰셨는데 학교에서 학생은 실력도 중요하지만 그전에 인성이 더 중요합니다. 유치원초등학교 때는 인성 교육이 바로 길러져야  성인이 될 때까지 이어지고 사회인이 되어서도 지탱할 수있는 원동력이 된다고 봅니다. 학교에서 실력만 가르치다보면 제도나 시스템을 어떤 좋은 걸 가져와도 또 다른 민원이 올 것이고, 그 민원을 대응하기 위해 해결책을 찾을 것이고 반복될 것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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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사회나 문제 행동을 일삼는 구성원은 있기 마련이다. 이들은 비정상적인 행동을 그 환경에서 가장 약한 자리에 쏟아내기 마련이다. 이번 서이초 교사의 자살 사건은 교육 환경의 가장 약한 고리가 교사임을 증명한다.

교사는 서른 명 남짓의 학생들의 다양한 요구와 다른 특징들을 홀로 책임져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띠고 있다. 전문성과 사명감 모두 필요한 자리다. 그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머나먼 과거에는 강력한 교권과, 학생의 교육을 위해 한마음으로 뭉치는 선후배 동료들과 교직원들의 협력이었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개인화되었듯, 학교 역시 철저히 개인화되었다. 어려움을 함께 나누기에 학교는 그 안에서 서로 간의 업무와 위계로 철저히 나누어져 각자의 업무로 지치고 허덕인다. 특히 저경력 젊은 교사들은 폭주하는 교권 침해에 제대로 대처할 경험이 부족하며, 연대 의식을 갖춘 동료와 조직의 힘을 받기도 어렵다. 학교장은 행정상 감독에 치중해, 서류상 책잡힐 일은 없는지를 우선시하며, 미흡한 점에 대해 교사 개인의 책임으로 돌린 채 함께 하려 하지 않는다.

서비스업 종사자의 인권을 우선시했듯, 교사들에게 날것 그래로의 감정이 직접 던져지지 않도록 안전 장치를 마련하고, 학교 관리자가 온전히 책임을 지며, 교권 침해 사건을 개인의 불행으로 보지 않고 서로의 일로 여기며 함께 논의하는 공동체 문화의 회복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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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서이초 새내기 초등 교사가 학교에서 자살하는 일이 발생했다. 언젠가부터 학생들과 학부모의 도를 넘은 행동이 뉴스에서 간간이 들려왔다. 교실에서 선생님에게 욕설을 하거나 대드는 학생들, 수학 여행지까지 몰래 따라와 애들을 지켜보거나 자신의 아이에 대해 과민 반응을 하는 학부모들. 이러한 학생과 학부모 때문에 교권이 떨어진 것일까? 우리는 다시 심각하게 생각해 봐야 한다.

정부에서는 빠른 시일 내에 제도를 정비하여야 한다. 현재는 모든 학교 폭력이나 문제 행동을 한 학생에 관한 업무를 담임 교사가 맡아 처리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학생을 가르치는 교육 활동 외의 업무까지 담당하여 교사는 과다한 업무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게 현실이다. 학교에 학교 폭력이나 교칙을 지키지 않는 학생을 지도할 특별 담당자를 상주하게 해야 하며, 잘못을 저질렀을 시 구체적인 절차를 만들어 반복적인 행동을 할 때 제재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물론 개인들도 노력해야 한다. 모두가 그렇지는 않지만 일부 학부모들이 성숙하지 못한 행동을 하였다. 자신의 아이가 귀하다고, 아이를 가르치는 선생님에게 함부로 하는 것은 감히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아이가 존중받길 원한다면 아이와 부모 모두가 타인을 존중해야 하지 않을까?

서이초 사건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마음 아파하고 있다. 사람들의 반짝하는 관심으로 스쳐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학생, 학부모, 교사 모두 건강할 사회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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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부터 어떻게 개혁할 수 있을까 아무리 골똘히 생각해봐도 언론이 공정한 보도를 하려면 자본과 결탁을 끊어내야 하고 자극적인 가십기사의 클릭 수로 평가받지 않아야 하는데 과연 가능한가? 나보다 약한 이들을 짓밟는 대신 같이 손잡아주고 걸으며 함께 잘사는 사회는 이제 신화 속에서나 나오는 이야기가 된 걸까? 혐오를 놀이처럼 여기고 기득권을 찬양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언제든 우리도 벼랑 끝으로 떨어질 수 있는데, 우리도 후천적으로 장애인이 될 수 있는데, 국가 권력 자본가들의 폭력에 희생될 수 있는데, 약자들의 삶에 관심이 없다. 나와 상관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관심이 있던 자들마저 불편하고 스트레스 받는 상황에 자꾸 외면한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깔깔거리는 기사를 클릭한다.

유일한 희망은 공감 능력을 장착한 따뜻한 기득권자를 길러내는 것. 이런 모임이 더 많아져서 여기저기 바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목소리가 커지도록 힘을 모으는 것이다. 내 장애를 내 가난을 증명하지 않아도 사람이기 때문에 존중받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 그들을 응원하는 사람이 다수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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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와 지하철 앞에 선 장애인의 정치

장애인소외 계층에 대한  요구는 계속 늘 것으로 생각합니다. 서울시장 취임 전.후 지원이 바뀜으로 기존 수혜자가 탈락되는 현실에 어려움을 전부 공감할 수 없지만 유예 기간이 있었을 것입니다. 국가에 지원 받을 권리도 있겠지만 국민으로서 지원해줄 수 있는 여건으로 갈 수있을 수있으니 미리 대비하는 권리도 찾기 바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국민 모두의 충족을 충분 조건은 어려울 것이기에 제도가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도 내에서 할 수 있는 부분은  찾아보고, 필요하면 도움을 청할 수 있는 방법은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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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자의 앞에 선 문은 닫혀 있다출구의 빛은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지 늘 혼란스럽다. 자신을 지키고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은 오로지 사회에 나를 보여주고 온전히 노출시키는 방법 뿐이다장애인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들을 거친 늪으로부터 구출할 수 있는 것은 누구인지 고민이 되는 지점이다정치인인가? 언론인인가? 아니면 시민인가?

이들을 배려하고 지원하기 위한 사회적 정책과 복지는 끊임 없이 개발되고 자원 또한 늘어나고 있지만 겉으로는 그럴싸하게 보여지지만 왠지 그들의 삶을 짓누르는 낙인과도 같다.

어린 아동의 통합 교육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현장 속에서 마땅한 해결을 찾기라는 것은 쉽지 않지만 나는 응원한다. 그들의 표현의 자유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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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기사를 보며, 우리 사회의 성숙도를 생각하게 된다과거 경주 최부잣집은 근동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도록 살폈다고 하지 않았던가. 내가 안녕하야 하듯이 남도 안녕해야 모두가 평화로울 수 있다

인간은 혼자 살 수 없고 함께 살아가야 하기에 우리보다 약한 존재를 돌보며 같이 살아갈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지금은 내가 링 위에 있지만 나도 언젠가는 링 밖에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상을 강자와 약자, 비장애인과 장애인, 젋은이와 노인, 정상과 비정상 등의 2분법으로만 나눠 생각한다면, 우리는 모두 거기에 속해 있게 된다.

그 사회의 가장 약한 고리에서 그 사회를 볼 수 있기에 그렇다. 우리의 관심을 소수에게 맞추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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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한 언론인 찾기는 하늘의 별따기일까? 편향된 글을 쓰는 주류 언론사들, 자극적인 제목만 뽑아 글을 쓰는 기자들.

최근 몇 년 전부터 이어져오던 전장연(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시위가 지하철에서 버스로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장애인들의 시위에 많은 기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많은 시민들이 불편을 호소했다는 글도 많았고, '오세훈전장연은 억지'라는 자극적 제목을 달아 쓴 기사도 있었다. 많은 국민들은 제대로 된 진실을 볼 기회를 잃고 있다. 언론의 편향성으로 장애인과 약자들을 불편한 존재로 보게 되는 것 같아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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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에는 당연하게 생각되고 누려지는 많은 것들이 실은 오랜 투쟁의 결과이다. 근로자를 위한 근로기준법이 그러했고, 여성의 투표권이 그러했고, 흑인의 인권 또한 그러했다. 심지어 독재자를 끌어내리고 우리나라의 민주화에 이바지한 4.19혁명이나 5.18 민주화 항쟁이나 6월 항쟁도 다 투쟁의 역사이다. 권력이 없는 사람들을 위한 변화는 대개 강력한 저항의 결과인 경우가 많다.

시위 및 집회의 자유는 민주주의를 위한 핵심적 요소 중 하나이다. 시대의 지식인으로 불리며 국민의 온전한 알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그리고 그로 인해 민주주의를 바로 세우는데 일조하기 위해 많은 권리를 부여받은 언론에서 장애인의 권리를 위한 투쟁을 이런 식으로 소비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큰 태만이며 죄악이다.

마지막으로 장애인은 선천적인 장애인인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후천적으로 장애가 발생한 경우이다. 존 롤스는 그의 저서 정의론에서 무지의 베일을 예로 들어 차등의 원칙을 설파하였다. 이를 두고 곰곰이 생각해 본다면 이 문제를 색다르게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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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뉴스 사이에서 균형 찾기

정확한 취재와 논평등의 방법을 사용하고, 공정하고 객관적인 태도로 진실을 추구하면서도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려는 자세를 견지할 때, 그 뉴스는 나중에 설령 오보로 밝혀지더라도 참다운 뉴스라고 할 수 있다.

가짜 뉴스는 그 반대 지점에 서 있다. 부정확한 정보와 추측, 감정을 바탕으로 엮어, 진실을 은폐하고 혼란을 조장하며, 그 과정에서 비방과 모욕을 통해 타인의 명예나 권리를 훼손한다. 

내가 읽고 있는 뉴스가 너무 쉽고, 극단적이며, 자극적이라면, 멈추고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이 뉴스가 가리고 숨기고 있는 지점들이 무엇인지를. 그리고 내 생각의 균형을 잡아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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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뉴스로 가장 득을 볼 사람은 누구인가? 정치권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잘못과 과오도 가짜 뉴스라는 프레임 속에 넣어 억울한 코스프레를 하면 지지자들은 상대 진영을 물어뜯고 상대 진영은 답답함에 분노가 더해져 더 거칠게 대항한다. 한마디로 어떤 정책도 미래에 대한 대안도 없이 자연스럽게 갈라치기한 추종 세력만 적당히 관리하면서 편하게 정치해 먹는 거다. 가짜 뉴스 속에 더 뜨겁게 논란이 될만한 젠더 갈등 세대 갈등 지역 갈등을 교묘하게 퍼뜨리면서 혐오와 분노로 가득한 세상을 의미심장하게 바라보고 있는 거다.

사유하지 않는 사람, 내 생각이라는 것 자체가 없는 사람도 많고, 그들에게 빨대 꽂아 일찌감치 조종하는 사람도 많다. 정치판의 코메디가 너무나 수치스러워 그놈이 그놈이라는 생각으로 관심을 끄는 경우가 많은데 정치를 외면한 가장 큰 대가는 가장 저질스러운 인간들에게 지배당한다는 끔찍한 명제를 기억하여 차악을 가려내는 수고스러움을 감내해야 한다. 한 명 한 명은 파편일 수도 있지만 깨어 있는 시민들의 조직된 힘은 민주주의의 최후의 보루이니 하나의 칼럼에 대한 이런 건강한 토론 문화를 더욱 확장시켜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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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와 정치는 누구를 위한 존재인지 국가와 정치는 국민이 있기 때문에 있습니다.

정부국회사법부 등 국가 기관은 국민이 신뢰할 수 있도록 진실을 공개하고, 가짜 뉴스에 대하여는 심한 처벌(?)을 가해서 가짜 뉴스 생산자가 나오지 않기를 바래봅니다반면에 가짜 뉴스로 인해 빅브라더스의 악행을 폭로하고 사회 신뢰에 앞장서는 스몰 시스터도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공공기관은 정보의 불투명한 부분, 대중이  알고 싶어하는  부분을 오픈하고법은 국민을 위한 공정성을 꿋꿋하게 지키기를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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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뉴스가 판을 치고 있다. 과거에는 일방적으로 TV 뉴스와 신문으로 기사를 접하였다. 하지만 현재에는 정보통신의 발달로 인터넷, SNS, 유튜브로 최신 소식을 24시간 동안 수용할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과거와 다른 큰 차이는 일방적인 정보의 수용이 아니라 쌍방으로 개인의 의견도 소통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더 분노가 가능하게 되었다. 같은 의견을 가진 사람들과 연대할 수도 있고,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과 토론 또는 다툼을 하기 쉬워졌다. 또한 사람들의 분노는 연대를 통해 사회의 불합리한 점을 개선하는 순기능이 되기도 하였다.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카페가 만들어지거나, 인터넷 사이트에 게시판의 한 꼭지에 같은 주제에 의견을 같이 하는 사람들의 글과 댓글이 수백 개, 수천 개 달리기도 한다고 한다. 개인들이 모여 나라와 법이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일을 앞당겨 '제대로' 처리하려 한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에서 무분별한 가짜 뉴스와 개인의 신상 폭로들이 이어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누군가는 진실을 밝히는 것이라 하며 '~폭로'라는 자극적 제목으로 올린다. 또 일부는 클릭수와 인기를 노려 취재를 열심히 했다는 근거로 폭로를 한다.

문제가 있다면 공정하고 신속하게 처리되기를 누구나 바라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수많은 진실 공방과 정부의 늦은 처리, 과도한 가짜 뉴스의 홍수에 피로감을 느끼는 사람들은 늘어가는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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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하나의 힘이 무섭고 소름끼친다쏟아져나오는 뉴스를 접할 때마다 희로애락의 감정들이 소용돌이친다기쁘고 행복해야 할 소식들 시시각각 떠오르면 좋겠지만 우울하고 불행한 소식들이 그 사이를 비집고 나 보란듯이 전면에 내걸린다.

인터넷에 판치는 정보의 홍수로 인해 진실은 가려지고 때론 가짜가 판을 치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진위가 뒤바뀌어버린 세상 속에서 어떠한 것을 마주하더라도 한 번씩 거르게 되고 내 선택에 혼란을 가져온다.

대중들은 물결에 의해 이리저리 휘청거리고 생산하는 이쪽은 퍼다나르기를 멈추지 않는다이 속에서 나는 방관자인가? 또는 감시자인가나 또한 사회 속에서 자유롭지 못한 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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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의 모습을 살펴보면 과도한 경쟁, 극심한 양극화, 갑질의 병폐, 대립 정치 등에서 혐오가 넘쳐나 이제는 분노 사회가 되어 버렸다. 지향해야 될 공동체는 없어지고 각자도생해야 살아남는 정글이 된 느낌이다.

그 원인으로 정치의 부재를 가장 크게 느끼지만, 언론의 역할도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함을 새삼 생각하게 한다.

언론과 시민이 서로 양날개가 되어 정의로 향할 수 있다면 지금처럼 진위가 섞여서 사회의 약자들이 서로 싸우고 찌르는 칼의 형국이 되진 않을 텐데 말이다. 가짜 뉴스의 근간은 이런 부재와 좌절에서 나타나게 된다. 나의 해석은 이를 가려내려 공부할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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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칼럼에서 전개하는 논리는 다음과 같다.

가짜 뉴스는 사람들의 분노를 일으키는데, 그것은 사회의 정의가 제대로 구현되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불만에 기인한다. 하여 굼뜨고 무능한 빅 브라더를 대신해 스몰 시스터가 사회적 권력을 행사하고자 하는데, 그 그림자가 무분별한 마녀 사냥이며 가짜 뉴스 생산자들의 개입으로 스몰 시스터의 선의는 이따금 사회의 골칫거리가 된다. (  ) 가짜 뉴스가 판치는 것은 국가 기관의 낮은 신뢰도 탓이다. 국가 기관 똑바로 해라.’

저 괄호 사이의 논리적 비약이 느껴지시는가? 순서상 가짜 뉴스 생산자에 대한 비판이 와야 할 지점에 저 생뚱맞은 전개는 도대체 어디서 기인하는 것일까?

상기 칼럼이 실린 조선일보의 오보, 즉 가짜 뉴스는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니다. 이는 위키백과에 조선일보/비판/허위보도라는 제목으로 검색하면 빼곡한 자료를 열람할 수 있으며 이로 인해 시민들 사이에서는 조선일보가 신문이면 우리집 두루마리 화장지는 팔만대장경이다라는 조롱 섞인 농담마저 떠돈다. (TV조선이 5년간 방심위 제재를 355 받아 종편 재승인 탈락 대상이었다는 것은 재판 중이니 일단 넘어가겠다.)

이에 민주당에서 가짜 뉴스를 확인도 없이 재살포하는 주요 언론사의 행태를 우선적으로 대상하여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규정한 [언론중재법]이 발의되었으나(2020), 조선일보를 필두로 한 주요 언론사들은 모두가 입을 맞추어 국민의 알권리를 무시한 언론 탄압이라며 강력히 맞섰고, 정권이 바뀌며 [언론중제법]을 통한 언론개혁검찰개혁과 함께 없던 일이 되었다. 이것이 논리의 전개상 자연스러울 가짜 뉴스의 생산자를 비판하는 문장이 괄호 안에서 삭제되고 생뚱맞게도 불똥이 정부로 튄 이유라고 합리적인 의심을 제시한다면 나도 가짜 뉴스 생산자가 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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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과 기술의 발달로 우리들은 모든 것이 긴밀히 연결된 세상을 살고 있다. 휴대폰 하나로 쇼핑, 교육, 오락, 업무 등 많은 영역들을 해낼 수 있으며 혼자 있을 때조차 타인의 일상을 엿보며 연결된 느낌을 받는다. 편리함, 효율성, 빠른 성장, 좋다. 그렇지만 이런 기술,발전과 자본주의의 만남은 위험하다. 사람들은 문제점이나 부작용을 제대로 체감하기도 전에 탐욕에 날개를 달아줄 멋진 도구로 전락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누가 그 기술을 꼭대기에서 쥐고 있는가 우리는 왜 더 광범위하게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공허한가. 편리함을 맛본 사람들은 과거로 후진할 수 없다. 그렇기에 조금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자본주의는 경제적 논리보다 인간의 존엄함과 윤리를 우위에 두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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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적으로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취지를 부정하지 않는다. 이를테면 디지털 프라이버시권을 기본 인권으로 규정한다든가 이를 침해하는 기업이나 단체를 제재하는 것 말이다. 하지만 저자가 말하는 거대 정보 네트워크의 초연결성으로 인해 과연 우리의 사적 영역은 황폐화되고 내밀한 삶은 불가능해졌는가? 인간의 존엄과 가치는 송두리째 훼손당하고 있는가? 이대로 가면 우리의 모든 번영은 물거품처럼 쉽게 스러질 위험 앞에 있는가?

인류를 대상으로 한 범죄는 거대 정보 네트워크가 있기 전에도 있어 왔다. 기존에 없던 것이 거대 정보 네트워크의 등장과 함께 발현한 것이 아니라 다른 형태로 나타난 것일 뿐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에 맞는 보완책을 만들어 꾸준히 대응해나가고 있다. 이러한 면은 애써 외면한 채 극단적인 면만(우편물 테러랑 브러싱 스캠이 같은 선상에 올려놓고 언급할 거리나 되는가개인 정보가 사람의 정체성을 결정짓는 핵심 요소라고? 인간의 정체성이 국가에서 부여하는 일련번호와 전화번호, 통장번호 등으로 이루어져 있단 말인가? ‘제로 프라이버시로 밀어붙이는 것이 미국, 중국 러시아 같은 국가 권력이나 구글, 애플, 아마존, 페이스북 같은 거대 정보 기업만은 아니라고? 국가는 디지털 범죄에 대해 손을 놓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기라도 하단말인가?)을 언급하며 불안-자신이 불확실하고 위험한 상황을 통제할 수 없을 때 경험하는 불쾌한 느낌을 조장하는 것이 과연 그의 주장에 도움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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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락 터치 한번으로 내 손안에 모든 정보가 모여든다. 작은 스마트기기 조작을 통해 나는 내가 원하는 장소, 음식, 쇼핑을 하며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고 있다.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디지털 정보 사회에 살고 있다. 정보의 힘이고 빛이다.

때로는 나의 정보는 나도 모르는 새 빛의 속도로 어느 암조직의 중앙 정보망으로 전파되고 또는 데이타브로커 등에 의해 전파되고 있다. 사기, 해킹, 또는 성범죄 등의 한 수단으로 악용될 뿐더러 온갖 범죄의 온상으로 다져진다. 정보로 얻을 수 있는 빛과 대비되는 그늘.

가끔씩 걸려오는 상조 전화, 내가 가지고 있는 보험을 조회해주겠다는 전화, 인터넷통신을 가장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다고 장담하며 걸려오는 전화 등 나는 그들의 정체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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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연결망 사회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초연결망 시대가 제공하는 달콤한 편의의 반대쪽에는 개인의 프라이버시 침해와 정보 노출의 위험이 있다. 사실, 내가 지금껏 운이 좋다고 생각할 뿐, 나의 개인 정보도 디지털 세상에서 얼마든지 노출되고, 범죄, 모욕 등에 이용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위험성을 인지함에도 불구하고, 왜 나는 3개월 전과 동일한 비밀번호를 사용하고 있는 것일까?

개인적 차원에서는 개인 정보를 보호하려는 데 소극적이기 때문이다. 테크놀러지 자체에 어려움을 느끼고 있는데, 차근차근 공부하며 디지털 세상에 남겨진 나의 발자취들을 지우고, 온라인 상에서 내 삶의 모습 뿐만 아니라 무분별하게 나의 선호도 (좋아요 등)를 남기지 않으려는 노력이 필요하겠다.

그러나 개인 차원에서 방어만 할 수는 없다. 기업과 정부는 이용자들의 사생활을 보호하는 노력을 쉽고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게 노력해야 한다. 핸드폰의 사진 촬영시 촬영 소음이 반드시 들리게 하거나, 아이폰의 경우 어플을 설치하지 않는 한 자동음성 녹음을 할 수 없는 것들도, 소비자들의 프라이버시 안전에 대한 요구가 있었기에 기업이 반영한 것이다

끝으로 디지털 세계에 대한 윤리 교육이 필요하다. 물리적으로 나를 감시하지 않는 세계에서, 일상생활에서는 그렇지 않던 내가 남의 사생활이 궁금하고, 그 선을 밟으려는 유혹에 넘어가기 쉽다. 나의 사생활이 중요하듯, 타인의 생활을 존중하는 디지털 윤리 교육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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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대만, 중국에서 우리나라로 배송된 사기 우편물로 문제가 많았다. 자신이 주문하지 않은 택배가 해외에서 날아왔으니 국내 수취인들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해당 우편물에 위험한 물질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많은 인력이 조사와 검사에 투입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알고 보니 구매자 리뷰를 올리기 위한 해외 업체의 사기 편법이었다. 우편물 안에는 제품이 없거나 가치가 없는 가벼운 제품이 들어 있었다고 한다.

해당 사건으로 우리나라 국민들의 집주소와 이름 등의 개인 정보가가 단순히 국내에 유출되어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해외 업체의 불법적인 일에 이용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지금은 전 세계가 네트워크로 긴밀하여 연결되어 있다. 인터넷의 발달은 세계 곳곳을 하나로 연결시켰다. 세계에서 일어나는 사건, 사고를 실시간으로 알 수 있고, 다른 나라에 있는 사람들과도 핸드폰과 노트북만 펼치면 얼굴을 보며 대화할 수 있는 시대이다. 초연결은 사람들의 시간을 단축시켜 주었다. 하지만 빛과 그림자처럼 한편에는 많은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개인 정보 유출과 전자 금융 사기 등 다양한 사건이 일어난다. 해결 방법과 예방을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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