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에트 문명의 흔적
— 21세기 100대 도서 읽기-7기 참여 후기 —
<21세기 100대 도서 읽기>는 2024년 뉴욕타임즈에서 선정한
21세기 최고의 도서 중 매달 2권을 골라 읽고 토론하는 모임입니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김하은 《붉은 인간의 최후》
전문가 순위 72위
1991년 12월 26일 소련이 붕괴됐다. 하나의 연방은 해체되어 여러 나라로 분할됐고 사회주의 경제체제는 자본주의로 바뀌었다. 그 땅에 살던 사람들은 급변의 시기를 어떻게 지나왔을까. 좀처럼 알려지지 않았다.
이 책의 원제는 Secondhand Time 다. 패망 이후 변화의 시기를 의미하며 secondhand의 또 다른 뜻은‘중고’다. 중고는 속성상 전 주인의 흔적을 간직한 채 새 주인을 맞는다. 소련인은 자본주의라는 새 옷을 입은 사회주의자들이었다. 두 체제의 간극은 저마다 느끼는 정도가 달랐겠으나 그것을 소화해야 할 몫은 온전히 각자의 몸이었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는 격변의 시기를 지나온 1천여 명을 20년 간 인터뷰하고 그들의 육성을 《붉은 인간의 최후》에 담았다. 저자의 질문은 체제도 사상도 아닌 소소한 그러나 인간이라면 누구나 경험할 것이라 여겨지는 일상이었다.
“소비에트 문명···나는 소비에트 문명의 흔적을, 소비에트의 익숙한 얼굴을 서둘러 기록한다. 사람들에게 사회주의가 아닌 사랑, 질투, 유년기, 노년기에 대해, 그리고 음악, 춤, 헤어스타일에 대해, 사라진 삶의 수천 가지 소소한 일상에 대해 물어보았다.”(p.15)
그러나 돌아온 답의 대부분은 사회주의와 혁명과 수용소와 폭력에 대해서였다. 그들에게는 그것이‘소소한 일상’이었다. 사회주의자가 아닌 소련인 개인은 없었던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과거를 격정적으로 토로한다. 사회주의 국가에 대한 자긍심과 독일 파시스트를 상대로 승리한 전쟁과 페레스트로이카에 대한 기대와 실망을. 알렉시예비치는 쏟아지듯 터져 나오는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기를 자처하고 기록을 통해 그들의 최후를 위무한다.
글 · 진행자 주진희
✽다음은 토론에 참가하신 분이 남긴 ‘인상 깊었던 구절’과 ‘후기’입니다.
“순진하고 서툰 사회주의 vs 젊고 낯 두꺼운 자본주의”
실패한 사회제도. 잔인함. 폭력. 전쟁으로 수많은 사람이 절망에 이르러도 유유히 계속되는 삶. 그것이 허무의 마력일까?
— 오*근 님
“그렇다, 1990년대에 우리는 행복했다. 허나 그때의 순진함을 되돌릴 수 있는 길은 없다. 우리는 그때 선택했다고 믿었고, 공산주의는 처참하게 패배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것은 시작일 뿐이었다......”(p.20)
책을 읽다가 몇 번이고 책장을 덮을 수밖에 없었다. 소련 해체 후 겪어보지 못한 너무도 큰 변화의 파도를 만나 휩쓸려 버린 사람들의 생생한 날것의 이야기를 들으며 괴롭고 슬픈 감정을 느끼지 않기는 불가능하다. 책을 읽으면서도 이런데 이 모든 이야기를 인터뷰로 담아낸 작가의 마음은 어떤 것이었을까 생각해 보게 된다. 매번 이 책모임을 통해 접할 기회가 드물었던 새로운 세계에 대해 배우고 생각할 수 있어 참 좋다.
— 이*희 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