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고 고치고 다시 고치기를 반복하며…
마침표 아니고 쉼표
2026년 12월 31일, 지난 한 해를 떠올리며 가장 기억에 남은 일과 잘한 일이 무엇이냐고 물어본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2026년 1월 1일 워밍업 글쓰기로 시작해서 2일부터 4월 11일까지 100일 동안 글쓰기를 완주한 일이라고 말할 것이다. 2025년, 한 편의 제대로 된 글도 쓰지 못했던 무력감에 지쳐갈 때, 우연히 들른 학당의 프로그램에 꽂혀 신청했던 일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 오늘 마침표를 찍는다.
어쩌면 마침표가 아니라 쉼표이다. 글을 꾸준히 쓰기 위해, 글의 탄력을 위해, 글의 근육을 만들기 위해 툭툭 던지는 공을 잘 받기 위해 연습하는 것처럼 글을 썼다. 어느 날은 아주 길게, 어느 날은 죽어라고 생각나는 글감이 없어서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나도 모르는 상태에서 짧게 써 내려가기도 했다. 신기하게 쥐어짜던 글이 후반부로 넘어갈 때는 손이 저절로 자판을 달리기도 했다. 짧은 글도 꼬박 한 시간 넘는 시간을 보냈는데, 생각이 나면 쭉 이어지는 글이어서 30분 만에 쓴 적도 있었다. 글의 내용은 차치하고, 내가 글 쓰는 일에 편해지고 있다는 것에 만족하기도 했다.
그렇게 100일 지나갔다. 드디어 과제를 마무리하고 다 끝낸 것처럼 시원하다. 아니 조금은 왠지 서운하다. 그렇다고 계속 이어 200일을 이어 쓸 자신은 없고. 잠시 쉼표를 찍으려 한다. 100일로 단련된 습관이 다시 원위치로 돌아가지 않게 나는 계속 글을 쓸 것이다. 하지만 한숨 돌릴 쉼표가 필요하다. 잠시 쉼표에 기대어 100일의 기록과 응원의 댓글과 따뜻한 격려와 공감을 기억하고, 머릿속에 정리하면서 다시 호흡을 가다듬고, 긴 호흡을 하면서 고난의 행군을 할 것이다. 그리고 간직할 것이다. 함께 한 모든 것을.
아마도 깊은 밤이 되는 시간이면 '마감 3시간 전입니다', '마감 2시간 전입니다', '마감 1시간 전입니다'의 문자의 잔상이 날 쫓아올 것 같다. 약속이 있어도 서둘러 집으로 발걸음을 재촉한 시간이 몸에 남아 당분간 서둘러 파하고 집으로 갈지도 모르겠다. 여행지에 컴퓨터를 가지고 갔던 경험도 괜스레 으쓱하고, 비행기 안에서 관종처럼 사람들의 시선을 즐겼다. 나 이래 봬도 글 쓰는 사람이야. 아무도 관심 없었을 텐데 말이다. 처음은 조급해서 시작한 일이 글자가 하얀 글 판에 새겨질 때마다 느끼는 기쁨이, 내게는 소중한 일이었음을 깨닫는 시간이기도 했다. 그리고 더욱 정진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했다.
100일 완주, 그래서 내게는 마침표가 아니라 쉼표이다.
- 최ㅇㅇ
마지막 메시지 올림
백 일이라는 시간은 감정이 배제된 시계의 속도와는 달리 때마다 다른 속도로 흘러갔습니다. 처음엔 과연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자신에 대해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어영부영 시작했다가, 감당 못 할 실체를 알고서는 불안으로 늘어지는 시간을 보냈다가, 어느 순간엔 어설픈 기대를 저버리고 마음을 비웠습니다. 그랬더니 이상하게 시간은, 순리대로 흐르기 시작했죠. 그래서였는지 다시 채워진 의지에는, 자신에게 거는 어떠한 기대도 실망도 실려 있지 않았습니다.
왜 그럴 수 있었을까요?
글이라는 걸 제대로 써 본 적도 없는 사람인지라 요령도 책도 없었습니다. 단지 속으로만 쌓여가는 형체 없는 마음에 글이라는 옷을 입혀 내가 나를 바라볼 수 있도록, 시도라는 걸 해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쉬울 리가 만무하지요. 초심자의 무모함은 자칫 외로울 뻔했습니다. 더 이상 내 마음의 소리가 들리지 않아 귀를 막고 싶을 때 우연의 시작처럼, 여러분의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삶의 소리를 대변한 그 감정 어린 문장들은 모두가 나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안도감으로 안착했고, 허락도 없이 여러분들을 제작은 그릇에 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덕분에 묻어갈 수 있었고, 얹혀갈 수 있었습니다.
이제 어떡하지요?
백 일간 우리는, 꽤 많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어디 가서 쉽게 하지 못하는 비밀 같은 이야기를 너무 많이 공유해버린 건 아닐까요? 문우라는 말처럼 이미 저는 혼자서 우정을 시작했지만 얼굴을 보면 알아도 모른 척해야 하는, 쑥스럽고 부끄러워 영원히 만나면 안 될 것 같은, 금단의 사이가 돼버린 건 아닐까요?
비쩍 마른 일상에 어떻게든 물을 주고 싶었습니다.
글쓰기를 통해 물을 주는 방법을 조금 알았으니, 말리고 쉬는 요령을 터득하여 나라는 사람을 잘 꾸려나가 보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여러분, 함께해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좋은 분들과 인연이 되어 운 좋게 완주가 가능했습니다. 특히, 아끼지 않는 '좋아요'로, 제 마음까지 '좋아요'로 만들어주신 여러분께, 90도로 공수 인사드립니다. 모두들 멈추지 마세요.
- 배ㅇㅇ
함께여서 가능했던 100일
오늘, 100일 글쓰기의 마지막 날이다. 끝에 서니 늘 그렇듯 아쉬움과 후련함이 함께 밀려온다.
함께한 분들의 글을 충분히 읽지 못한 것이 마음에 남는다. 누구보다 열심히 댓글로 응원하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그래도 ‘100일 글쓰기 습관 54기'는 계속 열려 있을 테니, 시간이 날 때마다 천천히 다시 찾아가 읽고 뒤늦게라도 마음을 남기려 한다.
노트에만 머물던 글을 온라인이라는 공간에 꺼내어 두서없이 쏟아냈던 100일. 그 시간을 함께 공감해 주셔서 고맙다.
돌이켜보면 이 100일은 즐거움보다는 '해야 하는 일'에 가까웠다. 그래서 잠시 쉬어가려 한다. 하지만 또 어느 날, 마음이 다시 움직이면 자연스럽게 이 자리로 돌아오게 될 것 같다. 함께해 주셔서 고맙다.
그리고 무엇보다, 각자의 자리에서 원하는 것을 이루어가길 진심으로 응원한다.
- 조ㅇㅇ
색다른 경험,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100일의 여정이 오늘로 끝이 나네요. 처음 시작할 때는 추운 겨울이었고 조금은 막막했는데, 어느새 살랑살랑 봄바람과 함께 마지막을 맞이했습니다. 백일 글쓰기를 통해 글 쓰는 습관을 길러보자는 포부가 이루어졌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나름 노력한다고 했지만 매일 글쓰기는 역시 쉬운 게 아니었습니다. 100일을 다 채우지도 못했고, 그나마 30퍼센트는 예전에 썼던 글로 땜빵해버렸습니다.
또 기대하지 않았던 즐거움이 있었으니, 다른 분들의 글을 읽는 즐거움이었습니다. 오로지 글을 사랑하는 분들이라는 것 외에 아는 게 없는 분들의 글을 읽으며 슬며시 웃기도 하고, 찔끔 눈물이 나기도 하고, 엄청 공감이 되기도 하고, 잘 쓴 글에 감탄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차곡차곡 글 퍼즐이 쌓이면서, 한 분 한 분에 대한 이미지가 그려지기도 하더라구요. 조금씩 친밀감이 생기면서 한 번 만나보면 좋겠다 싶긴 했지만, 역시 이렇게 모르는 채로 약간의 아쉬움과 함께 이별하는 게 더 나을 것 같기도 합니다.
그동안 리더님을 비롯해 함께한 모든 분들 덕에 조금은 색다른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그간 주고받은 응원과 격려, 노력했던 순간들 잊지 않겠습니다. 모두들 감사했습니다!
- 정ㅇㅇ
100일 글쓰기를 마치며
53기 때 처음 100일 글쓰기를 시작했을 때는 완주하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함께 글쓰기 하는 즐거움을 처음 느꼈던 것 이상이어서 이번에 다시 신청을 했네요. 이번에는 다행히도 완주를 하게 됐습니다. 함께해 주신 54기 문우 여러분의 덕분이라고 생각해요.
54기를 다시 신청할 때 도대체 뭘 써야 하지? 하는 막막함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떻게든 쓰게 되더라구요. 퇴근해서 책상 앞에서 멍하니 있을 때도 있었고 뭘 써야 할지 고민하다가 먼저 올라온 글들을 읽으며 많은 위로를 받기도 했습니다. 저만 막막한 건 아니구나 싶기도 하고 올려주신 글들에서 느끼는 동질감이 좋았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어쩌면 저렇게 잘 쓰시나 하는 경우도 많아서 살짝 위축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건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54기 100일 글쓰기를 신청하면서 계획했던 것들이 몇 가지 있습니다. 첫째는 쓴 글들을 개인 블로그에도 올려보자, 둘째는 다양한 종류의 글을 써 보자, 셋째는 하루에 5매 이상은 쓰자는 것이었죠. 결과적으로는 전부 지켜지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블로그에 올리지 못한 것은 뭐랄까요, 너무 개인적인 글인 것 같아서 좀 부끄럽더라구요. 그래도 여기에선 쓸 수 있었습니다. 적어도 같은 배를 타고 있는 분들이라서 어느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해서요. 다양한 종류의 글을 써 보자는 생각은 늘 주절거리는 식의 글만 써온 것 같아서 하게 되었는데요. 결국은 뭐, 하던 대로 한 것 같습니다. 독후감, 서평, 리뷰 같은 것을 좀 자세히 써보고 싶었는데 잘되지 않은 것 같아요. 하루에 5매 이상 쓰자는 것도 지키지 못한 날이 꽤 있었구요.
그렇지만 함께 글을 쓰고 좋아요와 답글을 주고받고 서로의 글을 공유하며 느꼈던 동질감은 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얼굴도 본 적 없는 문우 여러분의 글들을 읽으며 괜히 혼자 내적 친밀감을 많이 쌓았습니다. 이렇게 연결될 수도 있는 거구나, 싶더라구요. 이런 경험을 할 수 있게 해 주신 54기 문우 여러분께 다시 한 번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 이ㅇㅇ
휴먼 다큐, 100일 글쓰기의 끝에서
한 분의 총괄 감독(리더님)님의 격려와 독려 아래 스물다섯 명의 감독이 각각 만들어낸 <휴먼 다큐>, 100일 글쓰기가 오늘로 막을 내린다. '내 글'을 쓰고자 하는 욕구와 욕심이라는 지독히 개인적인 이유로 시작한 글쓰기였는데 일석이조, 일타쌍피, 아니 그 이상의 것들을 얻었다.
나에 관하여
아직도 뭔가를 마음 먹으면 끝까지 해낼 수 있는 '끈기 있는 사람임을 확인했다. 살면서 100일 동안 하루도 빼놓지 않고 '순수한 자유의지로 하겠다고 마음먹은 일'을 해본 적이 얼마나 있었던가. 아마 단 한 번도 없지 않았나 싶다. 그런 의미에서 이제 100일 글쓰기 완주를 발판 삼아 앞으로는 꼭 글쓰기가 아닐지라도 장기적으로 해보고 싶은 일들을 나만의 프로젝트 혹은 챌린지 형식으로 기간을 정해 놓고 굴려봐도 될 것 같다.
내가 글 쓰는 실력은 딱히 없어도 제목은 좀 잘 뽑는 편인 것 같다고 생각한다. 함정은 제목 뽑기는 AI에 의해 얼마든지 대체될 수 있는 영역이라는 것. 그래서 쓰잘 데기 없는 소질(?)인가 싶었지만 나민애 교수의 <나민애의 다시 만난 국어>를 읽으며 요 재주 잘 살리면 앞으로 글감 걱정 없이, 읽히는 글을 쓸 수도 있겠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오늘의 제목이 쌓여 인생의 제목이 된다
우리는 일상에서 제목을 쓸 일이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제목 쓰기를 굳이 배울 이유가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죠. 일상에 제목의 자리는 분명히 있습니다… (중략) 오늘 일과 감정을 자세히 쓸 시간이 부족하다면 간단하게나마 메모를 남깁니다. '이상하지만 기분은 좋았던 날', '올해 석양이 제일 예뻤던 날'... (중략) 저는 하루를 잘 마감하고 제목으로 남겨서 일기에 묻어두고 잊어버려야 다음 날을 잘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중략) 카페에 한두 시간 있었다면 그 시간을 흘려보내지 마시고 카페에서 보냈던 시간에 대해 제목을 붙여보세요. 그 제목이 모이면 오늘 하루의 제목이 됩니다. 하루의 제목이 모이면 1년의 제목이 되고, 70년, 80년이 쌓이면 우리 인생의 제목이 됩니다. 여러분도 하루를 잘 살고 마치면서 '오늘의 제목'을 달아보세요. (p.317~318)
여전히 예전부터 쓰고 싶었던 글은 쓰지 못해 아쉬움이 남는다. 이른바 '성장하는 40대 여성'들에 관한 글이다. 멀리 볼 것도 없이 내 주변의 지인들을 보며 느낀 점들, 그들의 성장기에 대해 다루는 글을 시리즈로 쓰고 싶었다. 주부로 지내며 아이들을 키우다가 자격증 시험에 도전한 새언니, 역시 주부로 지내다 전공을 180도 바꿔 늦깎이로 국어과에서 석사를 하고 박사 과정까지 생각하게 된 이쁜 후배 H, 자기계발과 진취적인 여성상의 끝판왕 나의 베프, 대학교 동창 중 커리어적으로 가장 잘 나가는 회사 정책 실장 S, 갓생 살며 책도 쓰고, 운동도 하고, 직장도 다니고, 살림마저 잘하는 H 등등. 각자의 고민을 안고, 언제쯤 조금 시간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편안해질까 하면서도 현실의 나를 꾸준히 갈고 닦는 여성들의 성장기, 잠룡들이 깨어나기 시작하는 40대 여성들의 이야기에 포커싱하고 싶었으나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이번 글쓰기에서도 이를 이루지 못했다. 이 부분에 대한 글쓰기를 실행시키는 것은 앞으로 나의 글쓰기 과제가 될 터이다.
타인에 관하여
글쓰기를 하며 장르 불문 세상 모든 작가님을 존경하는 눈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수필이나 자기계발서만 보아도 최소 4챕터, 총 40편의 정제된 글이 있어야 책이 나오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나 같은 범인은 일기 수준의 글을 주로 쓰고, 어쩌다가 마음에 드는 글이 한 편씩 나온다는 걸 생각하면, (편집자들의 손이 많이 닿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기본적으로 내공이 대단하신 거다. 하물며 소설가들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야말로 뼈와 살을 깎는 창조의 고통을 겪으며 소설을 내실 테니.
글을 통해 글쓴이의 성정이 보였고, 관심사와 취미, 직업이 보였고, 생활이 엿보였다. 그냥 여느 때와 다름없는 일상을 살아간다면 절대로 알게 될 리 없는 다양한 직업과 취미를 가진 분들을 알게 되면서 일상을 배로 풍부하게 살아가는 느낌이었다. 각본 없는 드라마가 따로 없었고, 모든 분에게서 각기 다른 배울 점이 있었고, 온라인이라는 공간을 통해 전혀 모르던 분들의 사람 냄새를 진하게 맡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오로지 글을 통해 생기게 된 내적 친밀감과 유대감, 이것 또한 글이 가진 힘이 아닐까 싶다.
나는 한번 맺은 인연을 길게 가져가는 편이라 얼굴 한번 보지 않은 짧은 만남과 헤어짐에는 영 익숙지가 않다. 그런 100일 글쓰기의 경험은 더더욱 여운이 많이 남고, 특별하게 기억될 것 같다.
“함께여서 완주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들을 만나고 함께할 수 있어 많이 행복했고, 감사했습니다. 살면서 정 생각나거든 불쑥 안부 전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그런 거 잘 하거든요. 리더님, 감사했습니다. 혹시 백쓰에서 또 뵙게 된다면 그때는 완주+퀄리티도 있는 글을 써보고 싶다는 소망을 품어 봅니다."
- 김ㅇㅇ
누름돌
내 취미 중 하나는 장아찌를 담그는 일이다. 봄날의 머위를 시작으로 오이, 무, 고추에 이르기까지, 제철 채소를 간장이나 소금물에 담가두면 가장 맛있는 시기의 계절을 사계절 내내 식탁 위에서 즐길 수 있다. 요즘 사람들은 짠 음식을 피한다지만, 특유의 짭조름한 맛은 도망갔던 입맛을 돋우는 데 그만이다.
이때 꼭 필요한 도구가 바로 ‘누름돌’이다. 재료가 위로 떠오르지 않게 눌러주는 지름 25cm, 두께 7cm의 이 묵직하고 참하게 생긴 돌덩이는 일 년 양식을 책임진다. 공기를 차단해 산패를 막고, 삼투압 작용을 도와 발효의 최적 조건을 만들어준다. 사용할 때마다 팍팍 삶아 관리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무거운 돌이 주는 그 특유의 믿음직함에 나는 자꾸만 애착이 간다.
나에게 있어 ‘백일 글쓰기'는 바로 이 누름돌과 같았다. 평소엔 구석에 박아두었다가 어느 날 갑자기 꺼내어 짠물 속에 푹 담가놓아도, 불평 한마디 없이 묵묵히 무게를 잡아 맛을 지켜내기 때문이다. 글쓰기가 누름돌처럼 내 삶의 맛을 지켜주는 방식은 세 가지다.
첫째, 한눈팔지 못하게 공기를 차단한다. 발효 음식의 재료가 공기 중에 노출되면 금세 곰팡이가 피고 무르기 마련이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오늘만 하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백일 동안 쑥과 마늘을 먹는 곰의 마음으로 꾸준히 임해야 한다. 한결같은 마음으로 글이라는 짠물 속에 오롯이 잠겨 있어야만, 내 몸과 마음에서 나온 문장들이 끝까지 아삭하고 신선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둘째, 적절한 압력으로 속까지 양념이 배게 한다. 누름돌의 무게는 재료 안의 수분을 밖으로 밀어내는 물리적 압력을 가한다. 글쓰기에서도 마감 시간 전까지 계속되는 긴장감은 내 안의 불순물을 빼내고, 사유라는 양념이 속까지 깊숙이 스며들게 한다. 이 수고로운 과정을 거쳐야만 비로소 문장의 식감이 꼬들꼬들하게 살아난다. 함께 글을 쓰는 동료들과 댓글로 응원을 주고받는 과정은 그 발효를 돕는 유익한 유산균이 된다.
셋째, '글쓰기의 뻔뻔함'이라는 면역력을 길러준다. 사실 첫 번째 백일 글쓰기부터 지금까지 매일매일 후회했다. 글쓰기를 신청한 내 손가락을 원망하면서도, 어김없이 그 손가락으로 자판을 두들겼다. “뛰면서 생각하자”라는 표어처럼, 일단 쓰면서 생각하기로 했다. 무엇을 쓰고 싶은지 아직은 선명하지 않지만, 쑥스러움을 무릅쓰고 이제는 글쓰기를 사랑한다고 외치고 싶다.
처음엔 백일만 채우면 단감이 뚝 떨어질 줄 알았다. 하지만 단감은커녕 쓴물만 나왔고, 글을 써야 한다는 강박에 주변 가족들을 괴롭히기도 했다. 조급함은 독이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은 지금, 나는 조금 더 느긋해지기로 했다. 부지런히 메모하고, 책을 읽으며 글자의 꼬투리를 모아 파일로 만들 예정이다.
이제는 정말 ‘뻔뻔하게' 나아갈 차례다. 쓰고 고치고 다시 고치기를 반복하며, 나를 가로막던 자기검열의 벽을 낮추려 한다. 그동안 마감에 급급해 쏟아냈던 '아무 말 대잔치'의 부끄러움은 차갑게 식은 국물 위의 소기름처럼 살짝 걷어내면 그만이다. 그러니 이제 나를 말리지 마시라. 나는 이 누름돌 같은 무게감을 기꺼이 즐기며 뻔뻔하게 계속 써 내려갈 테니.
- 김ㅇㅇ
100일 동안의 변화
마침내 100일 되었다. 1월 2일 첫 글쓰기 때는 멀게만 느껴졌던 4월 11일이 오늘이다. 마지막까지 마감을 앞두고 서둘러 글을 남긴다. 매번 느끼지만 시간이 참 빠르다. 그래도 이번 100일 동안은 완주하지는 못했지만, 무엇을 쓸지 고민하던 순간들이 있었기에 그 기억이 남아서 그 어느 때보다 그 기간이 길게 느껴진다. 조금은 달라진 자신을 느낀다. 반복되는 일상과 격변하는 세상 속에서 중심을 잡지 못하고 부유한 마음과 생활들을 글로 드러내면서 인식하고 스스로를 돌아보았다. 당연한 얘기지만 모든 게 자신에게서 시작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 시간이었다. 마음이 요동치고 생활이 무너져도 다시금 다잡고 앞으로 나아갈 힘들을 확인하는 순간들이었다.
글쓰기에 실패하고 며칠을 방황하다가도 다시 돌아오는 과정 자체가 하나의 이야기가 되어주었다. 글을 어떤 뛰어난 누군가의 것이 아니라 그저 솔직하고 진솔하게 자기를 돌아보고 내 생각을 드러내는 내 것이라는 생각도 해본다. 그 속에서 즐거움을 느낀다. 어떻게 됐든 하루의 글쓰기를 마쳤을 때의 후련함과 뿌듯함은 일상에 활기를 주었다. 글쓰기가 조금은 생활의 일부가 되었다. 들었던 생각과 느꼈던 감정과 당시의 기분, 보고 읽은 것들을 어떻게 쓰면 좋을지, 무엇을 쓰고 싶은지를 생각하는 게 습관이 된 것이다. 함께 참여하신 문우님들과 잘 이끌어주신 리더님께 감사하다.
- 김ㅇㅇ
99!
지금까지 이런 숫자는 없었다. 이것은 충격인가, 완벽인가! 거짓말 조금 보태서 오늘의 글제목 99를 보고 잠시 울컥했다. 역시나 오늘도 글쓰기 덕분에 마감이 임박해서 성급히 하루를 돌아보고 있다.
글쓰기 첫날은 나의 이 선택이 축복일지 벌칙일지 모른다고 나 자신을 반신반의했는데... 결론은 축복이었다. 늦더라도 빼먹지 않으려고 노력했던 매일매일의 나를 스스로 격려해주고 싶다. 100일 글쓰기로 인해 숙제를 앞에 둔 아이처럼 적지 않은 부담을 안고 100일을 살았다. 나는 가끔은 일찍 숙제를 끝내고 철없이 놀이터로 향했지만 대개는 빈약한 글감과 가벼운 필력으로 겸손과 부끄러움을 배우게 되었다. 게다가 글쓰기 동기분들을 보면서 매일 큰 힘을 받은 것이 가장 큰 소득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고마운 마음에 차라도 한잔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아쉬우면 아쉬운 대로 그 또한 멋진 추억으로 간직하고 싶다.
뭐라도 쓰자는 생각을 붙들어 준 여기 백일 글쓰기에 감사한 마음 가득하다. 하여튼 지금 나는 뭐라도 쓰고 있지 않은가. 쓰는 게 남는 것임이 확실한 99일째 밤이다.
- 남ㅇㅇ
청개구리
말 안 듣는 청개구리가 있었다. 엄마가 일어날 시간이다, 하면 더 누워 있고 싶고 나가서 운동 좀 해야 한다, 하면 누워서 빈둥대고 싶어 했다. 공부할 시간이다, 하면 공부가 하기 싫어지고 그럼 공부하지 마라, 하면 공부가 하고 싶어졌다. 그러면서 말 안 듣는 아기 청개구리들을 보며, 니들은 대체 누굴 닮아 이렇게 말을 안 듣는 거야! 하고 호통을 치기도 했다.
또, 청개구리는 100일간 글쓰기를 해보겠다고 해서 시작을 했는데도 아, 왜 이리 귀찮은 거야, 오늘은 그냥 자야겠다, 하고 누워 자버렸다. 왜 괜히 힘들게 글쓰기를 하겠다고 해서 매일, 글 써야 하는데, 라고 생각하며 불안하게 하루를 보내고 죄책감으로 잠자리에 드는 건지 스스로가 이해가 안 되었다. 100일만 지나면 나도 좀 마음 편하게 살자! 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기다리던 100일이 다가왔다. 그러자 청개구리는 또 글쓰기가 하고 싶어졌다.
'나 아직 할 말 다 못했는데.'
개굴개굴 울어야 한다고 그렇게 말해도 굴개굴개 울던 청개구리는 엄마가 죽고 나서야 개굴개굴 울면서 엄마를 매일같이 그리워한다. 왜 엄마가 있을 때는 지지리도 말을 안 듣다가, 너 그러면 엄마 죽는다, 해도 말을 안 듣다가 엄마가 진짜로 죽고 나서야 후회하며 매일매일 우는 것인가.
엄마가 언젠가는 떠날 것도 알고, 글쓰기도 곧 있으면 끝날 것을 알면 옆에 있을 때 잘 해야 할 텐데 왜 다 지나가고 나서야 그때 조금 더 잘할걸, 하며 아쉬워하고 후회를 하느냐는 말이다. 청개구리 같이 살지 말자고 다짐에 다짐을 해도, 청개구리는 또 잊어버리고 청개구리처럼 행동한다.
- 한ㅇ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