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이 좋다!]
“마음이 무너질 때 만나는 목소리들”
— 《NON STOP ; ‘아무것도 아닌’을 위하여》···
그림책계의 반항아, 토미 웅게러의 마지막 선물같은 책 —
지난 2019년 세상을 떠난 토미 웅게러의 마지막 그림책, 《NON STOP; ‘아무것도 아닌’을 위하여》(책읽는곰, 2022)를 펼친다. 역자 김서정은 토미 웅게러가 “전쟁과 폭력에 그 어떤 그림책 작가보다도 더 강력하게 정면 대응”했다고 전하고, 이번 그림책 역시 세상에 대한 그의 간절한 외침으로 읽히기도 한다. 하지만 내게는 무엇보다 우리의 내면에 대한 은유로 읽혔다.
책은 많은 상징으로 우리 마음에 일어나는 일들을 역동적으로 보여준다. 모든 것이 사라지고, 사람들마저 모두 달로 가버려 텅 비어버린 공간에 주인공 바스코만이 홀로 남았다. 이제 바스코는 무엇을 해야 하고 어디로 가야 할까. 이렇게 막막해졌을 때 바스코를 인도하는 존재가 있는데, 바로 그림자다. 그림자는 계속해서 바스코를 안내하면서 무너진 건물에서 벗어나게 하고, 쓰나미를 피하게도 한다. 나아가 그림자는 새로운 어린 생명체 ‘포코’와의 만남에까지 이끈다.
‘딱 때맞춰!’ 가야 할 길을 알려주고 만나야 할 이를 소개하는 그림자는 무엇일까. 함께 책을 읽은 아이는 이를 ‘수호자’로 받아들였고,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내게는 그림자가 외부의 어떤 존재나 계시라기보다는 ‘내면의 진심 어린 목소리’로 보였다. 길을 잃고, 땅이 흔들리고, 세상이 무너지는 일들은 세상의 종말이 아니더라도 우리 마음에서 때때로 일어난다. 통제 불 가능한 거대한 일들로 그렇게 되기도 하지만, 어떤 때에는 스스로도 이해 못할 만큼 작은 일로도 우리 마음은 이렇게 된다. 그럴 때 ‘딱 때맞춰’ 필요한 것은 그림자와의 만남이다. 다양한 상징으로 사용되는 ‘그림자’가 이번에는 내 안의 신뢰할 수 있는 목소리로 다가왔다. 삶의 고비에서 느끼는 나의 다양한 감정과 진짜 욕구라고도 할 수 있다. 바스코에게 바스코의 길을 안내하는 그림자가 있듯이, 우리에게는 우리 각자의 길을 안내하는 그림자가 있다. 그 그림자에 기대 마음의 이야기를 경청해본다. 내가 느끼는 다양한 감정들은 어떤 것들이고, 이 경험은 내게 어떤 의미가 있으며, 또 내가 진심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깊게 물어보는 거다. 그러면 나의 마음은 다정한 손짓으로 방향을 알려줄 거다. 바스코의 그림자가 그러했듯이 말이다.
그림자의 든든한 안내로 안전해진 바스코는 이제 그림자와 항상 함께하지는 않는다. 우리가 현실을 살아갈 때 모든 순간 마음 깊은 곳에 귀를 기울이지는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렇게 바스코와 포코는 평화를 만나 자신의 현실을 살아간다. 특히 포코는 학자도 되고 피아니스트도 되지만 자라지 않는 점이 특별하다. 왜 자라지 않을까. 안전해졌으니 포코가 자라길 바라기도 했지만, 이내 자라지 않는 포코의 힘을 떠올렸다. 어른이 되어야만 힘을 갖는 게 아니다. 아니, 어른이 되지 않고 아이로 계속 존재하는 내면의 한 부분이 있어야 어쩌면 더 생생하고 에너지 넘치게 나아갈 수 있다. 아이가 아니라면 결코 감당할 수 없는 에너지와 욕망과 바람이 우리 안 어느 한켠에 있고, 바스코는 포코를 통해 그 힘찬 에너지를 마주했을 것이다.
내 안의 다양한 이야기들. 마음이 무너질 때 더 만나야 하고, 만날 수 있는 다양한 목소리들을 들려주는 그림책이었다. 토미 웅게러의 마지막 선물같은 책이다.
글ㆍ신동주 / 숭례문학당 강사. 시선심리상담센터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