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과 삶이 빛나는 것임을 발견한 시간
한강의 책은 어둡고 무거워 저 혼자 읽기 힘들었을 겁니다. 함께 읽으면 힘이 될 것 같아서 시작했는데 잘한 것 같아요. 4강 동안 잘 지나오고 결석하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역시 혼자보다는 함께 읽고 나누는 시간이 힘이 되었고 많은 인사이트도 얻어가는 것 같아 보람 있었습니다. 문단마다 나누는 생각과 단상이 달라서 재미있었고 어떤 부분에서는 서로 공감되는 것도 좋았습니다. 시를 좋아하지만 한강의 시적 문체는 안개에 쌓인 듯 모호해서 해독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사실 지금도 이해가 안되는 지점이 많고요, 그렇지만 문학작품이라는 것은 독자의 몫이 반이기 때문에 다 이해한다는 것도 모순이라는 생각입니다. 사람끼리도 다 이해하고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이 있으니까요. 진행해주신 수민 샘이 너무나 애쓰셔서 감사한 마음입니다.~^^
― 이*정님
‘작가처럼 쓰기’ 모임에서 우리나라 첫 노벨수상자인 한강 작가님의 작품들을 접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게다가 작가님의 작품을 흉내 내어 써 보는 영광까지 누릴 수 있었던 건 덤이었다고 할까요? 시간을 내어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꼼꼼하게 읽지 못해서 아쉽지만 앞으로도 이번 모임을 기억하며 한강 작가님의 보석 같은 작품들을 두고두고 조금씩 꺼내 읽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한강 작가님의 책은 왠지 아껴 읽어야 할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언제나 좋은 구절을 발췌해서 훌륭한 문장 틀을 제시해 주시는 오수민 선생님께 마음을 담아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모임을 늘 잘 이끌어 주셔서 오수민 선생님 덕분에 뭐라도 쓰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이끌려서라도 한 문장 한 문장 쓰다보면, 자발적으로 글을 쓰는 날이 오겠지요? 그리고 그렇게 쓴 글들이 쌓이고 쌓여, 언젠가는 다른 사람의 글을 모방하는 수준을 넘어 나만의 글을 쓸 수 있는 날이 오길 기대합니다.
마지막으로 모임에 함께 참여해 주신 여러 글벗들에게도 진심을 담아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작가처럼 쓰기’의 진짜 주인공은 매 회 선정된 작가가 아니라, 우리 문우(文友)들이란 걸 꼭 말하고 싶습니다. 촉박한 글 마감 시간을 앞두고 노트북 타자기를 두드리는 박절함을 나눌 수 있는 관계는 어느 누구보다도 특별한 사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네요. 문우들이 글이라는 우물에서 절박한 심정으로 퍼다 올린 문장들은 저의 목을 적시어 어느새 쓰기를 향한 목마름을 풀어줍니다. 그리고 그러한
해갈(解渴)에서 정신이 맑아지고, 마음이 시원해지는 신비한 힘을 경험하곤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모임은 저에게 일종의 목욕재계(沐浴齋戒)와 비슷하다고나 할까요? 마음을 가다듬으며 치성을 드리는 신성한 의식을 앞으로도 함께 할 수 있기를 빌고 또 빕니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정*선님
드디어 한강을 건넜다. 작가도 아닌데 ‘작가처럼 글쓰기’를 함께 하고 싶었던 이유는 ‘한강’ 작품을 함께 읽고 싶었다. 2005년 이상문학상을 받은 <몽고반점>을 읽고 <희랍어 시간>에 멈춰 더 이상 나가지 못하고 ‘한강’ 주변을 서성거리며 떠나지도 않더니, 이제 작품을 혼자 읽기 어려웠던 것이, 이렇게 아픈 것이 당연하다는 걸 알았다. 1985년 수유성당에서 5.18 희생자들 추모사진전을 보면서, 세미나실에서 떠들던 1980년 광주의 실상을 보았고, 제주 출신 경미를 통해 동네 친척들 제삿날이 같다는 얘기를 기억한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폭력, 무자비함, 고통, 슬픔이라는 단어 없이 아름답게 처절하게 펼쳐놓은 단어와 문장들, 인간에 대해 끈질긴 질문과 답을 형상화된 상징과 소설의 서사로 이끌어 준 ‘한강’작가를 어떻게 쉽게 읽을 수 있었겠나.
이쪽에서 바라본 강 건너는 얼마나 아득했던가 ‘작가처럼 글쓰기’시간에 도반들이 아니었다면, 오수민 선생님의 따뜻하고 통찰력있는 문장구성과 아낌없는 응원과 지지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한강’을 건널 수 있었겠는가. 이제 한강은 언제든 어디서든 건널 수 있고 바라볼 수도 있는 ‘한강’이 되었다. 한 작가 책을 여럿이 오래 읽은 경험이 내 안의 숨겨진 힘, 풀어놓고 싶은 이야기를 통해 나에 대한 신뢰를 확인해준 시간이었다. 오수민 선생님과 함께한 도반들과 맺은 인연 귀하고 감사합니다.
―박*숙님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 이후 작가의 작품을 조금 더 접하게 되어 무척 기쁩니다. 놓쳐버린 작가의 세계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어 설레었습니다. 몇 년 전 <흰>을 읽고 몇 해 지나 <소년이 온다>를 읽으며 눈물을 삼켰더랬습니다. <작별하지 않는다>와 <희랍어 시간>을 더하고 몇 편의 단편으로 작가를 만날 수 있어 감사합니다. 한달음에 달려가고픈, 더 많은 작품을 읽고 흠뻑 젖어 지내고픈 욕심을 실행에 옮기지 못한 아쉬움을 안은 채로 4강에 이르고 말았네요. 언제나처럼 또 다음을 기약해봅니다. 덕분에 이렇게라도 단락 단위로라도 다시 또 읽으며 2월을 맞습니다. 마저 읽지 못하는 중에도 겪은 적 없는 세월을 마주하고 무기력한 이 시간을 건널 수 있는 힘이 되어줍니다.
―황*화님
세상에서 가장 흔하고 성의 없는 핑계가 '바쁘다'인 걸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요 몇 달이 제 삶에서 가장 정신없는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일이 많아서, 가족의 일이 시급해서, 결국 돌보지 못했던 것은 제 스스로였더군요. 저는 NBTI 중 S 성향이고, 늘 상상하고 눈을 감으면 새로운 사건이 뇌에서 생성되는 N님들과 달리 혼자서는 사색조차 할 줄 모르는 메마른 창의력의 소유자입니다. 제 성향과 가소로운 바쁨 정도를 두고 보아도, 요 몇 달간 제 스스로와 대화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은 '글쓰기' 시간이었습니다. 수류탄처럼 날아오는 작문틀과 숨을 몇 번 내쉬는 동안 터져버리는 마감 기한이지만, 그렇게 허덕이는 '쓰는 시간'이 좋았습니다. 쓸 때야말로 온전히 혼자 앉아 지난 과거를 상상하고, 제 이야기를 내어놓을 수 있습니다.
불성실한 참여자가 기어코 한 번 나타났을 때 보여주신 선생님들의 환대와, 지칠 줄 모르는 수민 선생님의 응원은 제가 갖지 못한 별빛 같은 선함이었습니다. 그 별빛을 먹고 지난 몇 달을 위로했습니다. 드물게 썼지만, 내내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또 뵙고 싶습니다.
―조*현님
그렇다. <작가처럼 쓰기>는 마감의 압박 직전에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내가 생각한 글감이 꾸역꾸역 작가의 글을 덮어씌운다. 어떤 문장도 좀처럼 쉽지가 않다. 주옥같은 문장들은 차례를 기다리듯 모니터 커서 뒤에서 반짝인다. 어쨌든 이걸 완성하고 나면. 나의 모든 경험과 감각, 간절한 생각과 다짐이 작가의 글에 고스란히, 동시에 대작가의 글처럼 거대한 나의 글이 빛나고 있다.
한강 작가의 문장으로 작가처럼 후기를 써봤습니다. 내 글의 수준이 매우 부끄러워질 때, 한계가 보인다고 느낄 때 쯤 <작가처럼 쓰기> 수업만큼 좋은 훈련은 없었습니다. 수민샘의 친절한 글쓰기 압박에 겨우 써내는 일이 있었을지언정 수업을 마치고 나면 그저 감사한 마음만 남는다. 감사합니다.
―김*윤님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 이후 뿌듯한 마음으로 책을 읽으며 글쓰기까지 할 수 있으니 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한강 작가의 문체는 묘하게도 냄새와 촉감이 온몸으로 느껴지는 숨결 같다. 화자와 내가 가깝게 느껴지고 그 고통의 감정이 손끝으로 전해져서 책장이 넘어가지 않을 때도 있다. 그 글 속에서 주옥같은 문장을 수민샘이 뽑아주고 화답하듯 글을 쓰고 있으니 마치 작가가 된듯한 느낌이 들었다. 선생님들과 함께 줌으로 낭독하고, 글에 대해 이야기 하는 시간은 좋은 문장을 보는 눈을 트이게 했다. 한 사람의 글 속에 수많은 생각과 상념이 녹아들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귀한 시간이다. 문장이 빛나고, 삶이 빛나는 것임을 발견하는 시간이었다.
―김*아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