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써 봐야 알 수 있는 백일 글쓰기의 진가
도대체 곰은 왜 사람이 되고 싶었을까? 왜 쑥과 마늘로 끼니를 연명하며 까만 어둠 속에서 백일이나 보낸 걸까? 질문이 많은 내게 곰사람 프로젝트 백일 글쓰기를 대하는 첫 번째 질문은 엉뚱하지만 곰의 마음을 향한 궁금증이었다. 곰에게 직접 물어볼 수도 없고, 인터넷으로 찾아봐도 성에 차는 답이 없다. 그렇다면, 내가 곰이 되어 보는 수밖에!
하루도 빠짐없이 글을 쓴다는 건 불가능하게 여겨졌다. 집안일, 직장 생활, 저녁 약속 등 이미 하루는 매일 해야 하는 일들로 가득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백일의 여정은 무리라 느껴져 등록을 망설였다. 하지만 계속 남는 아쉬움과 궁금증을 뒤로할 수 없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난 하루도 빠짐없이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으로 다시 태어났다. 처음에는 오롯이 매일 쓰겠다는 목표 하나로 글을 썼고, 중반으로 넘어가면서 글벗들의 이야기에 자연스레 귀가 열렸고, 후반이 되면서는 함께 글을 쓰는 사람들이 곁에 있다는 사실 하나에 힘을 얻어 매일 글을 써 내려갔다.
확실히 난 백일 전보다 더 성실해졌고, 틈나는 시간을 쪼개 쓸 수 있는 요령도 생겼으며, 어떤 일을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힘도 얻었다. 하지만 이런 것들보다 더 소중한 건 '함께'의 힘을 오롯이 느낄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흩뿌려진 씨앗처럼 결국은 혼자가 되어야만 하는 현실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어 삶을 이야기하고, 일상을 살아갈 힘을 얻기도 하고, 글벗들의 이야기를 통해 세상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느낄 수 있을 때 그제야 우리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곰이 사람이 되고 싶었던 이유를 이제는 알 것만 같다. 우리가 함께라는 사실을 알고 서로를 곁에 두고 서로의 이야기에 귀기울일 수 있을 때 세상은 다른 빛으로 다가온다. 곰사람 프로젝트, 백일 글쓰기를 통해 사람이 가진 아름다운 마음결을 가깝게 바라보고 느낄 수 있었다. 홀로 앉아 글 쓰는 시간, 결코 혼자가 아닌 시간, 그 시간을 통해 자신은 성장하고, 타인은 살아갈 힘을 얻는다. 곰은 더 이상 혼자가 아니고 싶었던 것 같다. 어둠 속에서 백일을 보내며 함께 더불어 살 수 있는 마음을 얻어 더불어 사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 같다. 직접 써 봐야 알 수 있는 백일 글쓰기의 진가, 지금 시작하지 않을 이유 그런 건 없다. 함께하는 시간, 지금도 그립고 여전히 아름답다.
— 김라희((https://brunch.co.kr/@laheemiokkim)
올해 제일 잘한 일! 백쓰를 선택한 일!
나는 책을 쓰고 싶었다. 어린시절에 나이 50 정도에는 내 이름으로 된 책 하나 내겠다는 꿈이 있었다. 어느덧 그 나이에 가까워졌는데, 나는 책과 가까운 삶을 살고는 있지만 글쓰기는 매일같이 하지는 못했다. 블로그에도 가끔 쓰고, 일기장에도 가끔 썼다. 한동안 모닝페이지에 빠져 아침에 일어나서 3페이지 되는 글을 쓰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은 오래가지 못했다. 혼자 글쓰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나는 매년 초에는 실행해보고 매년 안 되었다. 일이 잘 안 되어 힘들 때에도 어떻게 잘 풀어내지 못해서 가끔씩 글을 쓰면 괜찮아지는 것을 느꼈다. 그러다보니 내 일기장과 블로그는 너무 화가났을 때, 인생이 너무 힘들 때, 정말 마음이 안 좋을 때 이야기로 가득했다. 나에게도 좋은 날이 분명 있었을 텐데, 그런 날을 남겨두면 좋았을텐데 하는 그 아쉬움이 나이가 들수록 더 느껴졌다.
올해는 더 잘 살아보고 싶었다. 내 직업에서 잘 해내고 싶은 욕심도 생겼다. 딸 아이도 대학생이 되어 마음의 부담도 좀 줄어들었다. 아들은 고2가 되어 공부하느라 바쁘고, 남편도 새로운 취미생활을 시작했다. 나는 좀 더 좋은 방향으로 살아보고 싶었다. 글쓰기를 통해 내가 변화할 수 있을 거라 믿었는데, 매일 글쓰기 연습이 습관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그런데 내가 글을 쓰면 아주 개인적인 일도 쓰게 될텐데, 글이란 그런 건데 다른 사람들도 다 볼텐데 공개적으로 글을 써도 될까 하는 망설임이 있었다. 100일 글쓰기는 정해진 사람들에게만 공개되는 글이었다. 블로그 글보다는 조금 닫힌 분위기여서 그래서 선택했다. 어차피 글은 내가 보기 위해서만 쓰는 건 아니니까. 다른 사람들과 같이 글쓰기 하는 것도 재미가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시작한 100일 글쓰기. 매일같이 리더님이 카페에 리드문을 올려주시면 발췌한 글을 보고 글감이 생각나기도 했고, 내가 하루종일 있었던 일 중에 특히 더 쓰고 싶은 것으로 쓰기도 했다. 쓰다 보니 내 이야기가 많이 흘러나와서 초반에 글을 쓰며 눈물이 났다. 아들이 나를 보며 "엄마 울었어?" 하던 때가 몇 번 있었다. 딸의 독립으로 인해 내 마음이 좀 허전해질 때도 있었고, 직장생활에서 겪은 여러가지 사건들을 다른 분들과 나눌 수 있어서 재미도 있었다. 언제나 격려해주시고 따뜻한 댓글을 남겨주시는 리더님과 공감해주시고 좋은 아이디어도 알려주신 글벗님들 덕분에 날마다 힘이 났다.
너무 힘들어서 자리에 눕고 싶다가도 밤 9시 100일 글쓰기 알람만 울리면 노트북 앞에 앉아서 떠오르지 않는 글감을 생각해내는 것이 힘들 때도 있었다. 그러나 바쁘고 고단해도 이렇게 자리에 앉아서 쓴다는 것 자체가 기특했고, 누울 때마다 "오늘도 수고했어. 이만하면 잘 살았어."하고 스스로 위로했다.
100일 글쓰기 덕분에 나는 내가 변했다는 것을 느꼈다. 꾸준함이란 같이 했을 때 끝까지 할 수 있을것이란 확신도 생겼다. 다른 분들의 글을 보면서 세상을 이해하는 폭도 조금은 넓어지게 되었다. 누군가를 잡고 함께 할 때 기쁨을 누릴 수 있어서 좋았던 시간이었고, 함께 했던 2024년 1월 1일부터 4월 11일까지의 시간은 앞으로 나의 삶을 변화시켰다는 것을 분명히 말씀드리고 싶다. 글쓰기에 고민하는 모든 분들께 인생에 반드시 한번은 100일 글쓰기에 도전해 보시기를 권한다. 일단 써봤으니 조금 더 욕심내서 제대로 써보려고 노력하고 싶다.
그동안 함께해주신 48기 여러분. 감사했습니다. 우리 또 만나요!
— 노OO
글쓰기, 요녀석, 마법이다!
겨울의 끝부터 봄의 시작까지 한 계절이 갔다. 백일이 지났다. 스물 한 명이 같이 하지만, 젼혀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눈에 보이는 건,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오로지 그들과 내가 한 자 한 자 적어내고 있는 글자들 뿐이다. 그 글자들 속에 스물 한 명의 사람들이 들어 있었다.
나는 전형적인 내향성인 데다가 사회생활을 하는 것도 아니어서 관계의 폭이 좁고 새로운 관계를 맺기에는 겁이 많았다. 글이란 어쩔 수 없이 자신을 드러내고, 자신을 담게 된다. 그래서 글을 나눈다는 것은 서로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숭례문학당은 믿을 수 있었다. 몇 년에 걸쳐 숭례문학당에서 글쓰기 모임을 해보았지만, 사람 관계 때문에 힘든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리더 맹진연님 말대로 글을 쓰는 사람은 좋은 삶을 살기 때문인 것 같다.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끼리 모인 공간, 그래서 더 좋았다. 이제까지의 글쓰기 모임이 다 좋았지만, 백일 쓰기는 처음이기도 했고, 좀 특별했다. 매일 쓴다는 것, 나름 성실하지만, 일퍼센트의 끈기가 부족한 나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매번 좋은 모습으로 좋은 퀄리티의 글만 보이는 것은 불가능했다. 때론 완성도도 떨어지고, 민낯이 보여서 부끄러운 글도 부지기수였다. 하지만, 그래서 깨닫게 되었다. 왜 백일 쓰기를 하는지, 왜 매일 쓰는 것이 중요한지를 말이다.
미처 끝내지도 못한 글에서, 구성도 문장도 엉망인 글 속에서 외출하려고 차려 입은 내가 아니라 구멍이 뚫리고 헤진 런닝구를 입고 편안해 하는 내가 보였다. '무엇을 위해, 무엇이 되기 위해 쓰는가'를 놓아 버리고 쓴다는 행위 그 자체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내 글을 쓰다 심심해지면 다른 글벗님들 글을 구경하러 갔다. 그 글들을 읽다 보면 내가 할 이야기가 떠오르고, 다시 내 글을 썼다. 내가 쓴 글에 대한 글벗님들의 반응이 궁금하고 신경이 쓰이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신기한 건 어느새 누가 보든 안 보든 내가 계속 글을 쓰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한 공간에 같이 있는 것만으로 각자의 이야기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생각과 마음이 넘쳐나서 후기를 글로 쓰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뭐라고, 무얼 써야 할지 몰랐다. 그런데 자리를 잡고 앉으니 또 이렇게 쓰고 있다. 내가 생각했던 것과 내가 생각하지도 못한 것이 글이 되어 나온 다. 글쓰기, 요녀석, 마법이다.
— 한OO
두 번째 백일 글쓰기가 끝났다. 나는 왜 두 번이나 백일 글쓰기에 참여했을까?
첫째, 위로이다. 백쓰는 안전한 공간에서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부터 다같이 생각해봄직한 공공의 이야기까지 무엇이든 쓸 수 있다. 처음에는 이런 것도 써도 돼? 싶은 것도 백일 동안 쉬지 않고 매일 쓰려면 어떤 글감이든 끌어와야 한다. 이렇게 글감을 탐색하고 그것을 공개 글쓰기로 이어오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스스로 위로를 받는다. 나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응, 나 힘들었겠네. 이상한 게 아냐' 하고 토닥토닥 한다. 또 혼자서 벽을 보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내 글을 읽어주고 따뜻한 댓글과 하트를 표시하는 글벗들에게도 힘을 얻는다. 글벗들 또한 비슷한 어려움과 즐거움을 느끼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읽으며 '사람 사는 것, 크게 다르지 않음'을 다시 한 번 기억한다.
둘째, 습관이다. 글을 쓰면서 매일 내 머리속을 청소하는 기분이 들었다. 백일 글쓰기가 끝나고 며칠 동안 글을 안 쓰고 있는 내가 어색하다. 백쓰를 하고 있었다면 이걸 글로 썼을텐데, 그럼 정리가 될텐데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일기장이나 개인 블로그에 몇 번 글을 남겨보지만 불특정 다수가 본다는 두려움으로 자기검열을 통과할 수 있는 글감을 찾지 못한다. 백쓰에서 키운 힘을 밖에서도 활용할 방법을 찾아야 할 텐데 아직 안전한 울타리 안에 있고 싶은 내 마음을 또 발견한다.
셋째, '나'에 대해 더 잘 알게 되었다. 내가 진정 원하는 것,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글을 쓰면 조금씩 알아가는 것 같다. 그것은 가깝게는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나의 선호를 표현할 수 있고, 멀게는 내 인생의 다음 단계를 준비할 때도 활용할 것이다.
행복한 백쓰, 완벽하지 않아도 마무리하기
백쓰를 한 지 100일차다. 중간에 몸이 안 좋아 며칠 쉬었지만 매일같이 일기를 쓴 날이다. 워낙 수다를 좋아하기에 쓰는 것은 어렵지 않았고 우리끼리 글벗님들만 공유할 수 있기에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도 쓸 수 있었다. 대단한 에세이 한 편은 쓰지 못했지만 생각을 정리하고 또 정리할 수 있었다.
글벗님들의 진심어린 위로의 댓글도 힘이 되었다. 육아와 임신으로 어려운 시기에 자꾸 불평의 글을 쓰니 죄송한 마음이 많았지만 그래도 내 마음이기에 쓸 수밖에 없었는데, 그러한 내 마음을 아셨는지 토닥토닥을 무한정 해주신 덕분에 그날 하루는 따뜻한 마음으로 보낼 수 있었다.
돌아보면 글벗님들과 더 많은 소통을 할 걸, 혹은 더 열심히 쓸 걸 하는 아쉬움도 있지만 이렇게 또 마무리하는 법도 배워본다. 완벽하지 않아도 마무리를 하기, 그렇게 행복한 백쓰를 마무리한다.
곰의 인생
동굴 속에서 백일을 견딘 곰이 마침내 사람이 되었다는 백일 차다. 애초에 곰은 왜 사람이 되고 싶었을까. 더 나은 삶을 살고 싶어서? 곰으로 사는 것이 너무 고달파서? 무료해서? 인간이 되면 무엇이 달라질거라 생각했을까. 곰으로 살았던 세월의 무엇이 그를 사람이 되고자 갈망하게 만들었을까. 사람이 되면 무엇을 하고 싶었기에, 무엇을 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기에 그 지난한 과정에 도전했을까.
백일차에 곰의 인생 파트2가 시작되었다. 사람이 되어 결혼하고 어머니가 되었다. 환웅과 결혼하고 단군을 낳은 것으로 곰의 이야기는 끝난다. 환웅과는 사랑해서 단군을 낳은 것일까. 평민과 하늘의 왕자, 신분의 차이를 극복한 최초의 신데렐라는 왕자님과 계속 행복하게 살았을까. 단군을 기를 때 공동육아를 했을까. 그것이 곰이 상상하고 바라던 인간의 삶이었을까. 아니면 후회했을까. 중년이 되고 노년이 된 곰의 삶은 어떠했을까.
도서 곰사람 프로젝트에서 말한다. 백일 동안 지속되는 끈기와 노력이 곰을 사람으로 만들었듯 우리를 새롭게 태어나게 할 것이라고. 나는 이제 백일 이후 인간이 된, 이후의 곰의 삶에 대해 생각해본다. 그리고 백일 이후 나의 글쓰기 파트2 에 대해 생각한다. 사람이 된 곰의 삶은 생각한 것과 그리 다르지 않았을 수도 있다. 어차피 곰이었어도 짝을 짓고 새끼를 낳아 길렀을 것이고 중년을 거쳐 노년이 되어 죽음에 이르렀을 것이니. 중요한 것은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백일 동안 자신의 꿈과 욕망을 위해 인내하고 정진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마침내 얻은 가장 큰 기쁨은 내가 해냈다는, 소박하지만 강렬한 성취감과 자신감. 사람이건 곰이건 표면적인 삶의 여정은 그리 다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삶을 대하는 마음은 달라졌을 것이다. 상상은 욕망으로, 욕망은 도전으로, 그 도전은 성취를 이루었고 역사가 시작되었다. 역사란 한 민족의 기원이 되는 거창함일 수도 있고 오늘 내 마음의 인 작은 파동일 수도 있다.
힘든 육아, 불협화음의 인간사, 나이들어감... 삶의 여정이자 일상의 파노라마에 시를 더하고 노래를 조리며 충만하게 살아갈 힘을 만드는 것이 이 작은 파동이다. 그것이다.
꾸준히 할 줄 아는 것밖에 재능이 없어서
무라카미 하루키는 에세이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서 "선택사항으로서의 고통"을 아주 근사하게 풀어 놓았다. 저자 서문에서 그는 러너들이 풀코스 마라톤을 종주하며 외우는 만트라(주문) 중 하나를 소개한다. “Pain is inevitable, Suffering is optional" — “아픔은 피할 수 없지만, 고통은 선택하기에 달렸다"로 번역된다. 이 말도 멋지지만, 나에게는 100일 글쓰기가 '선택'된 '자각'이라고 변주하고 싶다.
100일 동안 꾸준히 뭔가를 한다는 건, 내 몸 생체주기 시간에 맞추어 체화한다는 뜻이다. 피부세포의 재생주기는 4~6주이다. 그렇다면 내 몸의 세포들은 내가 이 작업을 시작했을 때부터 3세대 째를 맞는다. 할머니가 손주 보듯 나는 백쓰가 익숙하게 좋아졌다. 때로는 몇 줄만 남기고 가 는 내가 쑥스럽기도 했고, 가끔은 멋진 모습으로 등장해서 뿌듯하기도 했다. 누군가의 글이 달린 걸 볼 때에는 괜히 옆에 있지도 않는 그에게 말로 답변하는 나를 발견하기 도 했다.
즉 하루종일 생각하지는 않아도, 내가 선택해서 고통스러운 시간으로 나를 몰아가고 그러면서 글을 탄생시켰던 거다. 글 쓰는 나는 달리고, 일하고, 책 읽는 사람과 사뭇 달랐다. 또 이 과정을 통해서만 쓰고 있지만 각종 마감을 모두 시간 내 완수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나는 그렇게 점점 쓰는 인간으로 자각되고 있었다.
일기를 쓰지 않고 하루의 간단한 일상들을 다이어리에 기록만 하고 있었는데, 백일 글쓰기는 그중 내가 흘려보내는 감정들을 정리하고 싶을 때 동네 어귀에 있는 대나무숲 같은 역할을 해주었다. 남편 이야기, 아이들 이야기, 주변에서 있었던 생각들을 언어로 바꾸는 작업은 또 다른 나를 직면하는 시간이 되었다.
가끔 타인의 글이 확 늘어 있는 걸 보면, 또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경쟁의 도구로 삼는 과오를 저지르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그들의 실력 향상은 부러웠었다. 그래서 내가 더 나은 사람으로 살도록 노력하게도 했다. 가끔 일빠로 글을 올리고 싶은 욕망에 시달리다가도 11시가 되기 전에는 자리도 앉기 어려운 일들이 그렇게 많았다는 건 사랑스런 핑계로 담아두기도 하자.
리더의 유혹은 또 얼마나 적극적인가? 리더가 글쟁이인 건지, 좋은 책들만 골라 보는 건지 매일 글감을 선별해 유사한 글이 있을 법한 책에서 좋은 예를 미리 척, 하고 보고 던져주었다. 훌륭한 낚기 실력을 보여준 리더는 참가자들의 글을 허투로 보아 넘기지 않는 꾸준함도 가지고 있었다. 나랑 닮은 사람인가? 싶을 정도로 유사해 편안할 때가 많았다.
사람 사는데 여러 재능이 있으면 좋겠다만, 내가 가진 건 이것밖에 없다. 꾸준히 하는 것. 그래서 빠지지 않는 나에 대한 자긍심을 키워 가는 것. 하루에 콩 한 알씩 심어 이제 100개의 콩이 생겼다. 나는 재크의 콩나무처럼 저 하늘까지 뻗어가는 거대한 식물의 싹을 이제 틔웠다. 그래 그걸 타고 거인을 찾아 모험할 때다. 이제 나는 꾸준히 글 쓰는 사람이 되었다.
주파수를 맞추며
라디오를 끼고 살던 시절이 있었어요. 정해진 시간에 주파수를 맞추고 귀를 기울였지요. 시그널뮤직이 깔리고 익숙한 디제이의 목소리가 전파를 타고 전해질 때마다 시공을 초월하여 제3의 시공간이 마법처럼 펼쳐졌습니다. 그 시간이 길면 길수록 애틋함은 짙어지고 긴 시간 쌓인 추억은 쉬이 지워지지가 않지요.
시절도 변하고 세상은 바삐도 움직입니다. 나도 따라 빠릿빠릿하게 움직여야만 할 것 같은 조바심까지 생깁니다. 딱히 급할 것 하나 없을 때에도 여기저기서 정신을 뺏어갑니다. 여차하면 뭐하고 살았나 머리가 아득해지고, 고개 몇 번 돌리면 순식간에 주눅이 들어 쪼그라지기도 십상입니다. 사는 일이 늘 고만고만하지만, 유달리 힘에 부칠 때 말보다 글로 속을 달래게 됩니다. 혼자 쓰다 보면 괜찮다가도 헛헛하기 일쑤지만 함께 쓰면 갈피를 잡게 되고 한결 기운이 납니다.
처음 쓰기 시작할 때는 그저 혼자 쓰는 기분입니다. 별반 다를 게 없구나 싶지만 속단하긴 이릅니다. 날이 갈수록 곁에서 같이 쓰는 이들이 한 발짝 두 발짝 다가옵니다. 용기 내어 나도 다가섭니다. 어느새 우리는 혼자 쓰지만 같이 써나가고 있었지요. 함께 쓰는 시간은 쓰는 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날마다 쓰기가 끝나면 1막이 끝나고 2막이 오르는 것처럼 다음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바로 읽는 시간이었습니다. 눈과 귀를 열고 서로에게 주파수를 맞추며 글을 읽을 뿐더러 글 너머의 마음까지 나누게 되었으니까요. 쓰는 일이 쓰기로 끝나지 않고, 나를 읽고 타인을 읽기를 배우는 일임을 백일 밤 백일 낮을 지나며 깨달았습니다. 진심 가득한 리더를 중심으로 스무 명 남짓한 글벗들이 함께 일궈낸 백일간의 글쓰기 시간은 어디에서도 배울 수 없는 더없이 귀하고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모두 고마웠습니다.
나의 백쓰 BEST5
지금까지 98개의 글을 올렸다. 그동안 올린 글들을 훑어본다.
나의 백쓰 BEST5를 뽑아보았다.
1. 1월 9일 "약속" - 10여 년 전 호르모즈 해협의 한 섬에 있는 망그로브숲에서의 추억을 떠올리며 성서의 약속을 건져 올린 글.
2. 1월 22일 "살기 힘들구나" - 여행 간 부산의 마트에서 사과를 사다가 사과값에 깜짝 놀랐던 일을 시작으로 정치권에 대한 불신을 기록한 글. 오늘 총선을 통해 나타난 민심을 받아들여 사과값, 대파값으로 대변되는 국민들의 장바구니 분노를 기억하고 대치가 아닌 협치를 통해 민생현안을 해결해주시길 간곡히 요청한다.
3. 1월 28일 최고의 실패 - 주제와 글의 구성이 괜찮았던 글이라 생각된다. 이 주제는 꿈 이야기와 더불어 내 인생을 이야기하는 대표적인 주제가 될 것이다.
4. 2월 14일 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 - 은유 작가의 도발적인 문장과 제목을 발췌한 단상. 은유 작가 덕분에 내 글도 트랜디해진 느낌이 좋다.
5. 100번째 남방 노랑나비
백쓰 초반 미션으로 주어진 노랑나비 사진 한 장을 보고 작성한 글인데, 오랫동안 마음에 머문 말이 있었어요. “노랑 날개가 버겁구나, 쉬었다 갈 때 날개는 지고 가거라.” 글을 쓰고서야 나의 일부가 버겁다는 걸 알았지요. 떼고 싶었구나 알아차렸지요.
백쓰에서 내 이야기를 한참 쏟아내고 나니, 날개의 의미가 깨달아졌습니다. 이제 날개를 펼 때가 됐구나 싶었지요. 이 글을 다듬고 수정하여 다시 쓰고 싶었는데, 100번째 글로 남기게 됩니다. 이제 날아오르렵니다. 도란도란 벗님들 덕분에 잘 쉬었다 갑니다. 모두 행복하세요. 언젠가 또 만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