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는 자기고백이자 글을 쓰게 하는 힘이다. 모든 작가들의 시작이자 꼭 한번쯤을 거쳐야 하는 에세이쓰기, 감성에세이는 어쩌면 쓰기의 시작이 두려운 이들에게 쓰기의 문을 열어주는 , 시작점이 아닐까 한다.
감성에세이를 오픈하고 나서 여러 문의메일을 정말 많이 받았다.
‘하루에 써야 하는 분량이 얼마인가요?’
‘매일 써야 하나요?’
‘주제나 글감은 주어지는 건가요?’
‘자유롭게 써도 되나요?’
질문 메일에 일일이 답변을 하면서 그들이 얼마나 쓰기에 두려움이 많은지, 고민이 많은지 알게 되었다.
현재 에세이방은 다양한 글쓰기 방법들을 시도하고 있다. 자신의 이야기를 마음대로 쓰기부터 주제가 있는 글쓰기, 목록을 만들어 10꼭지 글 완성하기, 월 2회 온라인 합평, 한가지 주제로 써보기, 글쓰기 관련 도서 읽고 온라인 토론 등 진행코치가 직접 경험하고 몸으로 부딪힌 방법들을 하나씩 미션으로 해나가고 있다.
이 후기 모음 자리를 통해 그 어디서도 볼 수 없었던 쓰기 미션에 깜짝 깜짝 놀라면서도 하나씩 즐겁게 수행해주시는 에세이방님들께 무한 감사를 드립니다!!
<감성에세이쓰기 참가자 후기 모음>
혼자서만 쓰던 글을 이렇게 코칭도 받고 너무너무 신세계입니다. 이런 수업을 이제야 알다니 감사합니다.
- 김**님
함께 한 한달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멀리 가고 싶어 함께 가는 길 혼자가 아니여서 걸어 온 것 같습니다. 다음달에도 우리 손잡고~~ 감사합니다.
- 신**님
'존재의 세가지 거짓말'의 작가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자서전 '문맹'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여전히 지금도, 매일 아침, 집이 비고, 모든 이웃들이 일하러 나가면 나는 다른 것을, 그러니까 청소를 하거나 어제 저녁 식사의 설거지를 하거나, 장을 보거나, 빨래를 하고 세탁물을 다리거나, 잼이나 케이크를 만드는 대신 식탁에 앉아 몇 시간 동안 신문을 읽는 것에 가책을 조금 느낀다..... 그리고 무엇보다, 무엇보다 쓰는 대신에."
나는 이 문장이 내 마음을 알아주는 친구인 듯 반가웠다. 아고타 같은 대가들도 쓰기보다 읽기를 즐기는 구나! 그리고 쓰는 대신 읽는 것에 가책을 느끼는 구나! 나처럼.
사람은 세가지 노동의 발란스가 맞을 때 행복감을 느낀다고 한다.
밥벌이를 위한 임금노동, 봉사활동이나 글쓰기, 그림그리기 같은 자율노동, 밥짓기, 청소, 빨래 같은 자활노동. 나는 임금노동을 이유로 평소에 자율노동과 자활노동을 뒤로 미루거나 방치하다가 주말에 몰아서 하곤한다. 양육의 책임에서 이제 거의 자유로운 나는 자활노동은 가능한 아웃소싱하거나 인공지능 로봇에게 맡길 수 있게 되었다. 대부분의 주말은,그러니까 자활노동을 할 수있다는 이야기인데, 산에 가고 책보고 하다 보면 글쓰기는 언제나 뒷처진다. 세가지 노동의 균형을 맞추는 것은 애시당초 힘든 일이라 그렇다고 치더라도 자율노동의 균형을 잡는 것도 쉬운일이 아니라는 얘기다. 그러는 내게 아고타의 고백은 큰 위안이 아닐 수 없다.
하기는 독서는 쓰기에 비하면 얼마나 쉽고, 재미난 일인가말이다. 읽기는 쓰기의 게으름을 합리화할 수 있는 더 없이 좋은 이유가 된다. 그리고 생각만 하면 자꾸자꾸 도망치고 싶어지는 쓰기가 읽을수록 자꾸자꾸 더 읽고 싶게 만드는 독서와 어떻게 경쟁이 되겠나.
그런데 ,문제는 읽는 즐거움만으로는 해소되지 않는 은근한 갈증이 계속된다는 것이다. 내 안의 감정과 말들을 글로 옮겨 공감받고 싶은 욕망. 연애의 무덤이라고 해도, 지지고 볶고 울고불고 할 것이 뻔해도 결혼 해서 함께 살고픈 그런 욕망. 쓰디쓴, 뻐근한 글을 짓고 싶은 목마름.
지난주에 읽었던 책 중에 “작은 불씨는 어디에나”.
일상을 안전하고 반듯하게 닦고 조이고 윤내느라 꺼뜨린 내 안의 불꽃이 다행이 어딘가에 작은 불씨로 남아 있다는 이야기. 그 작은 불씨가 타인의 작은 불씨 때문에, 작은 입김 때문에 갑자기 춤추듯 살아나 불을 피운다는 이야기.
한사코 그 불씨를 거부하는 여자와 검은 잿더미를 들춰서 불을 살려내는 여자들이 있다. 그 여자들에서 나를 읽었다.
불씨에 대해 읽던 중에 내가 오래전에 몰스킨 한 구석에 적어놓은 문장을 발견했다.
“어느 알 수 없는 장소에서의 밤이었다. 나는 강한 맞바람을 안고 힘겹게 느릿느릿 앞으로 나가고 있었다. 사방에는 짙은 안개가 흩날리고 있었다. 나는 언제 꺼질지도 모를 작은 불꽃을 손으로 동그랗게 감쌌다. 모든 것이 이 작은 불꽃을 살릴 수 있느냐에 달려 있었다”
내 안에도 손을 동그랗게 감싸고, 몸을 수그려 절대로 꺼지지 않게 보호하려고 하는 작은 불꽃하나 있늗데, 그것이 글쓰기가 아닐까, 생각했다. 비록 여러 이유로 글쓰기로부터 도망다니고는 있으나, 생각해보면 살면서, 단 한번도 마음에서 그 불꽃을 꺼버린 적은 없었다.
불씨에 관한 책이 불꽃에 관한 짧은 문장과 나를 연결짓고, 나의 불꽃, 나의 글쓰기 욕망에 대해 생각하게 했다. 나의 읽기는 결국 쓰기를 위한 불의 장난. 그러니까, 내 안의 모든 말들을 단어로, 문장으로 표현하고 싶은 불.장.난. 일까? 불.장.난이 언젠가는 아주 큰 불을 낼 것임을 믿어 보자.
- 최**님
한 순간을 위해 달려가는 불나방도 자신이 뛰어드는 순간 뒤를 돌아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엉뚱하고 할일 없는 생각을 갑자기 해 보았습니다. 스치는 하루살이도 자신에게 어떤 일이 있는지 뒤돌아보는 것처럼 27일간 또한 숨가쁘게 때론 느긋하게 달려온 것 같습니다. 에세이를 쓴지도 석 달이 되어가는 시점, 글밭에서 씨를 뿌리고 있는 중입니다.
땅 속에 묻혀 그 씨앗이 움을 트고 있을지, 아님 아직 땅 속의 기운을 그대로 느끼고 있을지는 모릅니다. 시간이 모든 것을 정리해 주겠지만 땅의 기운이 우리를 깊은 내면의 세계로 인도해 줄것은 자명한 일인 것 입니다.
이제 숨쉬고 있는 씨앗이 움을 트고 그 안에서 자신의 껍질을 깨고 나올 것 또한 당연한 일입니다. 기다리면 언젠가는 오겠지만 부지런한 자판 두드리기 연습은 매일 필요하겠다는 생각은 벗어버릴 수 없습니다. 쓰다보니 어찌 어찌 어떤 날은 기분 좋게 글이 써지기도 합니다.
또 어떤 날은 그냥 맹숭맹숭한 맛도 없는 글을 쓰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게 다 나의 이야기이고 시간이고 가야 할 길 닦음 입니다.
서서히 하나씩 하다 보니 그래도 글은 써야지 하는 습관은 조금 생긴 것 같습니다.
앞으로 더 많은 시간과 더 많은 씨를 뿌리기 위해 땅의 숨결을 느끼고
기다리고 마음 가다듬는 일이 많을 것 입니다.
그래도 든든한 문우도 만나고 길잡이 해 줄 코치님도 있으니 걱정 딱 안 합니다.
좋은 글 많이 쓰고 싶습니다.
아니 내가 먼저 좋은 사람이 되어야 겠습니다.
중년을 넘어가니 꼬장하다는 소리보다 푸근하다는 말이 다가가기 싶고 이야기 나누기 싶기 때문입니다.
- 신**님
우물을 파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그 우물을 어떻게 파야될지 몰라 우물쭈물 하고 있었습니다.
이러다간 아무것도 이룬 것 없이 시간만 갈것 같아 어떻게 파야될지 구하고 찾고 두드렸습니다.그래서 알게 된 숭례문학당 감성에세이에서 매일매일 우물파는 법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감성에세이는 저에게 우물파는 방법을 가르쳐준 스승이며 깊은 곳 물을 길을 수 있게 도와준 두레박입니다. 처음엔 막막했지만 파다보니 계속 팔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물맛을 본 저는 자꾸 자꾸 쓰고 싶고 자꾸자꾸 그리고 싶기 때문입니다. 또한 내우물도 보고 다른 우물도 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넓은 우물, 깊은 우물, 넓고 깊은 우물,예쁜 우물, 귀여운 우물, 개성있는 우물들을 보고 맛볼 수 있었습니다. 아직 저의 우물은 작지만 괜찮습니다. 지금 내 우물에서도 목을 축일 수 있고 쉴 수 있기때문입니다.
하지만 목마름을 느낍니다. 그래서 더 넓게 더 깊게 파내려가고 싶습니다. 우물을 팔 수 있게 도와주신 이윤영코치님 사랑합니다 ♡ 다양한 우물맛을 보여주신 선생님들 모두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
언젠가 햇빛좋고 바람 쉬원해 마음화창한 날, 아님 비촉촉 내려 감성이 젖은 날,우물우물 모여 같이 우물을 팠으면 좋겠습니다. 다들 건강하시고 감성우물 잘 파시길 축복합니다. ^^
- 김**
물이 100도에서 끓을 때 1도라도 부족하면 물이 끓지 않는다. 1도의 차이로 물이 수증기로 변할 수 있다. 그 변화의 지점을 임계점이라고 하는데, 세상의 모든 물질에는 임계점이 있다. 다른 상태로 변하기 위해서는 그 임계점을 넘어야 한다.
기대와 두려움으로 시작했던 감성 에세이가 벌써 끝을 달리고 있다. `30일 감성에세이`를 쓰면서 글쓰는 습관을 기루고 싶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30일동안 내 감정에 충실하고 끈기 있게 자리에 앉아 사유 하고자 했다. 하지만 마음과 몸은 따로 움직였다. 계절이 봄이라 그런지 마음은 늘 꽃밭에 가 있었다.
이 곳 숭례문학당에서 여러 필사와 글쓰기를 했었다. 그래서 예전에 쓰다 만 글들을 퇴고해서 올린 적도 있다. 이것 또한 글쓰기의 과정이라 생각하면서 30일을 임했다. 글을 쓰면서 느끼는 거지만 정말 나를 표현하고 내 안의 또 다른 나를 꺼집어 내는 것은 언제나 힘들다.
아직은 서툴고 부족하다. 소재도 부족하고 설사 있다 하더라도 깊고 넓게 관찰, 탐구 사유가 되지 않는다. 무(無)에서 유(有)를 만드는 것이 아니고 유(有)에서 새로운 유(有)를 다른 시각에서 지어내는 것이 되어야 하는데 너무 어렵다. 식상한 소재에 창의적인 문장이 나올수 있으면 좋으련만 생각만큼 쉽지 않다.
임계점을 넘을려면 아직 멀었다. 글이 아직은 데워지지 않고 미지근하다. 글을 쓰면서도 늘 의구심이 들고 글감이 막힐 때 마다 그만두고 싶은 고비가 온다. 하지만 짧거나 미완이라도 이렇게 계속 꾸준히 하다보면 임계점에 다다를 수 있겠지. 임계점을 넘어 100도의 물이 될 때까지 나의 글쓰기는 계속될 것이다. 거기가 어디든지~ `숭례문학당`은 내게 있어 참 고마운 곳이다. 다양한 경험을 하도록 해 주어서.
- 최**
이 글쓰기 과정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해 주었다면 지나친 과장인걸까. 아니다. 진심이다. 지난달의 나와 지금의 나는 같은 사람이지만,
내가 뭐가 부족한 사람인지를 아는 내가 되었다는 점에서는 다른 사람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감성이 발달되어 있어야 자기를 둘러싼 환경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느끼고, 거기에 피드백을 할 수 있을텐데, 감성 미발달로 인해 주변에 제대로 반응하지 못하고 살아왔다.이 글쓰기 과정을 통해 배운 가장 큰 소득은 내가 주변에 민감하지 못하고 잘 반응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 점이었다. 생각해보면 엄청난 각성이다. 거의 새로이 눈을 뜬 것과 같은 수준이다. 이것은 감성글쓰기 과정에서 글쓰기 회원님들의 글을 읽으면서 나에게 부족한 게 뭔지 알게된 큰 깨달음이다.
이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서 늘 오감의 센서를 벼려두어야겠다는 다짐도 한다.
아직은 무심함 사람이다. 하지만 감성을 키우다보면 나도 다정다감해 질 수 있겠지. 하고 바래본다.
코치님께도 너무 감사한데, 주간 에세이를 일일이 첨삭해 주셔서 앞으로 글쓰는데 큰 도움이 될만한 실제적인 도움을 주셨기 때문이다.
첨삭 3회 받고(현재까지 3회) 갑자기 명문장이 될리는 만무하지만, 글을 쓰면서 코치님의 조언을 계속 생각하게 되었으니, 한달 전보다는 아주 쪼끔 아주 쪼끔이라도 나아지지 않았을까 자평해 본다.
- 김**
적응이 된 탔인지 아침 마다 열어보는 리드문이 무슨 사랑고백 받는 느낌이었다. 오늘은 어떤 주제로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기대반 설렘반으로 손가락을 우아하게 또는 지긋이 누르면 글이 나에게로 천천히 다가온다.
감동이 있는 글은 뭉클함과 애잔함으로, 생활의 알콩달콩한 이야기도, 눈물을 훔치며 잊지못한 명문장도 우린 만들었다. 때론 코믹 버전도 우리를 기쁘게 하지 않았던가!!
켜켜히 싸여진 이야기들은 삶의 두께를 굳건하게 만들고, 내면의 넓이가 무한대로 넓어질 것이다. 찬찬히 돌이켜 세월을 반증하듯이 스물 한 편의 고리들이 엮인 말과 글은 우리를 농익게 만들 것이다.
어른으로 만들어 누구보다 찬란하게 반짝이게 만들 것이다.
읽어내려가면서 기특했다. 토닥토닥 해 주고 싶다.
- 신**